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북한에서 발간한 경제사전에 따르면 ‘대안의 사업체계’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경제관리에 주체사상과 군중로선을 구현하시여 사회주의경제의 본성적 요구에 맞게 독창적으로 창조하신 우리 식의 공산주의적 경제관리형태”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번째 경제계획인 1차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성대하게 치러진 4차 당대회(1961.9.11~18)가 끝난 해 말,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현지 지도하면서 체계화시켜 1961년 12월 16일 대안전기공장에서 발표한 경제관리 체계가 바로 ‘대안의 사업체계’였다. 1961년 12월 6일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공장관리 시스템을 비롯한 경제관리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할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한 후, 평양방직공장과 중공업성 기계공업총국 등을 비롯한 여러 공장과 기구들을 현지지도하면서 대책을 강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1962년 한 해 동안 일부 사업장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한 대안의 사업체계에 대해 만족한 북한 지도부는 1962년 11월 대안의 사업체계를 일반화하여 전 산업영역에서 적용할 것을 결정하였다.
서동만은 당과 국가체제가 하나로 결합된 ‘당=국가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대안의 사업체계를 바라보았다. 그도 역시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을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의한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하면서 다만 이런 변화는 다른 영역에서 이미 진행되던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그는 사회 각 영역에서 진행된 ‘당 우위의 제도화’를 공장관리 체계에도 적용한 것이 대안의 사업체계라고 이야기하였다. 여기서 그는 이런 변화로 인해 직업동맹이 조직상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당조직의 한 부서로 간주되기 시작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직업동맹의 선전사업과 군중사업을 당에서 직접 담당하게 되었고 단체협약 제도도 폐지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자율성이 대폭 축소된 것이었다. 결국 서동만은 대안의 사업체계를 북한에서 ‘당=국가 체제’가 사회영역까지 흡수하여 사회주의 시스템을 형성하게 된 일련의 조치들 중 하나라고 자리매김 하였다.
이태섭은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적 지도체제로 전환한 것을 대안의 사업체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서 기존의 연구자들과 다른 측면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는 ‘집단주의’라는 북한의 독특한 발전전략이 수립되는 과정의 연속선상 에서 대안의 사업체계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대안의 사업체계란 집단주의 원리에 기초하여 경제관리와 생산에 대한 전면적인 당적 지도체계가 확립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연구자들과 달리 노동자들의 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당시 강화되었던 공장당위원회에 노동자 비율이 약 60%나 될 정도 높았는데 이는 이전 시기 근로 대중이 기업 관리에 참가하던 통로인 생산협의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대폭 강화시킨 공장당위원회 중심의 공장관리체계 속에서 노동자들의 참여 폭은 넓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되던 1961년 말의 공장 상황은 1차 5개년계획이 시작되던 1957년 초와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었다. 우선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였는데 1960년대 들어서 공업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던 것이다. 1956년 당시 전체 사회총생산액에서 공업 부문이 차지 하던 비중은 40.1%였지만 1960년에는 57.1%로 늘어났고 1962년에는 61%까지 계속 늘어났다. 반면 1956년에 26.6%를 차지하던 농업 부문은 1960년 23.6%로 줄어들었고 1962년에는 21.3%로 더 줄어들었다. 즉 1956년에 1.5배에 불과하던 공업과 농업의 규모 차이는 1962년에 2.6배로 늘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생산활동의 양상 또한 많이 변하여 이미 제4장에서 자세하게 살펴본 것처럼 이전에 비해 기술의존도가 매우 높아졌다.
그렇다면 지배인 유일관리제의 문제가 진작부터 거론되고 있었고 1958년부터는 그 대안으로 공장당위원회 강화라는 조치가 개발되었는데 이의 폐지가 1961년에 와서야 단행된 이유가 무엇일까? 공장당위원회를 강화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다른 부문의 당적 체제 확립을 위한 조치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단행되었는데 공업 부문에서만 유독 1961년 말까지 시간을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배인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혁신운동의 성과가 드러나고 산업구조가 바뀌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였겠지만 대체인력에 대해 충분히 검증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1961년에 가서야 새로운 대체인력들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즉 생산현장에서 과학기술자들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그들의 능력과 충성도를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1961년은 새로운 경제계획이 추진되는 첫해였다. 1957년부터 시작한 1차 5개년 계획을 1년의 조정기간까지 거치면서 1960년에 마무리 짓고 새롭게 1차 7개년계획(1961~1970)을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는 5년 단위의 경제계획을 세우려고 하였지만 1960년 조정기를 거치면서 3년, 4년 두 단계로 구분한 7개년 계획으로 변경하였다. 첫 3년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빨리 성장한 중공업 부문을 효율적으로 재조정, 정비하면서 상대적으로 뒤쳐진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그다음 4년 동안에는 다시 중공업부문에 더욱 집중하는 계획이었다. 전반적인 기술혁신, 기술혁명이 중심과제로 떠오른 1차 7개년 계획에서 과학기술계의 역할이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내각 수상이면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이던 김일성이 직접 강선 제강소로 현지지도를 나간 이유는 북한 지역에서 ‘분괴압연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강선제강소뿐이었기 때문이다. 압연기는 회전하는 두 개(혹은 여러 개)의 롤러를 이용하여 강괴를 판이나 봉과 같은 최종 제품으로 만드는 설비로써 철강생산 공정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설비였다. 평로, 용광로 등 선행공정에서 사용되는 다른 설비들은 대부분 두 개 이상이었지만 마지막 압연공정에 사용되는 압연기 중 분괴압연 기는 강선제강소에만 있었다. 따라서 강선제강소의 생산활동은 전체 철강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김일성이 직접 강선제강소로 현지지도를 나간 것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1차 5개년계획을 확정하였고 철강재 생산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이 계획의 성공과 직결된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 이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서동만이 분석한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며, 그로 인해 직업동맹의 지위는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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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서동만의 관점에서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이 가져온 핵심적인 변화와 직업동맹의 지위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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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서동만이 설명한 대안의 사업체계의 변화와 직업동맹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을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의한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하면서
- 직업동맹이 조직상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당조직의 한 부서로 간주되기 시작하였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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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가장 큰 변화인 지배인유일관리제의 대체와 직업동맹의 지위 변화에 관한 문구를 선택한다.
-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을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의한 가장 큰 변화
- 직업동맹이 조직상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당조직의 한 부서로 간주되기 시작하였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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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이며, 이로 인해 직업동맹은 독자성을 잃고 당조직의 부서로 편입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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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의 가장 큰 변화는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이며, 이로 인해 직업동맹은 조직적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당조직의 한 부서로 간주되는 변화를 겪었다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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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을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의한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하면서
- 직업동맹이 조직상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당조직의 한 부서로 간주되기 시작하였음을 강조하였다.
-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을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의한 가장 큰 변화
최종 답변 (final_answer)
대안의 사업체계 도입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지배인유일관리제가 공장당 위원회로 대체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직업동맹은 조직상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당조직의 한 부서로 간주되는 변화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