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2·28 합의가 발표되자 한국의 시민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곳곳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 중 일 3국 정상회담에서‘위안부 문제를 가능한 조기에 타결하기 위해 협의를 가속화 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에 돌입했다는 것이 알려진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20여년을 끌어온 위안부 문제를 구체적인 해결 절차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해결했다는 발표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과 의아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12 28 합의가 사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견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도출한 결과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출범한 이래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및 ‘명백한 형태의 사과’라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2015년 12월의 합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가 그간 고수해왔던 원칙론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에, 한국 시민사회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또 의구심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과 한국이 위안부문제를 최종적으로 매듭짓는 데 합의했다. 4반세기에 걸쳐서 양국 간에 갈등을 빚어왔다. 전후 70년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이라는 기념이 되는 해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을 환영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합의하고 공동으로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일본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내각 시기에 설립한 아시아여성기금은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두 나라가 지혜를 모아서 합의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일본 측은 외교부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책임을 통감한다’라고 표명했다. 일본은 이제까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법적으로 해결을 끝냈고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표현에 머물고 있다.
①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②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합니다. ③ 일본 정부는 이상을 표명함과 함께, 이상 말씀드린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합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하는 것을 자제합니다.
한편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일본 정부에 응답했다. 이번 합의에 대해 ‘일본 정부가 착실하게 조치를 취했다’고 전제하며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한다’고 단언했다. 일본 측으로부터‘한국은 약속을 하더라도 골포스트를 건드린다’고 비판받아 온 것을 의식한 데서 나온 확약의 표명이다. 두 외교부 장관도 언론을 통해 두 국민에게 굳건하게 맹세한 것이다. 합의를 확실하게 이행하기 바란다. 한국정부는 전 위안부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재단을 만들고 거기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국가예산에서 갹출한다. 일본은 90년대, 국민 예산으로 형성된 ‘보상금’과 정부 자금으로 만든 의료/복지 지원사업에 수상의‘사죄편지’와 함께‘아시아여성기금’ 사업을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거세져서 좌절됐다. 한국 측에서 기금의 의의가 해결되지 않았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본정부가 반드시 적극적인 자세로 사업에 임하지 않았거니와‘보상금’에 민간자금을 끌어들인 점 등에 한국 측은 책임회피라고 반발했다. 두 정부와 함께 전 위안부들의 후원시민단체, 매체 등도 당시 교훈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새로이 설치된 재단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된다.
그리고 아래는 한일 수뇌 회담을 논평한 사설인데 역시 양국 관계가 진전 못했던 원인을 한일 양국에 대등하게 찾으려고 한다. 이웃나라이면서도 이상한 사태가 지속된 것은 전쟁 중에 가혹한 성노동을 강요 당한 전위안부들에 관한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진전된 회담을 바라는 박 씨에 비해 아베 씨는‘전제조건 없이’회담을 하고 싶다고 주장해왔다. 드디어 평행선을 깨고서 회담을 갖고서 ‘조기타결을 위한 교섭을 가속화시킨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런 아주 당연한 의사확인이 왜 지금까지 이루지지 않았는가. 서로 자기체면이나 협소한 내셔널리즘에 얽매였던 것이라면 유감스럽다. 두 사람에게는 최근 3년 동안 잃어버린 이웃나라와의 관계발전 기회를 되돌리도록 약속대로 적극적인 협의를 지시했으면 한다. 그때 양쪽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위안부 협의는 나라의 위신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강하게 문제 삼는 재일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 철거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줬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의 상징이 되고 있으니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화해로 이어지는 역사적 합의로 만들려면 아직 많은 작업이 남아 있다. 한일 양국이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해가야 한다. 일본은 해결책이 최종적인 것이 되는 확약을 중시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대응을 일단 평가하고 나서 여론의 반발을 받으면 강경자세로 돌변하는 태도를 반복해서 보여 왔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의 대응을 무시받았다는 걱정도 있었다. 다만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한국 측만이 아니다. 정부 간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어도 일본의 정치가나 언론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전 위안부를 비방한 일이 한일관계를 보다 복잡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이다. 외교는 원래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번 합의내용에 대해 어느 쪽이 많이 양보했는가‘승패론’에 빠지지 않고 한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
미국 언론들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인식 문제를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장기간 거부하면서 한 일 관계가 냉각되는 상황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미국의 언론들은 일본의 우경화 및 역사수정주의적 경향이 행동으로 구체화 될 때 마다 이를 분명한 어조로 비판했지만, 동시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과거에 공식적인 사과를 했음에도 고집스럽게 새로운 사과를 요구한다며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쪽에 서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 미 일 삼각동맹의 강화가 중요하며, 그것을 위한 초석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다툼이 종결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한국 일본의 사건들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 보도하고, 각종 사설과 칼럼을 통해 양국 정부의 태도 문제를 비판하면서 한 일 양측이 견해 차이를 좁혀 하루 빨리 문제의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여론을 적극적으로 조성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2·28 합의가 한국 시민사회로부터 비판과 충격을 받았던 주요 원인 두 가지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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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2·28 합의가 한국 시민사회에 충격과 비판을 불러일으킨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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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합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을 추출한다.
- 12·28 합의가 발표되자 한국의 시민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곳곳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20여년을 끌어온 위안부 문제를 구체적인 해결 절차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해결했다는 발표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과 의아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뿐만 아니라 12 28 합의가 사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견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도출한 결과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 2015년 12월의 합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가 그간 고수해왔던 원칙론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에, 한국 시민사회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또 의구심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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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비판의 원인으로 명시된 '갑작스러운 최종적 해결 발표'와 '피해자 견해 미고려', 그리고 '정부 원칙론과의 괴리' 중 핵심적인 근거를 선택한다.
- 갑작스럽게‘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해결했다는 발표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과 의아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12 28 합의가 사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견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도출한 결과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 2015년 12월의 합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가 그간 고수해왔던 원칙론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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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선택된 근거들을 종합하여 시민사회가 충격을 받은 이유를 정리한다. 첫째는 해결 절차 시작 직후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최종 해결 발표이며, 둘째는 피해자들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의 기존 원칙과 합의 내용이 다르다는 점도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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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서 요구한 '주요 원인 두 가지'를 중심으로 답변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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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2·28 합의가 발표되자 한국의 시민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곳곳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20여년을 끌어온 위안부 문제를 구체적인 해결 절차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해결했다는 발표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과 의아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뿐만 아니라 12 28 합의가 사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견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도출한 결과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 2015년 12월의 합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가 그간 고수해왔던 원칙론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에, 한국 시민사회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또 의구심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갑작스럽게‘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해결했다는 발표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과 의아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12 28 합의가 사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견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도출한 결과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 2015년 12월의 합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가 그간 고수해왔던 원칙론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에
최종 답변 (final_answer)
1. 위안부 문제의 구체적인 해결 절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발표가 이루어진 점, 2. 합의 과정에서 사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견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고수해온 원칙론과 합의 내용이 현격한 거리가 있다는 점도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