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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4 블랙리스트 사태의 총체적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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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발행연도
2019
KDC
33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10・26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고 이를 진압 수사한 것이 보안사령관 전두환이었기 때문에 유신체제의 붕괴는 중앙정보부에서 보안사로의 권력이동을 의미한다. 즉 1970년대 후반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김기춘은 권력이동기인 1981년 법무연수원 검찰연수부 부장으로 발령 받는다. 좌천성 인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사실상 6년간 한직에서 시간을 보낸다. 노태우와 각별한 사이이자 ‘6공화국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은 자신의 저서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서 김기춘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수차례 간절한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허화평의 도움으로 몇 차례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관직을 지켰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전두환 정권(11~12대, 1980~1988) 동안 간신히 연명했다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노태우 정권(1988~1993)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승진의 발판이 된 듯하다.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저자가 2011년 첫 방북 이후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행문으로 매회 수십만 명의 독자를 모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2012년 6월부터 10월까지 30회에 걸쳐 기고된 이 연재 기행문은 같은 해 동일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2013년 8월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하는 수필분야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통일부 유니TV에선 홍보동영상을 찍는 등 신은미는 ‘통일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재미교포로서 미국 국적의 신은미는 수필 형식의 기행문을 통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건 속에서 마주친 북한의 얼굴을 솔직하고 스스럼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2011년 10월과 2012년 4월과 5월에 걸쳐 북한의 여러 곳을 다녀오며, 북한의 주민들과 나눈 대화와 일상적인 환경, 스스로 느낀 감상적인 소회 등을 적었다. 신은미는 대구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국위선양의 일환으로 조직된 리틀엔젤스의 단원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둘째, 통일토크콘서트의 종북몰이는 당시 정권이 ‘종북몰이’를 극단으로 활용해야 겨우 정권을 지탱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처단이었다. ‘종북몰이’는 보수세력의 극우적 마녀사냥 논리로서 북한을 악마로 묘사해 혐오감을 주입시키고 평화나 통일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북한추종세력으로 몰아 보수 우익의 집권력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가 급격히 붕괴한 북한의 모습을 기회로 삼아 ‘종북몰이’가 시작되었으나, 최근 북한 경제가 급속히 회복되면서 ‘종북몰이’의 세력들은 새로운 위기를 느끼게 되었고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양상으로 종북몰이에 열중하게 되었다. 또한 통일토크콘서트의 ‘종북몰이’에서 절정이 된 익산 테러사건이 일어난 배경으로 오마이뉴스는 ‘정윤회 문건’ 파문을 들고 있다. 당시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면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급감하고 권력층 내부가 분열되는 혼란이 닥친 상황에서 ‘정윤회 문건’ 파문을 덮을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익산테러사건이 부각된 것이다. 홍성담과 <세월오월> 사건은 ‘속인주의적’ 검열의 전형을 보여준다. 속인주의적 검열은 작품 개별적인 사례에 대한 검열보다는 작가 개인에 대한 통제를 말하는 것으로, 정근식, 최경희에 따르면, “해방 전의 검열이 주로 텍스트에 대한 검열이었다면 해방 후 검열은 작가에 대한 통제, 즉 속인주의적 경향을 띤다.” 즉, 텍스트가 아니라 ‘특정인(단체)’ 자체가 억압과 통제의 대상이 된 것은 해방 이후 분단의 고착화 과정 즉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생산된 것으로서의 텍스트가 아닌, 가능성으로서의 인신 자체를 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속인주의적 검열의 재귀와 함께, 블랙리스트 사태는 해방 후 한국사회가 검열대상 작가의 이념적 정체성과 단체적 귀속성에 따라 사상규제를 정당화하던 시기로 문화예술 전반의 시계침을 되돌려놓았다. 홍성담은 조선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5월 학쟁을 경험한 후 계속 민중미 술을 작업해온 작가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 달콤한 이슬, 1980 이후>는 광주비엔날레 창립 20주년을 맞아 예술비엔날레 전시와 함께 개최된 대규모 특별 프로젝트로서, “단순한 전시를 넘어 ‘광주정신’을 탐색해 나가기 위해 전시, 강좌, 퍼포먼스의 3개 방식으로 다각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8월 8일부터 11월 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이 전시는 광주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의 작품을 연결하는 동시에 저항미술작가 케테 콜비치의 작품과 루쉰의 판화들도 선보였다. 