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인간은 정치적 동물” 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1권 2장(1252b27)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말의 원뜻은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Zoion Politikon)”이고, 여기서 폴리스는 그리스인들이 가족, 부족의 사회 단위를 넘어서서 만든 국가공동체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는 국가공동체(폴리스)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을 인간다움의 기준으로 보는 그리스인들의 독특한 사유가 들어 있다. 폴리스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이거나 인간 이상이며, 이런 자를 호메로스는 친족도 없고 법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라고 비난했다. 이 말의 연장선에서 그리스인들은 폴리스를 가진 자신들을 헬렌의 후손이라는 뜻의 ‘헬레네스’로, 그리고 폴리스가 없는 이방인을 ‘바르바로이’로 구분하고, 자신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 문명인이라는 우월감을 가졌다. 자유, 자치,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 폴리스의 번영과 발전을 통해, 오늘날 제주도 크기의 1.4배 영토를 가진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치라는 훌륭한 유산을 인류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 시대에 양친이 모두 시민인 자들에게만 시민권을 인정하고, 국가를 폐쇄적으로 운영했다.
일찍이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사회비평가로 활동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교수는 이슬람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심상 지리를 분석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의 정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해부했다. 그는 영미문학 작품 속에서 이슬람 혹은 이슬람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나타나고 지속적으로 재생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곧바로 유럽에 대한 긍정으로 전화(轉化)되고, 유럽은 자신을 이슬람과 다른 존재로 정의하면서 정체성을 확보한다. 이슬람은 유럽인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타자에 불과하다. 즉, 이러한 표상은 이슬람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슬람을 비롯한 동양에 대한 유럽의 차별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강상중 일본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양을 학습한 일본의 아시아 인식 또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답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은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동양을 저속하고 미개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문명세계를 건설한 유럽이 동양을 굴레에서 해방시켜 계몽의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양을 침략하는 논리를 구성한 것이다.
로마는 초기부터 귀족과 평민의 구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초대 왕 로물루스는 귀족과 평민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귀족이 자기 지역의 평민들의 보호자가 되어 필요한 경우 도움을 주도록 했다. 즉 자기 수하의 평민이 법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평민의 보호자인 귀족이 나서서 법정에서 변호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도록 돕게한 것이다. 피보호자인 평민 또한 자신의 보호자가 정무관직 선거에 나가면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도움을 주도록 했다. 공화정이 수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는 라티움 지역의 국가들과 전쟁에 시달렸다. 장기화된 전쟁에 평민 병사들의 불만이 쌓여갔고, 경제적 어려움마저 심화되었다. 게다가 귀족 보호자의 역할도 미미하자 평민들이 공공연하게 귀족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평민 병사들은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5km 떨어진 성산으로 철수하여 로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로마시에 남아 있던 평민들도, 그리고 원로원 귀족들도 평민 병사들의 항명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외적이 쳐들어오면 막아낼 방법이 없었기에 로마시 전역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외적은 차치하고 내분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브루투스는 폭군을 몰아내고 자유를 얻는 일뿐만 아니라 이후 그 자유를 지키는 데에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왕정 타도 직후 로마에 남아있던 타르퀴니우스 왕가의 친인척들을 추방하는 조치가 우선 시행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동료 콘술 콜라티누스도 문제가 되었다. 그 역시 타르퀴니우스 씨족 출신(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 잔존세력을 추방하자는 여론이 고조될수록 콜라티누스가 공화정의 콘술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브루투스는 동료에게 국가를 위해서 물러나줄 것을 요청했고, 그러면 명예로운 퇴장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콘술직을 고수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더 큰 화를 입을 것을 예견한 콜라티누스는 결국 브루투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콘술직을 사퇴하고 인근 도시 라비니움으로 자진 망명을 택했고, 루크레티아가 자살할 때 동석했던 발레리우스가 콘술이 되었다.
