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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문화재위원회 제11차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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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88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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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8870725_37
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9
KDC
6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체화정은 1761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건립연대가 비교적 정확하고 초창 때의 모습이 거의 변형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체화정의 평면구성은 경남 서부지역 정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누구나 접근이 쉽도록 나지막하고 좌우 대청에 분합문을 달아 남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체화정은 다른 정자와 비교할 수 없는 희소성이 있으며 지역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또한, 체화정는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인문가치도 또한 있다고 판단된다. 체화정의 창호는 다른 누정건물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온돌방 전면의 창호는 4칸 폭인데 가운데 두 칸은 문틀 하나로 되어있고, 중앙에 세살눈꼽째기창을 달았다. 좌우 양측 문은 중앙에 육각의 불발기문이 달려 있으며, 좌우로 열어 가운데 2칸 분합과 포개져 들어걸개로 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자에 눈꼽째기창을 둔 것도 드문 것이지만 양쪽에 들어걸개로 구성한 분합문의 유형도 극히 드문 유형이다. 체화정은 1761년(영조 37)경 풍산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곳에 만포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당호인 체화정은 하지(下枝) 이상진(李象辰)이 지었으며 형제간의 화해와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체화정은 맏형 옥봉 이민정과 함께 기거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한 곳으로 유명하다. 조카인 용눌재(慵訥齋) 이한오(李漢伍)가 노부모를 효성을 다해 극진히 모신 곳으로 1812년(순조 12) 정려를 받았다. 연혁에 대한 내용은 『체화정기(棣華亭記)』와 『체화정중건기(棣華亭重建記)』를 통해 확인된다. 이민적이 체화정을 건립하면서 이상진(1710∼1772)에게 기문을 부탁하여 제작하였으며, 중건기를 통해 1971년 한차례 중건이 이루어졌으며, 2000년 가을에 보수가 행해졌다. 입지조건면에서 가장 빼어난 정자 중 하나인 체화정의 위치는 안동읍에서 풍산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남서쪽에 풍산천이 낙동강과 합류하기 전 풍산벌판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체화정은 연지, 정자, 관리사로 이루어진 정원으로 낙동강의 지류인 풍산천을 향해 남동향하고 있으며 정자의 배면으로는 산과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있다. 전면으로는 방형의 연기 조성되어 있으며 연지 내에 3개의 섬이 조성된 상태로 자연경관과 인공경관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정자 전면에 도로가 개설되어 체화정에서 풍산천이 직접 조망되지 않으나 건립 당시 조망이 빼어났음을 연상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과거의 항공사진을 통해 연지와 연지 내 3개의 섬이 원래부터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체화정 앞에 흐르는 풍산천은 경북 안동시 서후면 풍산읍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서 후면 북쪽 끝 천등산 서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남서방향으로 흘러 풍산읍 소재지 동쪽을 거쳐 하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풍산천이란 이름은 풍산읍의 명칭을 딴 것으로 고려시대 때 치소를 두었던 현 이름이다. 예술적 가치는 탁월함 그 자체이다. 특히 건축물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 절경과 어우러진 정자로서 배면에 병풍처럼 서 있는 기암괴석과 숲을 배경으로 전면에 큰 연지, 그리고 봉래 방장 영주를 지칭하는 3개의 인공섬을 만들었다. 체화정에서 계자난간 너머로 보였던 풍산천과 풍산들판이 제방과 신작로에 의해 직접 가시되지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자연경관과 인공경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정자이다.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체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중기 정자로 건축물 자체로서 탁월한 예술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 및 인공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뤄, 정자 건축이 표출할 수 있는 예술적 가치를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각 부재들의 치목기법은 구조적 안정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시각적으로 날렵한 조형감을 갖추어 전체적으로 정교한 조형을 보인다. 1761년경에 건립된 체화정의 가치는 상기의 가치 이외에도 건축물 자체로서 학술적 가치가 탁월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구성으로 정면 후면 1칸만 온돌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 보기 힘든 평면 형식이다. 