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 책이 제기하는 스탈린 체제에 대한 해석에는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사회가 70여 년을 지탱한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이다. 저자는 스탈린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결국 평범한 소련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지배함으로써 소비에트 체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소련 인민들이 ‘소비에트 가치’를 받아들인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 기근 등으로 황폐해진 소비에트 현실 세계에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열정 때문이 아니라, 계급투쟁 과정에서 사회의 주류로부터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낙인의 수치심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어 기존 주장과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소위 일부 역사가들이 제기한 ‘소비에트 주체성(Soviet subjectivity)’은 소련의 공적 담론에 비추어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주민들이 소비에트 사상을 내면화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저자는 소비에트 주체성을 지닌 주민이라는 형상만으로는 소비에트 사회의 장기지속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는 ‘내면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할 질문’을 차단시킨 스탈린 독재 치하의 불안과 두려움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원제인 ‘속삭이는 사람(whisperer)’은 러시아어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고 한다. 하나는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소곤거리는 사람(shepchushchii)’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 몰래 당국에 고자질하거나 귓속말을 하는 사람(sheptun)’이다(위의 책, 23~29). ‘속삭이는 사람’이란 단어는 그 다의성만큼 주민들의 생존전략과 삶의 양식이 갖는 다양한 면모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입을 잘 못 놀려 체포될지도 모르는 사회에서 가족들은 남과 어울리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았고 위험한 이웃들의 눈과 귀를 피해, 때로는 자녀들에게도 소련의 공적 규범과 충돌하는 정보와 견해, 종교적 믿음, 가족의 가치관과 전통, 사적 생활양식을 숨기면서, 이중생활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체포와 처형, 수용소 노동으로 점철된 가족사는 부끄럽고 발설하지 말아야 할 치부이자 낙인이었다. 그들은 속삭이는 법을 배운 것이다. ‘과거를 말하지 않는 법’, 즉 말하기를 두려워하면서 그들은 삶을 견뎌 나갔던 것이다. 결국 조용하고 순응적인 주민은 스탈린 통치가 낳은 지속적인 결과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인터뷰했던 인타 가이스테르와 엘리자베타 델리바시 모두 1937년 부모가 체포당하거나 처형당한 가족사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 모두 열렬한 스탈린주의자로서 우수한 성적으로 외관상 ‘정상적’ 인민으로 살아왔지만, 그녀들의 두려움은 일생 동안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계급의 적이라는 낙인을 받은 자들은 고등교육 기관과 많은 직업에서 배제되었고 스탈린의 통치 기간 전 소련을 휩쓸었던 억압의 물결에서 항상 박해받고 체포되기 쉬운 존재였다. 그것은 ‘일종의 공포’였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비에트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출신의 낙인과 ‘망가진 이력(spoilt biography)’의 낙인을 극복하여 언젠가 사회적으로 동등한 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필사적인 생존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협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한 대다수 스탈린 희생자들은 정신적 외상 기억과 감정을 힘겹게 억누르며 살았다. 끔찍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의 울지도 않았다. 참고 견디는 태도와 수동성이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은 사회를 창조한 것은 스탈린이 이루어내 남기고 간 유산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레오니트는 1938년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대숙청과 테러의 시기 체포되어 총살 당한 성직자의 아들이었다. 그는 공장 노동자가 되었을 때나 엔지니어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체포와 총살 사실을 숨겼다. 1965년에 그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고 마침내 일하던 공장의 당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자신의 아버지를 총살하도록 한 스탈린의 광신적인 지지자로 살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베라 역시 스탈린 시절을 향수에 젖어 돌아보고 있다. “규율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채찍도 사용해야 하죠. 오늘날 사람들은 스탈린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위의 책, 513~514).” 그녀는 열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철도엔지니어였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스탈린의 대숙청과 폭력이 한창이던 1937년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또 1939년 네 살 때 부모와 함께 굴라크(노동수용소)로 보내져 힘겨운 노동과 추위, 기근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라이다 파이비소비치 역시 “스탈린 치하의 삶은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웠습니다. 우리는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스탈린에 의해, 소비에트 또는 당의 이름으로 숙청, 총살, 강제이주, 감옥, 기근, 가족 이산 등 파란만장하고 처절한 가족사를 경험한 희생자들의 회고와 향수라고 하기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들이다. 그들이 감내하고 경험해야만 했던 스탈린의 폭력과 가족사의 굴레, 그리고 비참한 생애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이토록 이상한 ‘사랑’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떻게 두려움을 가슴에 묻고 스탈린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들의 스탈린 향수의 서사 안에는 다성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런 태도를 신화와 기억의 뒤섞임으로 해석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희생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그 경험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해주는 더 넓은 서사의 맥락에 놓음으로써 고통과 상처를 보상받고 완충하려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탈린 억압의 희생자들에게는 ‘생존 서사’와 ‘소비에트 서사’라는 두 가지 주요한 집단적 서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희생자들은 거대한 집단적 서사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포함시킬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자신을 덮친 시련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비에트 서사를 따르면, 희생자들이 겪은 고통은 공산주의 이상과 대조국 전쟁의 승리, 혹은 소련이 성취한 업적들에 의해 상쇄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암울했던 장면을 자신의 언어를 통해 상기하기보다는 명예와 자부심, 정당한 복수, 모국, 스탈린, 불가결한 신념 등에 대해 말하면서, 이미 사라진 소비에트 국가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애를 얘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비에트 건설 신화는 그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껴안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대응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소비에트 서사는 희생자들에게 자신들의 희생이 집단적 목표와 성취를 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게 해주면서 위안을 제공하는 기제인 것이다. 그런 방식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비에트 경제에 기여했다는 스탈린주의 이상에서 위안을 찾는 경우이다. 희생자들의 이런 ‘이상한 사랑’은 스탈린을 향한 향수로 지금까지 대중적 심성안에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2005년 1월 전러시아 여론연구소가 수행한 여론조사 당시 러시아인의 42%가 ‘스탈린 같은 지도자’의 복귀를 원했고 60세 이상 응답자 중 60%는 ‘새 스탈린’을 찬성했다는 결과를 예로 든다. 이 향수는 정치나 이데올로기와는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스탈린 시절을 기억하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향수는 과거의 회상에 바쳐진 감정과 더 관계가 있다고 저자는 본다.
