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한편, 니체에게 있어 행복한 삶의 요체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니체는 행복을 고통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고통은 즐거움을 경험하는데 있어 불가피한 것이며, 고통 속에서 행복의 필요조건들-예를 들어 창조적 과제의 추구 활동, 앎을 위한 노력과 수행 등-이 생성되는 것이다. 흔히들 고통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는데, 니체 역시도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삶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고통을 행복으로 가기 위해 거처야 할 하나의 관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니체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의 긍정은 디오니소스적(Dionysus)인 긍정이다. 즉,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잣대에 따라 자신의 삶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신의 전체 삶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과거의 삶, 특히 삶의 고통스러운 삶의 부분을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카뮈(A. Camus)에게 있어 실존적인 질문은 하나의 선험적 조건으로 부과된 부조리 앞에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카뮈는 ‘시지프(Sisyphus) 신화’에서 부조리한 삶에 대한 대안을 찾는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대책으로서 ‘자살’, ‘희망’, ‘반항' 세 가지를 예시하는데, ‘자살’과 ‘희망’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반항만을 참된 해결책으로 꼽는다. 인간에게 있어 자살이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한쪽 항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희망, 즉 종교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다른 쪽 항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을 끊임없는 유지하는 것인데, 반항이야말로 세계의 모순을 살아 있는 의식으로 바라보며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카뮈가 반항하는 인간으로 등장시키는 인물이 시지프이다. 제우스로부터 거대한 바위를 산정에 들어 올리는 벌을 받은 시지프는 악전고투 끝에 바위를 산정에 올려놓는 순간 자신의 고역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바위는 다시 밑으로 떨어지고 한순간이나마 자신의 성공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던 시지프는 다시 바위를 따라 산기슭으로 내려간다. 벌이란 죄에 대해 일정한 고통을 주는 행위이지만,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벌이 아니다. 시지프가 산정에 바위를 올리는 순간 느끼는 행복은 비극적 행복이자 혼자만의 자위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음 이외에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또 어떤 행복이 가능할까? 라고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되묻는다. 사는 동안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반항이라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표적 학자인 러프(C. Ryff)는 주관적 안녕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심리적 안녕(psychological well-be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인간의 행복과 성숙에 깊은 관심을 지녔던 매슬로우(A. Harold Maslow)나 로저스(C. Rogers)와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통합하여, 심리적 안녕의 6가지 요소로서 환경의 효율적 통제, 타인과의 긍정적인 인간관계, 자율성, 개인의 성장감, 인생의 목적의식, 자기수용을 제시하였다. 한편 페터슨(C. Peterson)과 세리그만(M. Seligman)과 같은 학자들은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인간의 긍정적 성품과 덕성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면서, 인간의 성격강점과 덕성에 대한 분류체계를 제시하였다. 이들은 개인이 지니고 있는 성격강점과 덕성을 인식하고 일상생활에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구현하는 핵심적 조건으로 여긴다.
자기가 주도하는 삶의 양식은 ‘자존감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자존감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감정이다. 자존심이 열등감에 다른 얼굴로서 부정적 자의식에 따른 것이라면, 자존감은 자신을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자의식의 결과이다. 이 같은 자존감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게 되는데,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처럼 연구참여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 결과이기도 했다.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거나, ‘돈이 안 되는 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자신이 설정한 기준으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은 ‘자기 드러내기’와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기’는 상대방의 인정을 통해 확보될 수 있는데, 이들의 삶을 지켜본 사람들은 지지와 격려를 해주었다. 가족들이나 동료들은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자신의 자녀, 부모, 형제, 동료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에 의미와 가치를 두고 그들의 삶 자체를 인정해주었다.
본 연구에서 중심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주도적으로 살아가기’였으며, 이 결과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기’라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또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기’의 하위 범주는 ‘만족감을 통해 행복감을 느낌’과 ‘편안함을 통해 행복감을 느낌’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구분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족감은 욕구가 결핍된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허기가 진 상태에서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나면 포만감을 느끼는데, 이는 그 순간에 가장 필요한 욕구를 충족했기 때문에 포만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만족감은 일시적인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만족감이 일을 통해 나타나는 성취감에 기초하거나 자신감으로 이어지면서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이어질 경우 행복감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연구참여자 2와 3이 가지는 감정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감이었으며, 이는 행복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을 통한 만족감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확장될 경우에도 행복감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만든 음식에 만족을 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어머니의 감정은 만족감과 행복감이라는 감정이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참여자 6의 경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여자 친구가 인정해준다는 것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연구참여자 7과 9처럼 여성 참여자들의 경우 자녀들이 잘 자라주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이와 같은 자녀 양육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은 만족감을 넘어 행복감으로 이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한 삶에 대한 세 가지 대책 중 '자살'과 '희망'이 왜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각각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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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카뮈가 제시한 부조리에 대한 세 가지 대책(자살, 희망, 반항) 중 자살과 희망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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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카뮈가 언급한 세 가지 대책과 각 대책이 부조리의 구성 요소와 맺는 관계를 추출한다.
- ‘자살’, ‘희망’, ‘반항' 세 가지를 예시하는데
- ‘자살’과 ‘희망’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반항만을 참된 해결책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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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자살과 희망이 왜 회피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문장을 선택한다.
- 인간에게 있어 자살이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한쪽 항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 희망, 즉 종교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다른 쪽 항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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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부조리는 '인간의 의식'과 '있는 그대로의 세계'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살은 의식을 삭제하고 희망은 세계를 삭제함으로써 부조리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의 구성 요소를 제거하여 문제를 회피하는 것임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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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자살은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기 때문에, 희망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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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성한다.
근거 (evidence)
- ‘자살’, ‘희망’, ‘반항' 세 가지를 예시하는데
- ‘자살’과 ‘희망’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반항만을 참된 해결책으로 꼽는다.
- 인간에게 있어 자살이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한쪽 항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 희망, 즉 종교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다른 쪽 항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자살은 부조리의 한 축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희망(종교)은 부조리의 다른 축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