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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나라사랑 제8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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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9997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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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9997525_1
발행기관
국가보훈처
발행연도
2014
KDC
19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950년 10월 중순, 작전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국군과 유엔군은 추수감사절(11월 23일)까지는 전쟁을 종료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총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추수감사절 공세’를 계획했다. 이에 따라 맥아더 원수는 “전 병력을 투입해 최대한의 속도로 압록강과 두만강선까지 진격하라”는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그것은 그가 설정했던 유엔군 부대의 북진한계선을 철폐하는 조치였다. 그 결과 북진작전 중인 각급 부대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총진격을 서두르게 됐다. ‘추수감사절 공세’ 계획에 따라 10월 24일, 국군과 유엔군은 총공격을 감행해 서부전선에서 청천강을 도하해 압록강을 향하고, 동부전선에서 함흥과 흥남을 점령한 다음 장진호와 청진 방향으로 진격했다. 중공군의 제1차 공세에 의해 철수한 미 제8군이 청천강 남쪽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11월 7일경,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중공군이 갑자기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가 조성됐다. 유엔군 측에서는 그 같은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동정을 파악할 수 없게 된 미 제8군은 공중정찰과 위력수색 등을 강화하면서 영변과 박천을 탈환했다. 이어 유엔군사령부는 소강상태가 지속되는 시기를 이용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각각 1개 군단을 투입했다. 이때쯤 중공군의 개입 사실을 인정한 맥아더 원수는 그들의 조직적인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공세를 계획했다. 그는“이번 작전이 전쟁의 최종공세가 될 것이며, 10일 이내에 전쟁을 끝내고 크리스마스까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힘을 낸 국군과 유엔군은 11월 24일 ‘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했다. 그때 중공군은 제13병단이 적유령산맥 남쪽 일대에서, 제9병단이 장진호와 개마고원 일대에서 전투대형을 갖추고 국군과 유엔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유엔군이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한 바로 다음날인 25일, 그들의 두 번째 공세를 시작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총공세를 시작함에 따라 중공군은 다음날인 10월 25일부터 전쟁에 투입된 이후 처음으로 공세작전을 감행했다. 그들은 압록강을 도하한 6개 군 중 5개 군을 서부전선 적유령산맥 남단에 전개시켜 운산 - 희천 방향으로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동부전선에서는 1개 군을 장진호 북쪽에 전개시켜 국군과 유엔군의 전진을 저지하게 했다. 접전이 전개될 무렵 국군의 선봉부대인 제6사단 제7연대는 그 진출로가 중공군의 공격 경로와 엇갈렸던 관계로 26일 압록강변 초산에 도달했다. 또한 서해안 축선상에서 미 제24사단과 영연방 제27여단이 11월 1일에 신의주 남서쪽 33㎞ 지점의 정거동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공격하던 부대들은 강력한 중공군의 저항에 부딪혀 붕괴되거나 그들의 포위망에 고립됐다. 이로 인해 국군 제2군단의 전선이 붕괴됐고, 미 제1군단의 사정도 비슷했다. 이른바 중공군의 제1차 공세였다. 이로써 추수감사절 공세는 예상하지 못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좌절됐다. 중공군의 제2차 공세도 제1차 공세와 같이 유엔군에게 기습적이었다. 유엔군 측에서는 크리스마스 공세를 취할 때까지도 중공군의 병력은 의용군으로 구성된 단지 몇 개 사단에 불과하며, 중국이 주력을 투입해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직적 지휘체제를 갖춘 중공군 30개 사단 30만여 명이 투입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국군과 유엔군은 도처에서 출현한 중공군과 격돌하게 됐다. 중공군은 미 제8군의 우측방으로 주공을 지향시켜 청천강 이남으로 진출했다. 동부전선에서는 장진호 일대에서 미 제1해병 사단을 포위했다. 눈 덮인 산골짜기에서 중공군은 엄청난 힘으로 밀어닥쳤다. 군우리에서 미 제2사단이 괴멸됐으며, 장진호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포위돼 버렸다. 30만 명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 개입을 전혀 예상치 못한 유엔군사령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마치 눈사태를 만난 것 같은 상황 아래서 공세를 중단하고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은 치열한 장진호 전투를 통해 철수를 위한 방어작전을 치르고, 수많은 군과 민간인을 구한 흥남철수작전으로 이어진다. 