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넷째, 그동안 예술표현은 물론 표현 일반의 자유를 제약했던 법조항을 폐지・개정하거나 필요한 경우 관련 법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형사 처벌 규정을 삭제하고, 표현의 자유는 물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며, 경찰에게 표현의 자유를 저당 잡히게 하는 집시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또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처하는 입법 개선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이미 시민사회에서는 그 내용에 대한 합의가 성숙한 차별금지법을 속히 제정하여 차별 문화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확인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발언을 확성(擴聲)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생산・분배 등 모든 삶의 영역에서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자유로운 표현과 정치활동 그리고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한 토대를 다져가야 한다.
민주시민이라면 사찰과 검열 체제에서 마땅히 해야 할 구실을 하지 않았기에 구조적 부정의(不正義)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하여 한국 사회의 사찰과 검열 체제를 바꾸기 위한 정치적 집단행동을 조직해야 한다(Young, 2013). 국가폭력은 사사로운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단순히 물질적 배상으로 만족하는 옅은 관점이 아니라, 국가폭력을 야기한 구조와 사고방식을 혁신하는 두터운 관점을 필요로 한다(이재승, 2014b: 229). 민주시민의 책무는 블랙리스트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엄중히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주춧돌이 바로 놓여야 민주 사회의 시민들은 비로소 개인적으로는 도덕적 죄책을 감당하고, 정치적으로는 사상과 표현의 통제에 대한 죄책을 인정하면서 통제에 맞서 민주적인 ‘정치적 권력’을 구성하며, 인류의 일원으로서 형이상학적 죄책을 부담하 며 역사에 복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대공황 이후에도 저변을 넓혔으며 1939년에는 미국공산당(CPUSA)의 당원수가 5만 명에 이르렀다. 이미 1938년에 의회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를 발족시켜 공산주의와 연관성을 가진 개인, 공무원 또는 단체의 전복적 행위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의회는 1940년에 제2차세계대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정부 전복행위와 각종 선동행위를 2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5년간 정부공무원의 취업을 금지시키는 외국인등록법(Alien Registration Act, 일명 ‘스미스법’ 18 U.S.C. § 2385)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공산당원, 나아가 독일계나 일본계 미국인까지도 등록을 명령하였다. 1941년에 19명의 사회주의노동자당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44년에는 30여명의 파시스트들이 외국인등록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49년부터 1958년 사이에 공산당의 지도자 144명이 외국인등록법에 의해 기소 당해 100명 이상이 각기 1만 달러의 벌금과 6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이 법에 의해 정치적 적의 블랙리스트가 공식화되었다.
미국 내 전복활동을 규제한다는 명분 아래 네바다주 민주당 상원의원 패트 맥커랜(Pat McCarran)의 발의로 방대한 국가안보법(The Internal Security Act of 1950, 일명 맥커랜법)이 통과되었다. 트루먼은 이 법이 ‘1798년 외국인 및 선동규제법 이래로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고, ‘권리장전에 대한 조롱’이며 ‘전체주의로 가는 여정’이라고 비판하며 거부권을 행사하였지만 하원뿐만 아니라 상원도 트루먼의 거부권을 ‘압도적으로’ 압도하였다. 당시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세력은 그만큼 처참하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국가안보법은 정부전복 및 선동행위를 처벌하고 공산주의단체를 법무부에 등록하도록 하고,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전복활동 통제위원회(SACB)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였다. 법무부 장관은 금지단체의 명단을 작성하였고, 연방수사국이 불법활동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금지단체와 연관이 있는 사람을 공직에서 배제하였다.
미국역사에 가장 유명한 블랙리스트는 1940-50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 할리우드 영화예술계에 등장하였다. 영화제작사, 라디오 TV방송사 등이 공산주의 동조자라는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리스트에 등재된 사람들의 고용을 거부하였다. 하원의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는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든 파시스트든 가리지 않고 모든 유형의 잠재적인 전복활동에 관심을 두었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된 다음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집중하였다. 위원회는 공개된 청문회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활약하는 공산주의 동조자를 색출하고자 했다. 연방수사국은 증인을 동료의 이름을 댄 ‘우호적 증인’과 수정헌법을 언급하고 동료의 이름을 대지 않는 ‘적대적 증인’으로 나누었다. 증인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거명된 사람들과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및 수정헌법 제5조(자기부죄금지)를 내세워 답변을 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작성되었다. 매카시는 이들을 ‘수정헌법 제5조 공산주의자’라고 조롱하였다.
