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북한은 3차례의 핵실험(2006.10, 2009.5, 2013.2)으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다. 또한 북한의 천안함 폭침(2010.3), 연평도 포격(2010.11),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2.12),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2015.5), DMZ 목함지뢰 폭발(2015.8) 등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북한은 전통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강화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을 견제하고 경제원조를 비롯한 다방면적인 지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 문제를 비롯한 북한 문제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미국도 중국 및 러시아와 사안별로 갈등하고 대립하면서도 상호이익을 도모하는 ‘선택적 협력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28차례의 참사관급 접촉을 진행한 결과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를 도출했다. 또한 1999년 3월 금창리 지하핵 의혹 시설에 대한 성격 규명을 위한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식량 60만 톤을 지원받았다. 한편 북한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1991~1992년 북일 협상을 8차례 개최하는 등 관계개선을 시도하였다. 1995년 3월 북한 노동당이 일본 연립 여당과 국교정상화 회담 재개에 합의하였고, 1995~1996년 50만 톤의 식량지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일·북 간 ‘일본인 처 고향방문사업’이 두 차례 이루어진 데 이어 1998년 3월 일본 자민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일본과 간접 교역 형식의 경제교류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부터 쌍방 간에 국교정상화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였으나 1970년대 초까지 활발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 동서 간 데탕트와 미·중 우호 협력관계 발전, 남북대화 추진 등을 배경으로 북한과 일본 간의 관계개선도 다소 활발하게 추진되었으나 북일 수교 문제는 199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일본과 북한 간 수교회담은 1991년 1월 제1차 회담을 시작으로 2000년 11월까지 11차례 개최되었다. 수교회담에서 양측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 등 과거사 문제, 북한의 핵사찰, 일본인 피랍자 등 현안에서 현저한 입장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 진행된 접촉과 대화에도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던 일·북 관계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2년 9월 17일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주요 현안들을 포괄 해결하기로 하는 한편 ‘일·북 평양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전기를 마련하였다.
북한은 같은 해 10월 15일 납치 생존자 5명에게 일시 고향 방문을 허용하면서 이들의 일본 방문이 실현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0월 24일 일본인 피랍 희생자들을 북한에 귀환시키지 않고 일본에 영주 귀국시키겠다고 발표하는 한편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일본으로 귀환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양국은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2년 만에 제12차 수교회담을 개최(2002. 10.29~30, 쿠알라룸푸르)하였으나 일본의 핵 개발 포기 요구 및 납치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차기 회담 일정도 합의하지 못한 채 성과 없이 종료하였다. 2004년 5월 22일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는 1년 8개월 만에 제2차 정상회담을 갖고 2002년 10월 이후 중단된 수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였다.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피랍 생존자 가족 8명 가운데 5명은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고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는 가족과 나중에 제3국에서 만나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또한 일본이 납득할 수 없는 행방불명자들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재조사를 한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그 대신 일본은 북한에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을 실시하며, 북한이 ‘일·북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대북제재 법안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회담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북 관계개선은 쉽게 진전되지 않았다.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사망한 후 2004년 12월 일본으로 송환된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 진위 여부 논란이 증폭되면서 일본 국민의 대북 감정이 악화되었고, 북한은 납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하였다. 일본과 북한은 2006년에 재개된 제13차 수교회담(2.4~8, 베이징)에서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였다. 회담 결렬 이후에는 일·북 간에 대화 채널이 단절되고 상호 비난을 강화하는 등 대립 국면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와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일본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한편 일·북 간 전세기 일본 착륙 금지, 북한 당국자 및 승무원 입국 금지, 모든 북한 상품 수입 금지 등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하였다.
한편 2007년 6자회담에서 ‘2·13 합의’가 도출되면서 일본과 북한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2·13 합의 제2조 4항에서 일·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 대화를 추진하기로 규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2008년 6월 11~12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일·북 국교정상화 실무회의에서 북한은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재조사 실시를 약속하는 한편 항공기 ‘요도호’의 납치범 및 가족을 일본 정부에 인도하는 것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일본은 대북제재 조치 가운데 인도주의 차원의 물자 수송 선박에 한해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 일·북 간 민간인 왕래 금지 조치 해제 등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008년 9월에 출범한 아소 다로 정권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결을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일·북 관계가 다시 냉각되었다. 북한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5월 제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일본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제1874호(2009.6.12)에 동참하면서 대북 수출 전면금지 등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압박전략을 구사하였다.
북한은 2009년 9월 일본의 민주당 정부가 출범할 때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선 북핵·납북자 문제 해결, 후 관계 정상화’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북한은 일본이 납북 문제 미해결을 이유로 대북 에너지 지원에 불참함으로써 6자회담 합의사항을 위반하였다며 일본에 6자회담 참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였다. 2010년 6월 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일·북 간 대립은 지속되고, 북한에 의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됨으로써 일본의 대북 정책 기조는 더욱 강경해졌다. 또한 2011년 8월 노다 정부 출범 이후 일본은 미·일 동맹을 강조하며 남북 대화, 미·북 회담, 6자회담 등과 관련해 한·미·일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체제를 유지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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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2004년 5월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정상회담 결과, 일본이 북한에 약속한 조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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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2004년 5월에 개최된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북한에 약속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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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2004년 5월 22일 제2차 정상회담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2004년 5월 22일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는 1년 8개월 만에 제2차 정상회담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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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정상회담의 결과 중 일본의 약속과 관련된 문구를 선택한다.
- 일본은 북한에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을 실시하며, 북한이 ‘일·북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대북제재 법안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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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일본의 약속은 두 가지 측면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인도주의적 지원이며, 둘째는 북한의 평양선언 준수를 전제로 한 대북제재 법안 미발동이다.
- 일본은 북한에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을 실시하며, 북한이 ‘일·북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대북제재 법안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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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일본은 북한에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을 실시하고, 북한이 '일·북 평양선언'을 준수할 경우 대북제재 법안을 발동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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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2004년 5월 22일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는 1년 8개월 만에 제2차 정상회담을 갖고
- 일본은 북한에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을 실시하며, 북한이 ‘일·북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대북제재 법안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일본은 북한에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을 실시하고, 북한이 ‘일·북 평양선언’을 준수하는 한 대북제재 법안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