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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1122025775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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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발행연도
2013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민권사상에 기초한 만민공동회의 「헌의 6조」는 황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황제와 기득권 세력은 독립협회를 탄압했다. 독립협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투옥시켰다. 정치개혁을 거부한 대한제국이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됨으로써 민권사상을 실천하려는 한민족 내부의 에너지에 대한 탄압 주체는 대한제국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 일본은 대한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우리 민족 내부의 민권사상 실현 움직임을 탄압했다. 많은 민권사상가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3·1운동 직후 민족국가의 건국을 위한 준비조직으로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는 대한제국 말엽에 우리 민족의 선각자들이 취했던 민권사상 수용의 전통을 계승한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치기구를 설립한 것과 더불어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고종을 국외로 모셔가려는 것으로 추진되었다.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유인석을 도총재로 한 13도의군을 결성하고, 고종에게 연해주로 파천하여 독립운동을 이끌 것을 권유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 그러한 시도였다(윤병석 1998: 130). 이러한 시도는 한 차례 더 있었다. 1915년 중국에서 활동하던 박은식·이상설 등이 신한혁명당을 조직하고, 고종을 중국으로 모셔가려고 한 것이다(강영심 1988: 128-129).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성사되지 못하였지만, 고종을 국외로 모셔다가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의도였다. 국외 각 지역에서 자치기구를 설립하여 활동하던 독립운동자들이 이보다 더 발전된 형태, 즉 한민족의 대표기구를 세우자고 주장하였다. 1917년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던 신규식·조소앙·박은식 등이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전민족이 대동단결하여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최고기관’을 설립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독립을 선언한 후, 국내외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 독립국을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중심지는 중국 상해였다. 상해는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신규식이 망명하여 중국의 혁명당 인사들과 교류를 맺으며, 1910년대부터 중요한 국외의 독립운동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1917년 이곳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민족의 대표기구를 수립하자고 제안한 곳이기도 하였고, 신한청년당이 결성되어 국내외 각지에 연락을 취하여 상해로 오도록 하였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독립을 선언한 직후 상해로 모여들었다. 연해주에서 이동녕·조완구, 만주에서 조소앙·이시영·김동삼, 북경에서 조성환·이회영, 일본에서 이광수·최근우, 국내에서 현순·최창식·신익희, 미국에서 여운홍 등 많은 인사들이 상해로 집결하였다(김희곤 2004: 87). 3월 말에 이르면 그 숫자가 1천여 명을 헤아릴 정도가 되었다. 이들이 상해로 모여든 이유는 독립선언을 통해 천명한 ‘독립국’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독립을 선언한 후, 상해 이외에 다른 곳에서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수립된 임시정부 중에는 수립한 주체와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진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전단으로만 알려진 경우도 있다. 실제적인 인적기반과 조직을 갖춘 정부는 세 곳이었다.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가 그것이었다. 세 곳의 임시정부는 지역적 기반도 달랐고, 인적 기반도 같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하고 서로 연락이 어려운 가운데, 각각의 지역적 기반을 배경으로 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그러나 세 임시정부가 모두 민족의 대표기구로 역할할 수는 없었다. 통합 문제는 연해주 측에서 먼저 제기하였다. 대한국민의회 상설의회 의장인 원세훈이 상해로 와 노령에도 국민의회가 있으니 의정원을 합하고 정부를 노령으로 옮기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해에는 이 문제를 주도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국무총리 이승만을 비롯하여 각원들 대부분이 아직 취임하지 않은 상태였다. 법무총장 이시영만 상해에 있었다. 한반도에 거주하던 한민족 구성원의 압도적 다수는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독 립국가 건국의지를 몸으로 확인했다. 한민족의 민중들은 전국 각지에서 독립선언서에 천명된 독립국가 건국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독립만세를 외치는 군중시위를 전개했다. 민중은 탄압하는 일본군대의 총칼에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독립 선언서의 문언적 내용보다도 훨씬 강렬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한민족 구성원들의 강렬한 독립국가 건국의지의 천명은 해외·내외 각지에서 분산적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독립운동 엘리트들로 하여금 독립국가 건국을 추진하는 단체를 구성하도록 고무했다. 그러한 건국 추진 단체가 바로 각지에서 구성된 임시정부들이다. 1919년 3월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령 연해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대한국민의회정부의 수립을 선포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임시정부가 발표한 정부의 주요 구성원은 대통령 손병희, 부통령 박영효, 국무총리 이승만, 군무총장 이동휘 등이었다. 4월 11일에는 상해에서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상해임시정부가 발표한 주요 구성원은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군무총장 이동휘 등이었다. 상해에 모인 인사들은 ‘독립국’을 세우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1919년 4월 10일 현순·손정도·신익희·조소앙·이동녕 등 29명이 대표가 되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은 임시의정원을 구성한 일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조소앙이 모임의 명칭을 임시의정원이라 하자고 하여 가결되었고, 이동녕과 손정도를 각각 의장과 부의장, 이광수와 백남칠을 서기로 선출하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하였다. 임시의정원은 현재 국회와 같은 것이다. 임시의정원을 설립한 후, 곧바로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였다. 의정원 회의는 의장으로 선출된 이동녕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회의는 국호, 관제, 국무원 선출, 헌법 제정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고,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은 국호였다. 국호는 신석우가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의하여 그대로 가결되었다(국사편찬위원회 2005b: 19-26). 이로써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 이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통합 문제는 내무총장 안창호가 부임하면서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안창호는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내무총장에 선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미국을 출발하여 상해에 도착, 내무총장으로 집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국무총리 이승만을 대신하여 국무총리 대리도 맡았다. 안창호는 통합을 추진하였다. 그는 통합 방안으로 ‘삼두체제’를 제기하였다. ‘삼두체제’는 집권자를 3명으로 하자는 것으로, 일종의 집단지도체제였다. 그 방안은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의 7총장은 그대로 두고, 7총장 위에 집권자 3명을 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권자 3명은 상해에서 성립한 임시의정원 의원과 더불어 연해주·중국지역·미주지역에서 정식으로 의정원 의원을 선출하고, 이들로 구성된 의정원에서 뽑자고 하였다(한시준 2010: 202).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19년 당시 실제적인 인적 기반과 조직을 갖추고 있었던 세 곳의 임시정부는 어디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문맥에서 실제적인 인적 기반과 조직을 갖춘 세 곳의 임시정부를 찾아 목록으로 작성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임시정부의 수립 현황과 구체적인 조직을 갖춘 곳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실제적인 인적기반과 조직을 갖춘 정부는 세 곳이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세 곳의 정부 명칭이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가 그것이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세 곳의 명칭을 정리하여 질문에 대한 답을 구성한다.

    •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의 한성정부 세 곳임을 확인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적합한 형태로 세 곳의 명칭을 나열한다.

근거 (evidence)
  • 실제적인 인적기반과 조직을 갖춘 정부는 세 곳이었다.
  •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가 그것이었다.
  •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
최종 답변 (final_answer)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정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