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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수정책설계 연구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 반환 정부 간 협상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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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10211039467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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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10211039467851_1
발행기관
한국행정연구원
발행연도
KDC
35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둘째, 문화재 환수는 대게 단기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시간이 오래 소요된다. 왜냐하면, 문화재 환수에 있어 국제 행위자 간 관계를 다른 정책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협력보다는 갈등 또는 경쟁 관계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즉 문화재 보유국(반환대상국)과 환수국과의 관계는 대게 협력적인 경우보다는 경쟁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경쟁적인 상대에게서 강제력을 동원하여 환수를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환수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설득이 필수적이다. 셋째, 첫 번째 특징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써, 문화재 환수를 둘러싼 개별 국가의 국내법들 간 충돌이 있으나 이를 중재할 국제법 또는 국제기구가 미비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국가별 문화재 환수에 대한 정책우선 순위의 상이성으로 인하여 개별국가 간 참여도와 관심도에 편차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국제협력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이는 역사적으로 문화재 약탈국은 약소국이었고, 문화재 침탈국은 강대국이었다는 점에서 문화재 환수 국제협력 거버넌스 특수성을 보여주며 국제조약, 협약의 강제성을 제고하는 데 장애가 된다. 넷째, 국제적 분쟁이 있을 때 이를 중재할 국제기구나 국제적 중재자가 미비하기 때문에, 환수국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관계 관리를 하여야만 하는 특징이 있다. 즉 문화재 보유국 또는 민간보유기관 내지 개인소장자와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설득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다른 정책 분야와 달리 국내외 민간단체 등을 정책설계에서 주요 행위자로 고려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문화재 환수 정책분야는 국가의 공식적 활동보다는 비공식적 대화와 설득이 많이 요구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문화재 환수 정책은 국제 정세 및 국내 정치적 환경에 매우 민감하여 당사국 간의 관계라는 정치적 여건에 영향을 받기가 쉽다. 양자 간 협정에 의해 문화재 환수에 대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보유국의 국내여론 악화, 양국 간 관계 변화 등의 변수에 의해서 정책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남북 문화재 교류에 있어서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은 문화재 교류정책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정부가 주도하여 문화재 환수를 진행하는 경우,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주체가 상대 정부일 때 국가수반이 주도하는 외교적인 문제로 진행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실제 문화재 환수에 전문성을 가지는 주요 부처 및 전문가가 협상과정에서 제외되기 쉽다. 문화재 환수 정책설계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감안하여야 할 특수한 정책맥락으로서 첫째, 국내정책상황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내외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화재 환수와 관련된 행위자의 범위를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해외에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모든 소장자들을 알아내기도 힘들고, 문화재 환수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는 행위자들 중 평소에는 문화재 환수와 거의 관련이 없다가, 갑자기 어떤 계기를 통하여 문화재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련 이해관계자별(문화재 보유자와 환수 노력자)로 문제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특징이 나타난다. 즉 국외문화재 환수 분야는 문화유산이라는 공공재 보존이라는 성격과 해당 문화유산은 원소유국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권리적 성격이 병존하기 때문에 국가 간 이익이 대립될 수 있다. 1866년 초 흥선대원군의 천주교탄압정책으로 당시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신부들이 처형되면서 프랑스는 자국민 처형에 대한 보복으로 로즈제독이 이끄는 함대를 강화도에 파견했다. 그러나 프랑스 함대는 전쟁의 참패로 퇴각하면서 인근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막대한 양의 보화, 서적, 무기 등을 약탈하여 중국으로 물러간다. 이로 인해 외규장각 및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약5천여 점의 왕실도서 및 사료들도 전소되었다. 이 당시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고 있던 외규장각 도서는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는 박병선 박사에 의해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그녀는 1985년 ‘조선왕조의궤’라는 제목으로 191종 297권의 도서 목록을 발간하였고, 이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 10월 19일, 서울대 규장각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소장 규장각 도서 반환요청 의뢰서’를 외무부에 제출하였고, 동년 11월 외무부는 프랑스 정부에 최초로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을 공식요청 하였다. 