거창이나 함양지방의 정자에서 이와 유사한 평면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체화정의 가치는 전체적인 입면구성과 각 실 창호의 구성에서 희소성과 특수성을 찾을 수 있다. 각실 창호의 구성은 들어열개식 분합문을 기본으로 차별적인 구성을 보인다. 정면의 온돌방 창호는 4분합의 중앙에 하나로 합쳐진 창을 두고 좌우 2칸 중앙에 불발기창을 두어 좌우로 열어 포갠 뒤 들어올리는 형식으로 특이한 분합문의 구성을 보인다. 양쪽 협칸의 분합문 문지방 중앙에 소지구를 뚫었고 문 상부에 가는 세로살을 구성한 것은 세부적인 면까지 신경쓴 조형성이 탁월한 정자이다. 이러한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구성한 것은 체화정이 갖는 특별한 조형성으로 마루 청판 하나의 구성과 치목에서부터 계자난간, 창호, 그리고 목구조의 각각 구성 부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소월하게 치목하고 구성한 것이 없다. 더구나 체화정은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포대에서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누정건축과 달리 내부공간의 특성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여 마루의 높이를 달리한 것이다. 호수 및 바다의 경관을 고려해 동쪽 중앙 3칸의 마루는 한단 높게 가설하고, 좌우 퇴칸 즉 남·북쪽 각 1칸은 한단 더 높은 누마루로 구성하였다. 가장 낮은 마루에서는 동쪽 호수와 바다를 제외한 주변의 자연경관을 바라보도록 하였고, 한단 높게 가설된 마루에서는 절벽 아래 펼쳐진 호수의 경관을 즐기도록 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높게 구성된 남·북쪽의 누마루는 멀리 펼쳐진 동해바다의 경관까지도 즐기도록 한 건축적 배려로 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각 누마루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들의 심성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장소로 이용하기를 바라는 건립자의 철학적 의도를 담고 있는 곳이고 여겨진다. 경주 귀래정은 1755년 지헌공파의 가숙(家塾)의 성격을 갖는 정자로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귀래정은 전면에 있는 사랑채의 당호(堂號)로, 사랑채로서는 이례적으로 정육각형의 평면을 채택하여 정자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육각형 평면의 정자에는 내부에 온돌방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이 건물에는 평면의 교묘한 분할로 육각의 평면 내에 방형의 온돌방이 설치되어 사랑채의 기능을 하였다. 평면은 육각형이 전후로 크게 나뉘어 두 개의 사다리꼴로 구획, 전면에는 마루가 위치하고 후면에는 사다리꼴에 내접하는 사각형에 온돌방 2곳이 설치되고, 나머지 삼각형 부분은 출입 공간과 반침으로 꾸며졌다. 경주 귀래정은 다양한 기록, 근대 사진 자료 등을 통해 1755년에 건축된 정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부분적으로 미세한 변화가 있었으나 『천서가숙상량문(1755)』,『경주읍지(1933)』,『동경통지(1933)』,『귀래정기(1937, 1938)』,『지헌선생일고편제급귀래정연혁(2001)』등 관련 기록이 다양하게 남아 있어 건축 연혁을 살피는데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체화정을 건립한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정자라고 하는데, 그가 학문을 닦았던 구체적인 학문 분야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이민적이 체화정을 세운 목적 중 하나인 '학문을 닦기 위함'과 관련하여, 그가 공부했던 구체적인 학문의 종류를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이민정과 체화정의 건립 배경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체화정은 1761년(영조 37)경 풍산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곳에 만포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정자를 세웠다는 사실은 명시되어 있으나, 그 학문의 구체적인 명칭이나 분야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만포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 전체를 검토하여 이민적의 학문적 성격이나 공부했던 내용(예: 유학, 성리학 등)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나 문맥은 정자의 구조, 역사, 예술적 가치, 입지 조건에 집중되어 있을 뿐 이민적의 개인적인 학문 분야는 다루지 않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이민적이 학문을 닦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어떤 학문을 닦았는지에 대한 핵심 정보는 문맥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질문에 대한 답을 확정할 수 없으므로 규정된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체화정은 1761년(영조 37)경 풍산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곳에 만포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 만포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이민적이 학문을 닦기 위해 체화정을 세웠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으나, 그가 공부한 구체적인 학문의 종류는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