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21세기 들어 노골화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이중적이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대일 인식은 ‘강한 일본론(proactive Japan)’과 ‘신중한 일본론(prudent Japan)’으로 대별할 수 있는 바, 이들 논의는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전자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미·일 동맹의 강화를 통한 일본의 정치·안보적 역할 확대를 주장한다. 반면 후자는 일본이 역사·영토 문제로 주변국들과 충돌을 자제해야 하며, 미·일 동맹 강화가 노골적인 대중 봉쇄로 비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는 입장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베 내각이 지향하는 미·일 동맹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적 의미에서의 보통 국가화 작업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었다. 아베의 보수적 담론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안보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촉진제로서의 효용이 있었다. 미국이 예산 제약으로 동아시아 안보 관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적 방위력 정비와 미·일 동맹 강화를 외치며 지역적 안보 역할 확대를 지향하는 아베 내각은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였다.
그리고 특정 국가의 위협 인식은 그 국가의 과거사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전술한 대로, 21세기 들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미국이 경계심이 있었지만, 미·중 간 세력 경쟁의 심화에 따라 미국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제고하였고,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 비판하기보다 과도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협 인식 변화가 미국의 대일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미국이 한·일 간의 역사 마찰에 우려를 표하고 중재에 나선 데는 양국 간 역사 마찰이 미국의 아·태 안보전략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중국은 일본 그리고 미·일 동맹에 대한 위협 인식이 증가할수록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후 중국은 냉전기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국가 배상을 포기하는 등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탈냉전 이후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미·일 동맹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의 취약점을 노출시키고자 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위안부 문제와 같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연대하여 일본을 압박하려는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2014년 7월에 방한한 시진핑 주석은 한·중 양국의 항일 역사를 강조하였고, 중국 관영 언론은 항일 전쟁, 광복 70주년 공동행사 제안 등을 부각시켰다. 이후 중국 정부와 지방 정부들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와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등 중국 각지의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 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대응을 이어 갔다. 셋째, 위에 지적한 다자화와 관련되는 것으로, 안보와 역사 간의 상호작용(연계)의 증가가 갖는 함의이다. 우선 특정 국가의 역사적 경험은 그 국가의 위협 인식과 안보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외부 위협을 판단하는 기준은 상대국의 객관적 국력(능력) 외에 적대적 의식(의도)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각국은 지정학적 조건과 집단 기억을 토대로 타국의 의도를 판단한다고 할 수 있다. 외세의 침략 또는 집단 학살을 경험한 국가는 상대국의 적의에 매우 민감하고, 침략당한 역사적 기억은 상황 변화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미·일 간에도 역사 화해의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2016년 5월에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12월에 아베의 진주만 방문으로 미·일 양국 간에 역사 문제는 암묵적인 화해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전후 미·일 양국은 안보조약을 맺고 동맹관계에 들어갔지만, 제2차 대전에서 적대국 관계였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과 미군 포로의 비인도적 취급 문제가,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폭 투하, 전쟁 중에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 등이 양국 간 역사관 충돌과 불신의 씨앗이었다. 이와 같이 과거사 갈등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히로시마와 진주만을 양국의 최고 지도자가 공동으로 방문한 것은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상호 화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2015년 4월의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 8월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의 발표, 그리고 올해 5월의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의 히로시마 및 진주만 공동 방문으로 이어진 일련의 행보는 미·일 간의 전후 처리 노력의 역사적 집대성이라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제2차 대전의 모든 희생자를 추도하고, 원폭 투하 이래 미·일 양국이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작년 미 상하 양원 합동 연설을 언급하면서 미·일 관계의 미래비전으로 “세계에 희망을 주는 미·일 동맹”을 역설했다. 오바마는 히로시마의 교훈이 “핵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도덕적 자각의 시작”으로 기억하는 데 있다면서 핵무기의 폐기를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지만,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진주만에서 아베 총리는 전쟁의 참화를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부전 의 맹세”를 재차 표명하고, ‘관용의 마음’과 ‘화해의 힘’을 강조하여 미국의 관용이 미·일 화해의 힘을 가져와 치열한 전쟁을 싸운 양국이 역사상 보기 드문 동맹이 되었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호응하여 미·일 양국이 “가장 증오하던 적의 관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 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아베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및 진주만 공동 방문에는 역사 인식과 아시아에 대한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두 정상은 미·일 간의 역사관 충돌의 핵심인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 책임, 원폭 투하의 정당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양국의 국내 여론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공통의 인식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지도자의 상호 방문으로 미·일 사이에 전쟁을 둘러싼 앙금과 역사관의 충돌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또한, 아베 총리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일본의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사죄도 언급하지 않았기에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 화해에 기여한 것도 없다. 