그러나 1992년 3월 17일 프랑스는 자국의 공공재산임을 이유로 한국의 반환요청을 거부하였다. 본 사례의 시간적 범위는 1991년부터 2011년 5월까지이다. 외규장각 의궤는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1978년 국내 언론을 통해 그 존재가 처음 알려졌지만, 외무부가 공식적으로 프랑스에 반환을 요청하면서 정부 간 협상이 시작한 것은 1991년이다. 그 후 정부 간, 민간전문가 간 협상과정을 거쳐 2011년 5월에 우리나라에 이관 완료되었다. 이 기간은 외규장각 의궤 환수에 영향을 주었던 정책환경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개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협상 주체 측면에서는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1993-1997), 협상진전을 위해 방식의 변화를 시도한 민간전문가 협상(1998-2004.8), 그리고 다시 정부 간 협상(2004.9-2011.5)으로의 전환으로 구분된다. 마지막 시기 중, 2004.9~2009년까지는 협상의 소강기로서 심도 있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2010년 이후를 중심으로 분석을 실시한다. 본 연구의 내용적 범위는 한국과 프랑스 간에 진행된 정부 간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과정이 된다. 이 시기는 민간전문가 협상에서 다시 정부 간 협상으로 전환하여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추진하게 된다. 2004년 9월부터 2009년까지는 협상 소강기로서 민간주도의 반환추진이 본격화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진전이 없었다. 문화연대는 정부차원의 반환이 용이치 않고 프랑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반환협상이 답보상태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민간차원에서 모금운동을 마련하여 외규장각 도서 반환소송을 추진하였다. 2007년 2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제기하여 비록 2009년 12월 프랑스 법원에서 기각판결은 받았지만, 도서약탈은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2010년부터 2011년 5월까지는 외규장각 의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적 접근과 양국이 G20 의장국으로서 향후 긴밀한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야 하는 새로운 정책환경이 등장하였다. 2010년 3월 외교부는 프랑스로부터 정리된 입장을 요청받음에 따라 외규장각 의궤를 영구대여하는 대신 한국 문화재를 프랑스 내에 전시하는 대안을 프랑스 측에 전달함으로써 2010년 5월부터 정부 간 협상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1기 정부 간 협상기간에서의 정부의 정책지식 및 자원수준은 다음과 같다. 먼저, 권능부여 연계측면에서의 이해관계자는 양국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의궤 문제해결을 위해 합의를 도출한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이후 회담결과에 대해 양국이 상이한 해석을 함으로써 양국 간 정책목표 불일치 내지 갈등이 발생되었다. 정상회담 때 언급된 ‘교류와 대여’라는 모호한 표현에 대해 한국 측 입장에서는 ‘환수 측면에서 사실상 영구대여’를 의미하는 정책목표로 이해한 반면, 프랑스 입장에서는 자국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상호교환을 통한 문화재 대여’로 접근하였다. 미테랑 대통령이 ‘반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교류의 방식으로 영구대여 한다는 합의에 대해 교류의 구체적인 조건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였고, 나아가 협상과정에서 대여의 기탁기간에 대한 조율도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에서 프랑스가 ‘등가’라는 조건을 첨가함으로써 협상은 더욱 어려워졌다. ‘동등한 가치’는 다분히 주관적인 조건으로 프랑스가 자의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사항이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외규장각 의궤 환수 과정에서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협상 주체 측면에서의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외규장각 의궤 환수 사례 중 특정 기간(1993-1997)의 협상 주체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외규장각 의궤 환수 시기를 구분하는 문장을 추출한다.

    • 이 기간은 외규장각 의궤 환수에 영향을 주었던 정책환경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개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 협상 주체 측면에서는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1993-1997)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서 요구하는 1993-1997년 기간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협상 주체 정보를 선택한다.

    •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1993-1997)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기간의 협상 주체가 '정부 간 협상'임을 확인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993년부터 1997년까지는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 시기임을 결론짓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이 기간은 외규장각 의궤 환수에 영향을 주었던 정책환경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개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 협상 주체 측면에서는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1993-1997)
  •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1993-1997)
최종 답변 (final_answer)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정책의제로 다루어진 정부 간 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