라티움 지방 산동네들의 연합으로 시작된 로마는 700여 년을 지나며 이탈리아 반도를 통합하였고, 지중해에 면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다스리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로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성장의 토대를 삼는 브루투스 같은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폭정을 거듭하는 타르퀴니우스 왕가의 지배를 무너뜨렸을뿐만 아니라 공화정이라고 하는 새 질서를 수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왕정 복고 음모를 꾸민 청년 귀족들을 적발하여 처형할 때, 자신의 두 아들도 예외를 두지 않고 공평하게 처벌하면서 후대 로마 정치가들에게 사익 대신에 공익을 앞세우는 선공후사의 모범이 되었다. 둘째는 평민들의 불만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한 원로원 귀족들의 화합의 리더십이다. 기원전 494년 성산철수 사건에서 원로원은 협상에 능한 아그리파를 파견하여 평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대표자인 호민관직을 창설하여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들도 집단행동보다는 평민의 대표자 호민관들을 통해서 해결하게 해주었다. 원로원 귀족들은 내부 통합이 국가의 성장에 가장 기본임을 정확히 이해했고, 다수의 평민의 요구를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국가 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원로원 귀족들의 리더십이 발휘되었다. 원로원은 연설에 능하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메네니우스 아그리파를 성산으로 파견하여 평민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그는 국가를 인체에 비유하면서 모든 지체가 소중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할 때 몸이 온전하며 그 중 하나라도 다른 지체를 무시할 때, 또는 어떤 지체가 자기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온 몸이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논리를 펼치며 평민을 설득했다. 결국 협상이 진행되었고, 원로원은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 제도를 신설해서 앞으로 호민관이 평민의 보호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호민관에게는 평민의 이익이 침해당할 경우 콘술에 대항해서 평민을 보호하는 역할이 주어졌고, 이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호민관의 몸은 신성불가침하다고 선언되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호민관에게 위해를 가하면 그가 누구든 신성모독 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를 죽여서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쳐도 전혀 처벌을 받지 않도록 했다. 호민관은 평민 출신 중에서만 1년 임기로 선출되었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가 된 Vladimir Lenin은 네 차례 6년 반 동안 망명객으로 스위스에 체류하는 동안 각 가정마다 총을 소지한 스위스를 공산주의 혁명의 최적지로 간주하고 취리히 사민당에 가입한 후 비밀리에 7명의 노동자를 포섭했다. 그러나 결국 혁명의 꿈을 접고 1917년 러시아로 떠나면서 동지로 여겼던 베른의 사민당대표 Robert Grim을 “뻔뻔한 악당”으로 비난하면서 “스위스 사회는 혁명하기에 너무 부르주아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레닌이 보기에 너무 부르주아적이었던 스위스사회는 뉴잉글랜드 타운미팅보다 훨씬 더 강한 풀뿌리민주주의 반석 위에 세워져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세워진, 나라의 무게중심이 아래 있는” 스위스의 코뮌자치는 전체주의 폭정의 등장을 예방한 백신이었던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로마의 원로원 귀족들이 성산철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이며, 그 제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성산철수 사건 해결을 위해 로마 원로원이 도입한 제도와 해당 제도의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성산철수 사건과 관련된 원로원의 대응 및 제도 도입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성산철수 사건에서 원로원은 협상에 능한 아그리파를 파견하여 평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 그들의 대표자인 호민관직을 창설하여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도입된 제도의 명칭과 그 제도가 가진 권한 및 특징에 관한 문구를 선택한다.
- 호민관 제도를 신설해서
- 호민관에게는 평민의 이익이 침해당할 경우 콘술에 대항해서 평민을 보호하는 역할이 주어졌고
- 호민관의 몸은 신성불가침하다고 선언되었다
- 호민관은 평민 출신 중에서만 1년 임기로 선출되었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종합하여 제도의 명칭(호민관직), 역할(평민 보호 및 콘술에 대항), 특징(신성불가침성, 평민 출신, 1년 임기)을 연결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원로원은 호민관 제도를 신설하였으며, 이들은 평민의 이익을 위해 콘술에 대항할 수 있고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진 평민 출신의 1년 임기직임을 정리한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성산철수 사건에서 원로원은 협상에 능한 아그리파를 파견하여 평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 그들의 대표자인 호민관직을 창설하여
- 호민관 제도를 신설해서
- 호민관에게는 평민의 이익이 침해당할 경우 콘술에 대항해서 평민을 보호하는 역할이 주어졌고
- 호민관의 몸은 신성불가침하다고 선언되었다
- 호민관은 평민 출신 중에서만 1년 임기로 선출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원로원은 평민의 대표자인 호민관 제도를 신설하였다. 이 제도는 평민의 이익이 침해될 경우 콘술에 대항하여 평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호민관의 몸은 신성불가침으로 선언되어 보호받는다. 또한 호민관은 평민 출신 중에서만 1년 임기로 선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