50년대에 미국사회의 반공 히스테리 아래서 대략 300여 명 정도의 영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이 이외에 청문회에서 이름이 공식적으로 거명되지 않았지만 영화나 방송계에서 고용을 거부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으나 잠재적 기피대상자로서 실제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회색리스트(graylist)’라고 부른다.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블랙리스트 작가들은 차명(Front)으로 작품을 내거나 유럽으로 이주하여 경력을 이어갔다. ‘할리우드 10인’으로 유명한 달톤 트럼보(Dalton Trumbo)의 작품 <로마의 휴일>에 부여된 아카데미상은 차명인 헌터(Ian McLellan Hunter)가 수상하였다. 그런데 헌터도 나중에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트럼보의 1956년작 <눈물어린 포옹(The Brave one)>이 또 다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때에는 로버트 리치(Robert Rich)가 차명인으로 수상하였다.
적색공포는 50년대 후반 잦아들기 시작하였으며 이 흐름에서 미국시민권연맹(ACLU)과 민권법률가의 철폐투쟁이 주효하였다.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대한 기념비적 판결로서 예이츠 사건(1957)을 주목해야 한다. 공산당원 열 네 명이 스미스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할란 판사는 “피고인들이 즉각적인 불법 폭력행위를 선동했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취할 능력이 있고 그러한 행동의 발생이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예측된다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폭력행위의 이론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 즉각적인 폭력혁명을 기도하고 이를 선동하는 것만이 처벌대상이다.”라고 함으로써 홈즈가 제시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처음으로 판결로 관철시켰다. 드디어 야만적 금제에 금이 갔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어 고용을 거부당한 300여 명의 영화예술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에 참여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은 50년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약 300여 명의 영화예술인들이 참여한 구체적인 작품 목록을 요구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는 50년대 미국 사회의 반공 히스테리 아래서 대략 300여 명 정도의 영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는 사실과, 달톤 트럼보의 작품인 <로마의 휴일>과 <눈물어린 포옹>이 차명으로 수상했다는 사실을 제공한다.
- 50년대에 미국사회의 반공 히스테리 아래서 대략 300여 명 정도의 영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 ‘할리우드 10인’으로 유명한 달톤 트럼보(Dalton Trumbo)의 작품 <로마의 휴일>에 부여된 아카데미상은 차명인 헌터(Ian McLellan Hunter)가 수상하였다.
- 트럼보의 1956년작 <눈물어린 포옹(The Brave one)>이 또 다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때에는 로버트 리치(Robert Rich)가 차명인으로 수상하였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원수에 대한 정보와 일부 특정 작가(달톤 트럼보)의 작품명은 언급되어 있으나, 블랙리스트에 오른 300여 명 전체가 참여한 작품 리스트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 대략 300여 명 정도의 영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문맥에 등장하는 <로마의 휴일>과 <눈물어린 포옹>은 달톤 트럼보라는 특정 인물의 사례일 뿐, 블랙리스트에 오른 300여 명 전체의 참여 작품을 포괄하는 정보가 아니다. 따라서 문맥의 정보를 결합하더라도 질문이 요구하는 전체 명단을 확정할 수 없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은 300여 명의 영화예술인이 참여한 작품들을 묻고 있으나, 문맥은 특정 인물의 사례와 전체 인원수만을 언급할 뿐 전체 작품 목록은 제공하지 않는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음을 최종 답변으로 결정한다.
근거 (evidence)
- 50년대에 미국사회의 반공 히스테리 아래서 대략 300여 명 정도의 영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 ‘할리우드 10인’으로 유명한 달톤 트럼보(Dalton Trumbo)의 작품 <로마의 휴일>에 부여된 아카데미상은 차명인 헌터(Ian McLellan Hunter)가 수상하였다.
- 트럼보의 1956년작 <눈물어린 포옹(The Brave one)>이 또 다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때에는 로버트 리치(Robert Rich)가 차명인으로 수상하였다.
- 대략 300여 명 정도의 영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영화예술인의 규모와 특정 작가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으나, 질문이 요구하는 300여 명 전체의 참여 작품 목록은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에 없는 외부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