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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증명하는 흔적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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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8112005473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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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811200547360111_1
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8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우리는 살아 움직이고 이동하고 만지고 만들고 잡기도 한다. 다른 대상, 그리고 세상과 교감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에너지를 나누고 순환하게 하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동일지 모른다. 그렇게 서로‘닿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흔적을 우리는 자국이라 부른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 우리는 어딘가에 자국을 남긴다. 그러기에 문화재에 남아있는 자국에는 우리조상이 살아온 삶과 그 숨결이 담겨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담긴 분청사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 흙을 빚고 매만지고 다듬었던 도공의 투박한 손자국이 남아있고, 합죽선이나 참빗, 붓대에는 뜨겁게 달군 인두로 세밀하게 무늬를 찍어낸 낙죽장의 예술혼이 새겨있다. 자국은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해주기도 한다. 암각화 옆에 남아있던 공룡 발자국은 1억 년 전 한반도의 선사시대 모습을 증언해준다. 제주 용천동굴에는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드나들며 남긴 횃불자국이 선연하고 분단 이후 영영 멈춰선 경의선 장단역의 증기기관차에는 뚜렷한 총탄자국이 남아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통일염원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문화재에 남아있는 자국은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흔적이 아니다. 화석은 지질시대(46억 년 전~1만 년 전)에 살았던 생명체가 남긴 흔적 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며 ‘공룡’은 중생대(약 2억 5천 1백 만 년 전~약 6천 6백 만 년 전)의 육지에 살았고 알을 낳았던 파충류의 한 무리인데, 공룡이 남긴 발자국을 ‘공룡발자국 화석’이라 부른다. 오랜 지질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생명체들이 화석이 되어 암석에 그 흔적을 남겼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의 환경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예컨대, 강원도 일대의 약 5억년 전 형성된 암석에서는 바다 속에 살았던 삼엽충이 화석이 되어 그 흔적을 남겼고, 약 3억 년 된 암석에는 육지에 살았던 식물들이 그 흔적들을 남겼다. 이를 통해 한반도가 약 5억 년 전에는 바다 속에 잠겨 있다가, 그 후 서서히 이동하여 약 3억 년 전에 육지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 앞마당 넓게 펼쳐진 암반 위에도 수많은 자국들이 남겨져 있다. 암반에 남겨져 있는 자국들은 모양도, 크기도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 이들은 1억 년 전에 살았던 공룡이 남긴 ‘공룡발자국화석’이다. 지금까지 두 번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육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18점과 초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93점 등 총 111점의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었다. 초식공룡발자국에 비해 육식공룡발자국이 훨씬 적은 것은 초식공룡들은 무리지어 생활하고 육식공룡은 대체로 단독 생활하는 습성에 기인된 결과이다. 특히, 2018년 상반기에 이루어진 2차 발굴에서 확인된 16점의 육식공룡발자국은 4마리의 소형육식공룡이 남긴 것으로 발자국의 크기는 길이 9~11cm, 폭 10~12cm 정도로 공룡발자국으로는 작은 편에 속한다. 이 발자국 화석은 울산에서 보고된 육식공룡발자국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으며, 보행렬이 인지되는 첫 사례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많은 발자국 화석들(공룡, 익룡, 거북, 악어, 도마뱀 및 포유동물의 발자국 화석)과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의 형태적 특징과 해부학적 특징을 비교해본 결과 국내에서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처음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척추동물발자국화석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현재까지 조사·연구된 정보들은 하나의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고 있다. 그것은 중생대에 살았던 거대도롱뇽(Cryptobranchidae)이다. 도롱뇽은 중기 쥐라기(약 1억 7천 4백만 년 전~1억 6천 3백만 년 전)에 중국에서 기원하여 현재 10개의 과(Family)가 있는데 화석 기록은 대부분 신생대(약 6천만 년 전~현재)에서 그 흔적이 보고 될 뿐 중생대의 화석기록은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따라서 이 발자국이 도롱뇽이 남긴 발자국이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도롱뇽 진화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가진다. 