중공군의 대대적 개입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벌어진 장진호전투는 그야말로 생존을 건 버티기 작전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벌어야 철수가 시작된 국군과 유엔군, 민간인의 안전한 후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진호전투를 배경으로 한 흥남철수작전은 위기에 아군이 북한지역의 험준한 산간계곡을 빠져나와 안전하게 후퇴를 완성해낸 작전이다. 1차로 국군 제3사단이 12월 10일 성진을 출항하여 부산으로 떠난 다음, 이 지역에 남은 미군 3개 사단과 국군 수도사단은 흥남에 집결해 미 제10군단 지휘 아래 철수하게 된다. 미 제10군단은 흥남시 둘레에 설정된 3중의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함포 지원과 공중화력 지원을 받아가며 교두보를 총력 방어했다. 12월 15일 미 해병 제1사단의 출항을 시작으로 국군 수도사단, 미 제7사단이 차례로 흥남항을 벗어나면서 교두보의 방어선은 차차 축소됐고, 제3방어선에 남았던 미 제3사단이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나면서 철수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강길영 해병 중위는 1949년 4월 15일 처음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소총병으로 인천상륙작전, 수도 서울 탈환작전 등에 참여해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후 해병간부후보생 제3기로 종합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1951년 소위로 임관, 가리산 및 화천지구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1951년 9월 1일에 해병 제1연대 3대대 11중대 선임장교로 강원도 양구 전방의 펀치볼 확보를 위한 전술적 요새인 924고지 전투에 참가해 중대의 선두에서 돌격전을 감행하던 중 적탄에 의해 전사했다. 924고지의 공격 과정에서 제11중대는 전진을 거듭해 적진 100m 전방까지 다다랐는데, 이때 최후의 돌격을 지휘하던 중대장 육동욱 중위가 적탄에 목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자 중대 선임장교인 강길영 소위는 쓰러진 중대장을 잡고 ‘중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일성 고지는 우리가 꼭 점령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선두에 섰다. 그는 중대의 선두에서 돌격전을 감행하던 중 적탄에 의해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희생으로 다음 날 아침 우리 군은 김일성 고지를 점령했다. 국가보훈처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는 영연방 4개국(영국,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의 한국전 전사자 유가족 30여 명을 초청해 20일부터 26일까지 6박 7일간 4개국 전몰장병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을 찾은 헤닝거 씨(캐나다), 7살의 어린 나이에 20대의 젊은 아버지를 한국전쟁에서 잃은 딸 파렐 씨(아일랜드) 등 6·25전쟁으로 인해 애틋한 가족사를 가슴에 안은 유족들을 초청했다. 방한한 유족들은 21일 국립현충원 참배, 전쟁기념관 유엔 전사자 명비를 찾아 헌화 행사를 갖고 삼성딜라이트 IT체험장을 방문해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체험했다. 24일에는 부산유엔기념공원에서 개최된 유엔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25일에는 판문점 등 분단의 현장을 견학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25일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초청 만찬을 개최하고 이국땅에서 부모, 형제를 잃은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격려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흥남철수작전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난 부대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흥남철수작전의 종료 시점과 마지막으로 철수한 부대를 확인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흥남철수작전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부대별 출항 시점을 추출한다.

    • 1차로 국군 제3사단이 12월 10일 성진을 출항
    • 12월 15일 미 해병 제1사단의 출항을 시작으로 국군 수도사단, 미 제7사단이 차례로 흥남항을 벗어나면서
    • 제3방어선에 남았던 미 제3사단이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나면서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철수 작전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문구를 선택한다.

    • 제3방어선에 남았던 미 제3사단이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나면서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에 따르면 12월 10일, 15일, 그리고 24일에 걸쳐 부대들이 철수했으며, 24일에 떠난 부대가 마지막임을 알 수 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2월 24일에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난 부대는 미 제3사단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차로 국군 제3사단이 12월 10일 성진을 출항
  • 12월 15일 미 해병 제1사단의 출항을 시작으로 국군 수도사단, 미 제7사단이 차례로 흥남항을 벗어나면서
  • 제3방어선에 남았던 미 제3사단이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나면서
최종 답변 (final_answer)
미 제3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