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둘째, 순수 이데올로기와 실천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후자가 전자의 모호함이나 부적절함을 보완, 수정한다는 의미가 개재되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면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마르크시즘의 교리는 공업화 수준이 낮은 러시아, 중국, 북한 등에서는 일정한 보완과 수정을 필요로 했다. 주체사상의 경우에는 그것이 북한의 수령 중심 체제를 정당화하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령-당-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대체하고, 사실상 유물론과 사회주의 정치론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군사상은 주체사상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사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물론 정영철의 분석처럼, 선군사상이 주체사상을 수정 및 보완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수령-당-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체’가 ‘수령-당-군-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바뀌고, 계급이 아닌 직능집단인 군이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개념이 변경된 것은 아니며, ‘계급이 아닌 집단’으로는 이미 ‘대중’도 나타나 있었다. 군에 대한 당의 절대우위를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관행으로 볼 때 선군정치는 독특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은 관행의 파괴이지 교리의 전환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정통 마르크시즘과 대조되는 특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다. 이 개념은 본래 김일성이 창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에는 ‘육체적 생명은 부모에게 받으며, 사회정치적 생명은 당에게서 받는다. 그런데 사람의 삶에는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의의가 있으므로 그만큼 당에 충성해야 한다’ 정도의 의미였다. 말하자면, 맥락적 동형성으로 볼 때 ‘선공후사(先公後私)’ 정도에 그쳤던 셈이다. 그러나 이는 주체사상의 심화와 선군사상의 진행을 겪으면서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란 수령과 당과 대중, 나아가 수령-당-군-대중이 일치를 이루는 체제이며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하는” 구성체이다. 종전의 사회정치적 생명 개념에서 수령의 ‘가부장적’ 지위를 추가하고, 단지 육체적 생명(생물학적 개인으로서의 삶)과 대비되는 의미(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삶)에서 개인의 경계(小我)를 뛰어넘는 유기체적 존재(大我)로 의미를 발전시키며, 구성원들이 ‘하나의 생명이자 운명공동체’로 상호작용한다는 의미 또한 추가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국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보는 가치관, 세계관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제시했듯,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국가를 거대한 가정으로 보는 한편, 왜 ‘작은 가정’의 가치가 외면되는가, 군이 대중과 구별되어 전면에 등장하는가 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본 ‘성즉리’, ‘민본’과 동형의 관념구조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만, 한편 ‘거간이합’의 관념구조 역시 논의될 수 있다. 주자학적 사상체계에서는 종전의 유학사상과는 달리, ‘절대적으로, 엄격하게 만민의 일탈을 방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그리하여 새로 등장한 사상 중 하나가 거간이합이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등 인의(仁義)에 따라 친할 당위성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별개의 개체인 존재들 사이, 그 사이에 조금의 ‘간격’도 없어야 하며, 서로 완전히 일치(合)하게끔 어느 정도는 강제적인 조치마저(씹어 합치는) 필요하다는 사상이다. 이는 체제 유지의 전망이 불확실할 때, 기존의 권위적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결합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하려는 시도에서 동형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충효는 전통적 관념체계에서의 충효와 동일하지는 않다. 그런 ‘관념의 재조정’은 이미 1940년대, 공산주의자 백남운의 텍스트에서 제시된 적이 있다. 그러나 비슷한 관념 내용을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굳이 전통적 언어에서 차용하여 표현했다는 것은 두 가지 추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는 전통적 관념-가치체계가 청자(인민 대중)에게 이미 깊이 내면화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관념의 전파와 내면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채택되었을 가능성, 둘째는 화자 스스로가 전통적 관념-가치체계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았으며, 다만 새로 유입된 사상과 당대에 직면한 환경의 이질성 때문에 ‘다른 관념’임을 강조하면서도 전통적 언어를 차용했을 가능성이다. 결국 유교적 전통이 오랜 북한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충효 관념을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점, 그리고 수령의 절대권력 체제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충효 관념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주체사상-선군사상에서 충효라는 전통 관념 요소가 존립하는 이유로 추정된다.
여기서 ‘보편적 이(理)’에 비할 수 있는 주체사상-선군사상은 이상우가 말했듯 “정치발전의 목표와 정치활동의 지침을 결정해 주는 최고 이념이며, 사회구성원 모두의 일상생활의 행위준칙을 결정해 주는 도덕규범이며, 행위의 선악을 가려주는 종교”가 된다. 즉 단순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 도덕적 규범이며, 사회의 양식이며, 구성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규율하는 지침이 되는 것이다. 통치 이데올로기로써 이 정도의 가치를 포괄한 예로는 유교사상에서만 동형성을 찾을 수 있다. 유교사상사에서 성즉리에서 심즉리로 나아가느냐, 이에 맞게 각자의 심을 단속하는 쪽으로 나아가느냐는 시대적 환경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주자학이 발전된 남송은 오랑캐로 멸시했던 금에게 밀려 중원 일대를 잃어버리고, 북방민족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불안한 환경이었다. 그리하여 사상의 경직화, ‘일심단결’의 강조를 담지하는 사상의 유행이 가능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의 조선사회가 더욱 엄격한 성리학 위주의 사회로 변화했던 것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이는 선군사상이 출현하게 되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전후 상황과 흡사하다.
