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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남북법제 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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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4240920054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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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4240920054481_21
발행기관
법제처
발행연도
KDC
36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남한은 1973년부터 지역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농어촌지역에 새마을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전국에 걸쳐 517개의 새마을공장이 지어졌는데, 88.5%에 해당하는 442개가 읍·면 단위의 농촌지역에 입지했다. 무엇보다도 새마을공장으로 인한 가장 큰 효과는 농촌 및 도시지역에서 많은 고용창출효과를 낳게 하였다는 점에 있다. 또한 새마을운동은 1971년부터 1978년 기간 중 연인원 457백만 명의 동원을 통해, 유휴노동력의 동원을 통한 자본형성을 실현케 했다. 북한에서의 농촌근대화촉진법 및 새마을운동의 이식 역시 이러한 고용창출 및 자본형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조직화를 통한 교육이 중점을 이룬 만큼, 조직 운영 및 교육만으로도 많은 수의 유휴노동력 동원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농업의 6차 산업화를 통한 융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만큼, 향후 북한지역에 지어질 새마을공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면 지역 경제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된다. 1989년 독일의 국경개방과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동독 주민들의 서독으로의 대량 이주사태는 서독 정부에게 커다란 정치․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서독정부는 1989-1990년 당시와 그 이전까지 동독이탈주민의 서독으로의 입국에 조건을 붙이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동독이탈주민의 서독으로 이주한 대부분은 숙련 기술을 보유한 청․장년층이었기 때문에 동독정부는 고급 노동력 상실에 따른 경제침체가 우려되었고, 서독정부 역시 동독이탈주민의 유입으로 야기될 서독의 주택시장 및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 등을 감안하여 정치적 이유에 의한 탈출이 아닌 한 난민의 유입을 적절히 줄이고자 했으나 현실적으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후 서독정부는 동독주민들의 서독 유입 문제를 국내 정치․경제․사회적 관점에서 고려하며 서독 이주 희망자들을 동독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모색하였다. 동독이탈주민의 서독으로의 대량 유입은 서독 정부에 주택부족과 실업자 보험의 추가 지출, 그리고 제반 사회문제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독일정부가 1990년 통일이후 향후 10년 간 지출한 통일비용의 규모가 약 3,000조원이었다. 그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동독주민의 대 서방탈출은 1989년 5월 7일 지방선거에서의 부정선거와 5월 초 헝가리의 대 오스트리아 국경철폐로부터 시작되었다. 1989년 6월 27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외상은 쇼프론에서 국경 철조망 단절 행사를 통해 양국간 국경선을 개방했다. 이를 계기로 1989년 8월 8일 하루동안 수천 명의 동독 주민이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소재 독일대사관으로 각각 진입하였다. 이후 3일동안 약 1만5천명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당시 서독 외무장관 겐셔는 프라하의 독일대사관에 체류 중이던 동독 주민 6,000명을 특별열차를 통해 서독으로 입국시켰다. 이후, 1989년 10월 7일 동독에서는 전국적인 반정부시위가 발생하였고, 동독 정부는 11월 3일 동독 주민들에게 체코 국경을 통과해 서독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고, 이후 이틀 동안 무려 1만 5천명의 동독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11월 9일 귄터 샤보브스티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발적으로 해외여행 자유화를 공표함으로써 당일 하루동안 동독주민 20만 명이 서독으로 월경하였다. 통일독일이 되면서 독일에서는 여성실업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먼저, 구서독지역과 구동독지역을 나누어 볼 때 구동독지역의 실업률이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1990년 7월 동독과 서독이 체결한 화폐경제 및 사회통합을 위한 조약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시장에서 구동독 지역 여성의 지위는 현격히 하락하였다. 특히 동독지역 여성의 실직률은 동독지역 남성과 비교 하였을때도 현저히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통일 후 많은 시간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2009년 통계에서 구서독 지역의 실업률은 6.4%, 구동독지역의 실업률은 12.6%, 2007년 25세 미만의 실업률은 구서독지역에서 6.9%, 구동독 지역에서는 14.4%로 두 배에 달한다. 25~35세 동독여성들이 느낀 실직의 불안감은 서독의 젊은 여성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매우 큰 것이었다. 동서독의 젊은 여성들의 직업관을 비교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서독의 2-30대 젊은 여성들의 대부분의 직업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반면 동독의 2-30대 여성들은 동독시절 전문교육을 받았던 경력과 상관없이 50% 이상이 실업상태에 놓여있거나 일자리를 바꾸기 위해 재교육에 참여 중이었다. 또한 북한 사회 내 여성의 정치적·경제적 지위의 실태 역시 제도의 영향력이 미비하였음을 보여주었다. 당 및 행정의 요직과 간부직은 주로 남성들 위주로 구성되었고, 여성 대의원 할당제를 정책적으로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비하였다. 