광주비엔날레 자체는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탄생한 행사로, 20주년을 맞아 민주와 인권, 평화를 의미하는 1980년 5월 광주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망자에 대한 치유의 의미를 담은 감로도’에서 빌려온 전시명인 ‘달콤한 이슬’이라는 제명 아래 전시를 기획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광주비엔날레의 취지가 희석화되고 있던 당시의 맥락에서 작가 홍성담이 보기에 애초에 그 기획의도가 그다지 순수한 것만은 아니었다. 홍성담이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그 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세로 2.5m, 가로 10.5m 폭의 걸개그림을 통해서 1980년 5월 항쟁, 그 이후의 진상규명 투쟁과 1987년 민주화운동, 그리고 세월호 사건 및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현재 첨예하게 진행되는 역사적, 정치적 주요사건들을 형상화했다. 제작 양식은 한국 민중미술에서 이룩한 걸개그림 양식인 ‘강한 먹선과 오방색’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조선 민화, 그리고 1980년대 목판화 운동에서 획득한 민족적 형식을 기본 토대로 하며, 한국적 팝아트와 전통 수묵화 형식을 포함하고, 광주 화단이 이룩한 현대 미술의 여러 중요한 형식들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 작업은 공동 작업의 성격을 띄는데, 시민을 대상으로 토론회를 열어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주제로 논의하여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으며, 주필(主筆, 홍성담) 외에 보필(補筆, 협업작가)을 선정하여 함께 작업하고 일반시민도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공공미술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2014년 8월 8일 개최될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 달콤한 이슬’을 위해 광주비엔날레 재단과 출품 계약을 체결하고 기획된 작품이다. 2014년 7월 7일, 주필 홍성담을 중심으로 광주시각매체연구회 소속 협업작가들이 함께 제작 착수한 이 작품은 7월 17일과 8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수정이 요구되었으며, 작가가 이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자 그 의사와 상관없이 8월 8일 개막식에서 ‘전시 유보’를 이유로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다. 또한 이는 전시 취소의 외압을 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2017-2018년도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국고지원이 이전 31억에서 18억원으로 결정되며 13억 정도의 예산이 삭감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진상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정사항 요구 및 전시 취소 외압에 가담한 이들의 범위가 20주년 프로젝트 기획팀, (재)광주비엔날레, 광주광역시를 넘어 문체부와 행안부,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의 김기춘-우병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임이 증명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홍성담 작가가 참여한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제작 과정에서 수정 요구를 했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이 제작될 당시 발생했던 수정 요구의 구체적인 내용(무엇을 수정하라고 했는지)을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세월오월>의 제작 시기, 수정 요구가 있었던 날짜, 작가의 거부 및 전시 유보 사실, 그리고 이 사건이 예산 삭감 및 외압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정보는 추출할 수 있다.

    • 2014년 7월 7일, 주필 홍성담을 중심으로 광주시각매체연구회 소속 협업작가들이 함께 제작 착수한 이 작품은 7월 17일과 8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수정이 요구되었으며
    • 작가가 이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자 그 의사와 상관없이 8월 8일 개막식에서 ‘전시 유보’를 이유로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작품이 7월 17일과 8월 3일에 두 차례 수정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은 명시되어 있으나, 정작 어떤 부분(색채, 구도, 내용 등)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7월 17일과 8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수정이 요구되었으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을 종합하면 수정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결과(전시 유보, 외압 논란)는 알 수 있지만, 수정 요구의 대상이 된 구체적인 사항은 문맥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수정 내용'은 문맥에 명시되지 않은 정보이므로 답을 확정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2014년 7월 7일, 주필 홍성담을 중심으로 광주시각매체연구회 소속 협업작가들이 함께 제작 착수한 이 작품은 7월 17일과 8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수정이 요구되었으며
  • 작가가 이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자 그 의사와 상관없이 8월 8일 개막식에서 ‘전시 유보’를 이유로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다.
  • 7월 17일과 8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수정이 요구되었으며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세월오월> 작품에 대해 두 차례 수정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결과로 전시가 유보되었다는 점은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수정 사항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어 문맥만으로는 답변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