성(性)은 곧 삶(生)이며, 따라서 개별성을 띤다. 그러나 그 일체는 이(理)에 따라 지배될 뿐이다. 그 이는 태초부터 변함없이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영원불멸의 형이상자(形而上者)인데, 형이하자(形而下者)인 개별 생명체마다 각각 이가 품부되어 있으나 그 이는 개별성을 띠지 않는다. 따라서 성은 곧 이이며, 이는 하나이면서 수없이 많다. 이러한 관념구조는 김일성의 개인적 삶과 김정일의 개인적 삶이 별개이고, 그들의 시대가 별개라는 사실과 동시에 ‘주체이자 선군이고 선군이자 주체’라고 풀이하는 관념구조와 거의 완전한 동형성을 띤다. 그런데 그렇다면 심즉리(心卽理)라고도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마음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성이며, 따라서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양명학자의 경우에는 이를 긍정하며, 자연스러운 마음은 곧 선하다고 본다. 그러나 주자학에서는 대체로 이를 부정하는 편이다. 심즉리일 수도 있지만, 마음은 삿된 정(情), 사사로운 욕망에 이끌릴 소지가 크다. 따라서 마음을 다잡고 천리에 맞는 마음만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存天理去人慾). 그 방법이 바로 마음의 주체를 세우는 일, 주경(主敬)이다.
전자의 경우는 가령 ‘개화사상에 실학사상이 미친 영향’을 논의할 때 박지원, 정약용 등 중요한 실학자들의 후손이나 제자들의 학문적 영향을 중요한 개화사상가들이 받았다는 사실이 근거로 제시되거나, ‘양계초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유가적’이라는 명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가 본래 양명학 계통의 유학을 공부했고 유교개신론을 추구한 강유위의 제자였으며, 불가와 묵가를 유가와 병칭하면서도 ‘중국 역사문화 속에서 유가학설의 주도적인 지위는 틀림없다’고 보았다는 경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후자의 경우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개인주의, 금욕주의, 현세의 노력을 강조하는 입장 등이 ‘자본주의의 정신’과 ‘친화성’이라고 불릴 만한 동형성을 띤다는 막스 베버의 주장이나, 명말청초라는 전환시대를 맞이한 양명학자들의 입장과 근대화라는 전환시대를 맞이한 양계초의 입장이 유사성을 띨 뿐 아니라, 양계초의 ‘심력(心力)’ 개념이 양명학에서의 심론(心論)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양계초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유가적’이라는 명제를 지지하는 주장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발전함에 따라 국가를 바라보는 가치관과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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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발전하면서 국가에 대한 가치관과 세계관이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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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초기 의미와 발전된 의미를 추출한다.
- 사회정치적 생명은 당에게서 받는다
- 사회정치적 생명체란 수령과 당과 대중, 나아가 수령-당-군-대중이 일치를 이루는 체제이며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하는” 구성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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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개념의 변화 양상과 그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를 나타내는 문구를 선택한다.
- 종전의 사회정치적 생명 개념에서 수령의 ‘가부장적’ 지위를 추가하고
- 개인의 경계(小我)를 뛰어넘는 유기체적 존재(大我)로 의미를 발전시키며
- 구성원들이 ‘하나의 생명이자 운명공동체’로 상호작용한다는 의미 또한 추가함으로써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국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보는 가치관, 세계관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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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수령의 가부장적 지위 추가, 유기체적 존재(대아)로의 발전, 운명공동체적 상호작용이라는 요소들이 결합되어 국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보게 되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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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수령의 가부장적 지위와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강화하며 구성원을 운명공동체로 묶음으로써, 국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보는 세계관을 형성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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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사회정치적 생명은 당에게서 받는다
- 사회정치적 생명체란 수령과 당과 대중, 나아가 수령-당-군-대중이 일치를 이루는 체제이며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하는” 구성체이다.
- 종전의 사회정치적 생명 개념에서 수령의 ‘가부장적’ 지위를 추가하고
- 개인의 경계(小我)를 뛰어넘는 유기체적 존재(大我)로 의미를 발전시키며
- 구성원들이 ‘하나의 생명이자 운명공동체’로 상호작용한다는 의미 또한 추가함으로써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국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보는 가치관, 세계관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발전하면서 수령의 가부장적 지위가 추가되고, 개인의 경계를 넘어선 유기체적 존재(대아)로서 구성원들이 하나의 생명이자 운명공동체로 상호작용한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이를 통해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국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보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구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