그렇지만, 미·일 관계의 ‘밀월기’로 불리는 오바마-아베 정부 시기의 마지막 해에 양국 정상이 태평양 전쟁의 중요한 장소를 공동 방문하여 양국 간의 불편한 역사관 충돌을 암묵적인 화해로 극복한 데는, 동아시아 안보 질서의 불투명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오바마-아베 정부 시기의 마지막 해인 2016년에 미·일 정상은 제2차 대전(태평양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히로시마와 진주만을 공동 방문하여 양국 간의 불편한 역사 문제에 암묵적인 화해를 시도하였다. 그 배경에는 동아시아 안보 질서의 불투명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이념보다 실리 위주의 트럼프 신정부 하에서 과거사 문제는 미·일 관계의 주요 현안에서 탈락하고,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어들 개연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는 한·일 간 과거사 마찰이 재연될 경우 무관심과 불편함을 보일 수 있는 바, 아베 내각의 역사 수정주의적인 언행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한국에 불편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미·일 양국이 미·일 동맹의 유지·강화를 토대로 한국에 대해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요구할 경우, 안보와 과거사 문제의 괴리에 따른 한국의 외교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이상에서 관찰한 과거사 관련 국제 동향이 동아시아에 주는 함의로서 첫째, 역내 국제관계에서 과거사 문제의 비중 증가 및 역내 역사 갈등의 가속화를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상호의존과 글로벌화에 따른 경쟁 격화 및 부작용, 경기 침체의 장기화 등 국제경제의 불투명성이 증가하고, 이민, 난민, 테러 등 새로운 안보이슈가 등장하면서 초국가적인 탈근대 가치체계에 대한 회의와 함께 국가 주체성이 중시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강한 국가’에의 국민적 염원을 자극하는 ‘정체성의 정치’가 시대적 대세가 되면서, 역내 국가들 간에 국가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과거사 관련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배경에는 미국 우위의 국제체제가 이완되는 파워의 확산(다극화)이 두드러지고, 이른바 ‘강대국 정치’ 내지는 ‘지정학의 부활’이 회자되는 시대적 상황이 있다.
본고의 분석을 통해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과거사 문제의 비중이 증가하고, 최근에는 미·중·일 간 세력 경쟁의 맥락에서 역사 인식과 안보가 연계되는 경향(다자적 성격 및 안보와의 연계성)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냉전의 종결 그리고 미·중·일 간의 파워·밸런스 변화에 의해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패권 경쟁의 가시화, 중·일 간의 경쟁 구도, 일본의 지역 강국화 등 동아시아 안보 질서의 지각변동은 한국 외교에 새로운 도전을 불러왔다. 동아시아 파워·밸런스 변화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도 미·중·일 간의 전략 게임의 성격을 더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미·일 동맹 및 한·미·일 연대를 견제하는 ‘역사 카드’로 활용하고자 하고, 미국은 한·일 간의 지나친 과거사 마찰을 우려하고 일본은 한·중 연대에 의한 대일 역사 비판을 경계하고 있다. 안보와 역사의 연계 여부를 둘러싼 미·중·일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정책은 미·중·일 3국의 전략 게임의 시각에서 해석될 소지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내 정치 요인 즉, 탄핵정국 하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대외관계의 장악력 약화 및 국내 정치와 대외관계 연동에 따른 대일 정책의 재검토 요구 증대 가능성은 한·일 관계의 이완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탄핵 판결과 대통령 선거라는 예외적이고 과도기적인 정치과정에서 2015년 말에 타결된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 2016년 11월말에 체결된 GSOMIA 등의 재검토 요구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 경우 한·일 관계의 긴장 수위는 높아질 것이다. 2017년에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정착된 ‘투 트랙 어프로치’의 기조 위에서 대일 정책의 연속성 확보 문제가 한·일 관계의 핵심 현안이 될 것이다. 향후 한국의 정권 교체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 시기의 소원했던 한·일 관계를 극복하고 전통적인 우호 협력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재연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하였지만 결국은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 비추어 볼 때, 한·일 과거사 문제의 복합성(다자적 성격 및 안보와의 연계성)과 정책 연속성을 감안한 대일 전략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미국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경계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중 세력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취하게 된 태도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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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미국의 대일 역사 수정주의 대응 태도가 미·중 세력 경쟁이라는 환경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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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미국의 기존 입장과 미·중 관계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21세기 들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미국이 경계심이 있었지만
- 미·중 간 세력 경쟁의 심화에 따라 미국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제고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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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미국의 구체적인 대응 방식이 명시된 문구를 선택한다.
-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 비판하기보다 과도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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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미·중 경쟁 심화로 인한 미·일 동맹의 중요성 증대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완화(용인)시키는 원인이 되었음을 연결한다.
- 미·중 간 세력 경쟁의 심화에 따라 미국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제고하였고
-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 비판하기보다 과도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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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미국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여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신, 일정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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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21세기 들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미국이 경계심이 있었지만
- 미·중 간 세력 경쟁의 심화에 따라 미국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제고하였고
-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 비판하기보다 과도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미국은 미·중 간 세력 경쟁의 심화로 인해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제고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과도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하는 태도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