현재 도롱뇽이 가장 유력해 보이지만 보다 정확한 동물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중에 있으며 그 결과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보물 제96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일련의 커다란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높이 10.6m의 석조여래입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 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석불의 표정이나 신체 등의 조각솜씨는 절터의 규모 및 석굴에서 풍기는 웅장함과는 달리 아주 소박한 편이다. 이 불상의 대담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보아새로 일어난 국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추정할 수 있다. 2005년 10월 용산에 신축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문화 이외에도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권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자 아시아관을 신설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을 접한 가네코 선생은 국내의 문화계 지인을 통해 아시아 각 지역에서 수집한 문화재를 선뜻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1925년 12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가네코 선생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에 급우들과 함께 연구모임을 조직하여 근교의 유적에서 토기 등을 수집하는 등 이미 ‘고고학 소년’의 자질을 보였으며, 수집한 유물 수백 점으로 교내에서 ‘향토 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때에는 도쿄대학의 교수에게 토기에 관한 전문지식을 사사하는 등 이미 고고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국학원대학(國學院大學)에 진학하여 일본사와 고고학, 민속학을 수학하였다. 전후의 혼란기를 거쳐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는 아시아 탐방의 길에 나섰다. 평소에 김해 김씨 후손임을 자처하며 한국 각지에서 일본 문화의 뿌리 찾기 작업에 몰두한 가네코 선생은, 이후 30년 동안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및 서아시아 각국을 약 400차례에 걸쳐 방문하며 다양한 학술조사를 전개하였다. 김유정로를 따라 국립춘천박물관을 찾아가는 길. 늘어선 가로수의 잎들에서부터 만추의 정취가 가득하다. 20여분 달렸을까. 깔끔하고 정돈된 건물이 눈앞에 스윽 나선다. 알고 보니 작년 10월경 새롭게 단장한 후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은 선사전시실, 고대전시실, 중세전시실, 근세전시실 등 네 개의 전시 코너로 구분되어 있어 시대에 따른 강원도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사시대관에서는 강릉 병산동에서 발굴되었다는 철기시대의 토우가 눈길을 끈다. 고대전시실에는 삼국, 통일신라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양양군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들, 부처, 보살들의 생김새가 낯익고 정겹다. 탄성이 흘러나온 것은 중세관에 들어갔을 때다. 가히 앞서 만났던 선사시대, 고대시대의 유물들과 그 섬세함에서 차이가 난다. 후삼국 때 궁예와 왕건이 활동하던 이 시기의 강원은 역사의 중심무대였다. 강원도 궁예의 기반을 계승한 왕건이 세운 나라인 만큼 고려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이 누렸던 세련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끝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 찾던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 강원의 아름다운 자연을 테마로 한 근세전시실에서는 강원의 산천, 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반구대 암각화 앞마당 암반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화석 중 육식공룡의 발자국 수가 초식공룡보다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반구대 암각화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화석의 수량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반구대 암각화 암반에서 확인된 육식공룡 발자국 수와 초식공룡 발자국 수를 추출한다.

    • 육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18점과 초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93점 등 총 111점의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종류의 공룡 발자국 수 차이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초식공룡발자국에 비해 육식공룡발자국이 훨씬 적은 것은 초식공룡들은 무리지어 생활하고 육식공룡은 대체로 단독 생활하는 습성에 기인된 결과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초식공룡은 무리 생활을 하고 육식공룡은 단독 생활을 한다는 습성 차이가 발자국 수의 차이를 만든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초식공룡들은 무리지어 생활하고 육식공룡은 대체로 단독 생활하는 습성에 기인된 결과이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공룡의 생활 습성 차이로 인해 육식공룡의 발자국 수가 초식공룡보다 적게 나타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여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육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18점과 초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93점 등 총 111점의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었다.
  • 초식공룡발자국에 비해 육식공룡발자국이 훨씬 적은 것은 초식공룡들은 무리지어 생활하고 육식공룡은 대체로 단독 생활하는 습성에 기인된 결과이다.
  • 초식공룡들은 무리지어 생활하고 육식공룡은 대체로 단독 생활하는 습성에 기인된 결과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초식공룡은 무리 지어 생활하는 반면, 육식공룡은 대체로 단독 생활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