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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만 여백 속의 충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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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90816051231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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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9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791년 봄에 정약용은 진주목사로 있는 부친을 뵙고 돌아왔는데, 4월 초 셋째 아들 구장이 천연두를 앓다가 종기로 죽었고, 진주로 갔다 온 일이 무단행동이었다고 견책을 받아 의금부에 구금되었다가 4월 6일에 가까스로 풀려났다. 곧이어 부사과의 직을 받았고, 5월 23일에는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으나, 6월 초에 체직되었다. 정약용은 명례방 거처에서 한치응(韓致應, 자 㖳୊), 홍시제(洪時濟, 자 約汝), 이중련(李重蓮, 자 輝祖), 윤지눌(尹持訥, 자 无咎)과 술을 마시다가, 천둥소리가 나자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창의문을 나가, 부암동의 백사실과 홍제천을 거쳐 세검정에 이르렀다. 뒤에 창의문은 곧, 반정군이 연서에 모였다가 서울 도성으로 들어온 문이다. 자하문이라고도 하는데, 정약용은 창의문이라고 했다. 역사를 바꾼 사건을 환기하고,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았는지 모른다. 정약용은 백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백사실은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하며, 본래 백악(북악)의 별스런 계곡으로서 ‘백악동천’이라고 불리웠다. 1795년에 정약용은 우부승지의 직함을 지녔다가 체직되었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그 무렵 상소를 올린 이가환(李家煥)과 이익운(李益運) 형제를 조사하여 오전 중에 자복서를 받아오지 않으면 처단하겠다고 분노하였다. 20일에는 우부승지 직에서 체직되어 도로 부사직이 되었다. 5월에는 중국인 주문모가 잠입한 사건이 발각되고 5월 12일 새벽에는 주문모를 숨겨준 죄로 여러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정약용은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을 포함한 남인의 여러 인사들에게 노론 벽파나 남인 벽파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정약용은 자주 윤지범을 만나 술을 마시며 불우한 처지에서 갖게 되는 불편한 심사를 달랬다. 6월 1일은 초복이었는데, 그 후 무더위가 지독하여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고, 6월 11일 중복이 지난 후 서너 날이 되어 장맛비가 계속되었다. 정약용은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나갔다. 그리고 「세검정에서 노닐며[游洗劍亭]」라는 제목으로 오언율시 1수와 칠언율시 1수를 지었다. 필자는 여러 차례 신흥무관학교를 답사하였다. 2011년 8월에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추가가로 향했다. 추가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도 몇 번을 왔던가. 차는 추가가 이정표 밑을 지나 정차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추가가 이정표를 촬영했다. 양쪽에 늘어선 주택들은 붉은 벽돌과 기와를 올린 전형적인 한족 가옥이었다. 먼저 필자는 신흥학교 옛 터로 향했다. 가는 길 왼쪽으로 난 개울은 상당히 지저분해 보였다. 옛 신흥학교 터는 현재 유리파편을 분쇄하는 공장으로 쓰이고 있다. 젊은 노동자가 낯선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곳이 정확하게 신흥학교 터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주변이 신흥학교와 연관되어 있는 것만큼 분명하다. 1911년 6월 설립된 신흥강습소는 이회영,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이 한데 모아진 결과물이었다. 신민회에서 추진했던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함께 실행된 무관학교 설립 의지가 바로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으로 나타난 것이다. 왕권시대 태극기는 국가의 존엄을 상징하는 “소중하고 공경한 물건”(『독립신문』, 1896.9.22.)이었다. 그러나 국권이 흔들리던 대한제국기 자신들의 뜻을 태극기에 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홍의 태극문양과 4괘로 구성된 태극기의 흰 여백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내는 또 다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의병장 고광순은 “머지않아 되찾는다(不遠復)”는 의지를 붉게 적었고, 안중근은 피로써 “대한독립 만세”를 태극기에 물들였다. 일제강점기 ‘독립국가’의 상징으로 인식된 태극기는 3·1운동뿐만 아니라 수없는 독립운동 현장에서 휘날렸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태극기는 국가 상징물이 되었다. 임시정부는 아침 9시 집무가 시작되기 전 태극기 앞에서 집회식을 갖는 것을 의무로 했으며,(『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2호, 1919.9) 1942년 6월에는 국기인 태극기의 양식을 표준화했다. 분명 수많은 태극기가 건물 안팎과 사람들의 손에 쥐여졌을 테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태극기 중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현재 4종으로,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2종, 그리고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가 그것이다. 