이렇게 불완전한 법·제도 및 정치적·경제적 지위에서 통일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시, 북한 여성들이 ‘통일의 상실자’가 될 것은 쉽게 예상 가능한 일이다. 여성 북한이탈주민 및 독일 통일 시 동독 여성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➀ 실업 등 경제적 문제, ➁ 시장경제에 대한 정서적 적응문제를 주요한 문제로 꼽아볼 수 있다. 여성 북한이탈주민들은 낮은 경제활동참가율과 낮은 고용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독일통일 시 구동독지역 여성들의 실업문제가 통일 독일에 복합적 문제로 대두된 바 있었다. 북한 여성들이 남한사회에 편입될 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적응 문제 역시 심각하다. 여성의 생산현장 및 사회적 노동을 장려하기 위해서 북한은 일찍부터 제도를 마련해 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임산부 산전산후 휴가 등 여성이 노동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한 노동법을 제정하는 등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법적 정비가 먼저 이루어졌다. 여성들이 생산현장에 나서게 되면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경제적 자립도를 높아 질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통하여 넓게는 사회적 참여를 촉구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북한은 자녀양육 및 가사노동을 국가의 영역에 두었다. 그러나 2008년의 「성별, 직종별 16살 이상 로동인구수 통계」 에서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식당봉사원, 봉사로동자, 비재적 로동자, 식물재배(농산, 과일, 온실, 조림)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월등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상급단위 책임일군, 사회단체 책임일군, 관리국, 련합기업소의 책임일군, 공장, 기업소의 책임일군에 있어서는 미미한 수를 보이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결국 여성의 노동을 장려한 북한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비교하여 하위 직종에 종사하였던 경우가 많았다. 북한 내 직장에 다니는 여성은 ‘조선직업총동맹(직맹)’, 30~61세 협동농장원 여성은 ‘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에 소속되어 있었다. 주부들은 주로 대표적인 여성단체인 ‘조선민주녀성동맹(여맹)’에 가입되어 있었고, 여맹은 18세 이상의 여성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단체 활동은 교육의 연장선상으로 여성의 사회참여의 강화와 동원기제의 하나로 작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여성정책은 1961년부터 사상혁명과 관련하여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임무가 주요한 내용이 되었다. 여성동맹이 자녀에 대한 공산주의적 교육 및 여성사상교육을 주도적으로 실시하였고, 어머니학교와 대회를 개최하는 등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즉 북한은 기존의 방향에서 북한 내 경제적 어려움의 증가에 따라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 정부가 동독 이탈 주민의 유입을 줄이기 위해 시행했던 구체적인 긴급 대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독일 통일 당시 서독 정부가 동독 주민의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했던 구체적인 긴급 대책의 내용을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는 서독 정부가 동독 이탈 주민의 유입으로 인한 주택시장 및 노동시장의 충격 등을 고려하여 유입을 줄이고자 했으며, 이들을 동독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모색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 서독정부 역시 동독이탈주민의 유입으로 야기될 서독의 주택시장 및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 등을 감안하여 정치적 이유에 의한 탈출이 아닌 한 난민의 유입을 적절히 줄이고자 했으나 현실적으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 이후 서독정부는 동독주민들의 서독 유입 문제를 국내 정치․경제․사회적 관점에서 고려하며 서독 이주 희망자들을 동독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모색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서독 정부가 긴급 대책을 '모색하였다'는 사실은 명시되어 있으나, 그 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서독 이주 희망자들을 동독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모색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을 종합하면 서독 정부가 대책을 세우려 노력했다는 정황과 목적은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어떤 정책이나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긴급 대책의 구체적 내용'은 문맥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답을 도출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서독정부 역시 동독이탈주민의 유입으로 야기될 서독의 주택시장 및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 등을 감안하여 정치적 이유에 의한 탈출이 아닌 한 난민의 유입을 적절히 줄이고자 했으나 현실적으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 이후 서독정부는 동독주민들의 서독 유입 문제를 국내 정치․경제․사회적 관점에서 고려하며 서독 이주 희망자들을 동독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모색하였다.
  • 서독 이주 희망자들을 동독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모색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서독 정부가 동독 주민의 유입을 줄이기 위해 긴급 대책을 모색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으나, 해당 대책의 구체적인 실행 내용이나 방법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