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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1122025775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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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발행연도
2013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대한민국은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대륙의 끝이지만 실제로는 섬과 같다. 북한이 60년 전에 그어진 휴전선을 가로막고 대륙으로의 진출을 차단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늘 길이나 바다를 이용해야 한다. 육로로는 자유롭게 오도 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 된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 분단의 고통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분할은 그 역사적 뿌리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38선 획정에서부터 시작되어 1953년 휴전선으로 변형된 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남북 분할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면 그 연원은 놀랄 정도로 매우 깊다. 고대 한사군(漢四郡) 설치(기원전 109년)나 고려 때 철령과 자비령 이북을 원나라가 직할지로 21년간(1270-1290) 지배한 것에서부터 분할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예는 외세에 의해 실제로 점유된 경우이며, 단지 안으로 제시되었던 경우로는 7세기 중후반에 당태종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패수(浿水) 이남은 신라가 다스리며 그 이북은 내가 다스리겠 다”고 김춘추에게 제의한 예가 있다. 그렇지만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절대적 자주권을 빼앗겨 식민지에 빠졌던 경우가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도적 위치를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 는 육교적 위치로 활용하여 잘 이용한다면 실질적 독립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많으며 지나간 역사가 그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잘 견디어 대륙문명을 해양세력에 옮기며(불교의 일본 전래 등) 해양문명을 대륙으로 전파하는(미국과 일본의 문명을 중국으로 전달) 다리 역할을 했던 사례도 있다. 북한의 경우 1960년대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중국과 소련 양국이 어떻게든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으므로 지정학적 환경을 잘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갈등을 이용해 실리를 챙길 수도 있다. 2013년 당시 중국과 미국 G2의 신냉전 출범 이후 양국은 서로 남한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역시 교묘한 줄타기를 통해 실리를 추구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든가 양국 모두의 신뢰를 얻어 이들을 중재할 수 있는 브리지(bridge; 가교) 역할(노무현 시대에 주장했던 동북아균형자와 같은)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G2라 불리는 미래 시대 한국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한국을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이유는 미국의 경쟁국인 중국에 근접하기 때문이며 중국이 한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대우하는 이유는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심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과 미국의 국익이 교차하는 초점에 한국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현재의 지정학적 위치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1978년 미중 관계 개선 협약서를 도출해 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중국의 부상이 글로벌 지정학을 바꾸고 있다면서, 중국 주변에 있는 중소 국가들은 미국이 개입을 단절했을 때 ‘지정학적으로 멸종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예견한다. 그중 하나가 한반도이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의 패권주의인 팩스 아메리카나와 중국의 대국화인 팩스 시니카가 교차하는 정치·경제적 요충지이다. G2 체제가 협력적으로 갈 경우 한반도는 동아시아 경제의 한 허브를 이루며 번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과 직접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점은 조선조 후기에 나타난 그와 같은 국가이성 능력의 빈곤이 일제강점기에도 회복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독자적인 능력에 의한 국권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권회복은 근본적으로 민족적 역량의 능동적인 발휘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대 국제정치사의 변화과정에서 행운으로 주어진 역사적 결과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행운 속에서도 남북이 분열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의 역량에 의한 국권회복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반증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독립 이후 영위할 국가생활의 근본 목표나 방법과 관련하여 바로 독립운동가나 지도층 사이에서 분열을 넘어 상호 공존할 수 없을 정도의 대립과 갈등은 잘 알려져 있으며, 해방 후에도 지속된 그러한 분열 속에서는 결코 독자적인 역량에 의한 국권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설사 추상적인 이념 차원에서 국민주권 국가의 설립에는 설사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국민주권의 구체적인 의미의 이해와 관련된 학문적 기반이 없을 경우 각 정치집단의 이해타산에 의한 분열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역사적 및 정신사적 상황과 더불어 2차 대전 종전 후 냉전 체제의 등장 등 새로운 국제정치적 상황의 전개는 남북의 분단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원 문제는 그와 같은 분단 상황을 떠나 이해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은 역사적 기원 문제가 남과 북 두 국가체제 사이에 어느 편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갖느냐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연관되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된 역사적 기원 문제와 국가이성의 관계가 바로 근현대사 흐름에서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해 민족사적 정통성 차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근거를 해명하여 준다. 그 핵심은 대한민국의 건국과정 및 그 이후 전개된 국가이성의 문명사적 발전이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다른 국가체제로 분리된 국가생활이란 결국 남과 북 각각이 추구한 국가이성의 차이 또는 대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친일경력 지배층의 존재, 부패구조와 도덕적 퇴폐, 군부의 정치개입 등 온갖 역사적 굴절로 점철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러한 국가적 결함들을 꾸준히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국가생활 차원의 ‘더 좋은 삶의 추 구’, 즉 문명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사이의 문명사적 연속성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는 간단히 집약하여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과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와의 결합이다. 전자에서는 그 풍부한 유교적 교양문화가 사상(捨象)되고 후자에서는 나름대로의 풍부한 인본주의적 사상 및 사회과학적 통찰이 사상된 채,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되 ‘조선적인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고 ‘인민’의 것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닌 괴물과 같은 집산주의 형태의 군인국가의 출현인 것이다. 그것은 국가이성이 자기변용을 통한 자기발전을 추구하지 못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통치체제의 경직화를 넘은 화석화 현상 및 정치권력 무한 집중 현상의 필연적 결과이다. 50년대 말에 완결된 남로당파와 연안파의 숙청 이후 전개된 북한의 정치사란 곧 나름대로 교양을 갖추고 사회주의적 이념을 통해서 그나마 진지하게 국가생활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국가생활의 운영 및 권력행사에서 폭력적으로 배제되거나 철저히 소외되는 과정이다. 결국 필자는 분단이라는 구조적 모순이 남북 정치권력의 비인간적 대결을 야기하고 그것이 결국은 형제들을 동족상잔으로 내몰아갔음을 아주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도, 잠수정 부함장 유림도 결국은 분단체제라는 어찌할 수 없는 거미줄에 갇힌 나비 신세라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개인으로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분단구조와 남북 대결의 역사적 희생물임을 필자는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남이나 북이나 정치권력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만을 내리고 그 집행과 실패의 과정에서 개인이 희생당하는 것은 아예 관심조차 없다. 북은 이미 1968년 1.21 사태와 울진삼척 사건의 실패를 통해 북의 대남혁명전략으로서 이른 바 ‘남조선 혁명론’은 실제로 작동 불가능함을 인식해야만 했다. 북과 연계된 남쪽의 민족 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1970년대 이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북은 1980년 광주항쟁을 목도하고 또다시 남쪽의 민주화 요구와 정치적 혼란이 북한 주도의 남조선 혁명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에서 광주학살의 가해자 전두환을 암살하면 남쪽에 혁명적 상황이 유발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허황된 타산을 하게 된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본문에서 언급된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는 무엇과 무엇의 결합으로 정의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가 무엇의 결합인지 묻는 질문임을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에 관한 설명을 포함한 문장을 추출한다.

    •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는 간단히 집약하여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과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와의 결합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 직접적인 답이 되는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과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를 근거로 선택한다.

    •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
    •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를 구성한다는 논리적 관계를 확인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추출된 두 요소를 결합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북한 정권의 이념적 실체는 간단히 집약하여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과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와의 결합이다.
  •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
  •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
최종 답변 (final_answer)
조선조 노론 근본주의의 극단 화된 적과 동지의 구분 관념과 극단적으로 형해화한 사회주의의 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