가족사가 주는 미덕은 한 가족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경험과 기억을 교차시키며, 이들의 인생경로가 서로 만나고 어긋나고 굴절되고 복원되는 과정을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또한 사회주의체제에서 가족이라는 혈연적 이력과 끈, 정서는 끊임없이 이들의 사회적 삶을 규정하고 옭아매고 어렵게 하는 굴레 이면서 한편으로 끊임없이 체제의 억압으로서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해 갈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추적하고 묘사하는 가족사는 억압받은 가족이라는 거친 일반화로는 포착되지 않는 가족 개개인들이 경험한 삶의 충격, 개인적 배신과 잃어버린 관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아낸 고유한 내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가족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스탈린 체제를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방대한 규모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가족 문서고를 활용한 부분은 사회주의 체제 연구 및 구술사 연구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저자는 러시아의 유명한 인권 단체인 ‘메모리알’ 협회의 도움을 받아 총 1천 명 이상의 사람들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원자료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포함할 가족들을 선택했다. 모든 가족이 인터뷰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였고 긴 시간 인터뷰를 통해 가족의 기억을 수집해 재구성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저자가 설명하는 '소비에트 서사'가 스탈린 체제의 희생자들에게 제공하는 기능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희생자들이 스탈린 체제에 대해 보이는 '이상한 사랑' 혹은 향수의 원인을 설명하는 '소비에트 서사'의 역할을 파악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소비에트 서사'와 관련된 정의 및 희생자들의 심리적 상태를 추출한다.
- 저자는 스탈린 억압의 희생자들에게는 ‘생존 서사’와 ‘소비에트 서사’라는 두 가지 주요한 집단적 서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 소비에트 서사를 따르면, 희생자들이 겪은 고통은 공산주의 이상과 대조국 전쟁의 승리, 혹은 소련이 성취한 업적들에 의해 상쇄되는 것이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소비에트 서사가 고통을 어떻게 처리하고 희생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핵심 문구를 선택한다.
- 소비에트 건설 신화는 그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껴안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대응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 소비에트 서사는 희생자들에게 자신들의 희생이 집단적 목표와 성취를 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게 해주면서 위안을 제공하는 기제인 것이다.
- 그런 방식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희생자들이 겪은 개인적 고통이 소비에트 서사(공산주의 이상, 국가적 업적 등)와 결합하여 어떻게 심리적 보상으로 이어지는지 논리적으로 연결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소비에트 서사는 개인의 고통을 집단적 목표를 위한 희생으로 재해석하게 함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수용하고 심리적 위안을 얻게 하는 대응 기제 역할을 한다고 결론짓는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정리된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저자는 스탈린 억압의 희생자들에게는 ‘생존 서사’와 ‘소비에트 서사’라는 두 가지 주요한 집단적 서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 소비에트 서사를 따르면, 희생자들이 겪은 고통은 공산주의 이상과 대조국 전쟁의 승리, 혹은 소련이 성취한 업적들에 의해 상쇄되는 것이다.
- 소비에트 건설 신화는 그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껴안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대응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 소비에트 서사는 희생자들에게 자신들의 희생이 집단적 목표와 성취를 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게 해주면서 위안을 제공하는 기제인 것이다.
- 그런 방식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소비에트 서사는 희생자들이 겪은 개인적인 고통을 공산주의 이상이나 대조국 전쟁의 승리, 소련의 업적과 같은 집단적 목표와 성취를 위한 희생으로 재해석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며 심리적 위안을 얻고 자신의 고통과 화해할 수 있게 돕는 대응 기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