태극기에는 문수열의 광복군 동지와 광복 후 합류한 잠편지대원들의 서명이 쓰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명 중에는 건강을 기원하는 개인적인 축사 외에도 자유와 자립을 향한 메시지들이 빼곡히 쓰여 있다. 태극기에 담긴 사람들의 의사는 고군분투와 혁명완수에 대한 의지,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갈망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광복군 제3지대에서 함께 활동한 김영일, 김국주 등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열열(熱熱)한 혁명(革命)의 투사(鬪士)가 되어라 김국주(金國柱)”라고 서명한 김국주는 일본군으로부터 천을 구해 광복군 군복을 입힌 후 무장시키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조국을 위하여 희생하자”(李昌彬),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피를 흘리자”(정종구) 등 많은 사람들이 필승과 고투를 강조하고, 자유에 대한 열망을 담기도 했지만, 현 시국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태극기에 담겼다. 혁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장원모(張元模)의 서명과 “피흘림 없는 독립은 값없는 독립이란 것을 자각하라!”고 외치는 안창삼의 글귀에는 이성적인 결연함이 묻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통해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사회를 실현코자 했다. 삼균주의로 대표되는 임시정부의 건국구상은 광복 직후 김구 주석이 발표한 ‘국내외동포에게 고함’에서도 재차 천명되었다. 문수열의 태극기에도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완성(完城)하자”(고주찬)는 젊은이들의 이상이 담겨졌다. 또한 국가와 민족, 개인의 독립을 의미하는 “자주(自主) 자유(自立) 자애(自愛)”[박일(朴一)]”라는 염원도 한 여백을 채웠다.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에는 광복군을 비롯한 동지들의 의리와 자유 열망, 독립 의지가 서명되었다. 광복의 환희와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민족 자립에 대한 결연함을 태극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서명자 대부분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하지만 냉전의 과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국가 상징물인 태극기의 흰 여백은 그 시대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으로 채워지곤 했다. 자유와 자립 등으로 채워진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를 보며 생각해본다. 이 시대 태극기의 여백에는 무엇이 담길 것인가.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7월의 첫 주말, 초여름 장마에 하늘은 곧 비를 뿌릴 듯 찌푸려 있었다. 뭉근한 공기가 머무는 서울 남산국악당. 어둠 속 공연장 전면의 막에 화면이 띄워졌다. 벽사 한영숙 선생의 삶을 담은 추모 영상이었다. 한영숙춤보존회(회장 이애주)에서 주최, 주관한 벽사 한영숙 선생 30주기 추모 공연은 추모 영상으로 시작해 학무, 살풀이춤, 태평무 그리고 승무를 무대에 올렸다. 90여 분 동안 이어진 추모 공연은 한영숙 선생의 제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이애주 교수가 승무로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조선조 말 명무가, 명고수로 우리의 전통춤을 집대성한 한성준의 예맥은 손녀인 한영숙에게 전해졌고 이제는 이애주 교수가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공연으로 이애주 교수를 만나고 일주일 뒤,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과천의 연습실을 찾았다. 북과 장구를 울리며 연습을 해도 방해를 끼칠 일 없는 산마루 한적한 곳이었다. 이애주 교수는 금방 마당에서 뜯은 허브로 차를 우리며 승무에 대해 얘기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태극기 중 현재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태극기 중 문화재로 등록된 구체적인 명칭을 찾아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태극기와 문화재 등록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태극기 중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현재 4종으로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문화재로 등록된 4종의 구체적인 명칭이 언급된 문장을 선택한다.

    •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2종, 그리고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가 그것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4종의 명칭을 정리하여 질문에 대한 답을 구성한다.

    • ‘김구 서명문 태극기’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문화재로 등록된 태극기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임을 확인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확인된 명칭들을 나열하여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태극기 중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현재 4종으로
  •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2종, 그리고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가 그것이다.
  • ‘김구 서명문 태극기’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최종 답변 (final_answer)
김구 서명문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