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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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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887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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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8875702_11
발행기관
국가보훈처
발행연도
2018
KDC
34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남북협상에 대한 외세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북행의 결행과정에서 임시 위원단의 캐나다‧호주대표는 양김씨의 남북회의참석을 1948년 3월 경 권했고 그것이 성공적이라면 ‘가능지역 선거’가 연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협상을 말렸으나 월경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1948년 4월 1일 미국의 딘 군정장관(소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김구 씨 김규식 씨가 평양행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므로 나는 도로나 철도를 이용하는데 있어 참고가 되도록 내 책상에 있는 지도를 제공하려 한다. 이 말이 퍽 냉소적인 말인 것은 사실이나 나로서는 남북협상이 5-10선거를 방해하려는 연막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이같이 냉소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 본관이 언명하는 바와 같이 미군정당국으로서는 장차 개최될 동 회담을 하등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후원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미국은 남북협상을 공산주의자들의 5-10선거 반대 책동의 일환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김규식은 원래 평양회담을 예비회담으로 하고 본 회의는 서울에서 개최할 것과 유엔조위의 북조선입경을 허용하여 남북총선거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 등 4개 조건을 4월 13일 하오 1시부터 열린 경교장 회합에서 김구에게 제시하여 북의 의사를 타진하자고 협의했다. 그러나 김구는 이에 반대하고 유엔 朝委와의 관계는 일절포기하자고 맞섰다. 유엔한위에 기대했던 김규식에 비해 김구는 유엔의 개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에 김규식이 다소 양보하여 위 5개항이 마련되었다. 이에 대한 김일성의 수락의사가 전해지자 김규식도 북행할 것을 결심했다. 결국 김구의 과단성 있는 결단과 김규식의 신중함이 결합되어 양김씨는 4월 19일(김구)과 21일(김규식)에 각각 북쪽으로 출발했으며 20일과 22일에 각각 평양에 도착했다. 김규식은 무조건 북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음에 비해 김구는 여하간 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규식의 상당히 자주적이며 이례적인 장문의 공격적 축사가 인상적인데 북의 20만 대군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한 대목이 특기할 만하다. 남조선 정부가 며칠 못 간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 우익들은 북의 남침을 초대하고 남의 정부를 부인하는 친북적 언사라고 비난할 것이지만 김규식은 공산화를 막기 위해 단선단정을 반대한다고 주를 달았으므로 일반적인 예측을 확대해석할 것은 없다. 양김씨는 4월 5일 연락원(특사) 파견을 결정하여 김일성의 성의를 타진하려는 신중함을 보였다. 4월 6일 안경근-권태양이 출발했으나 개성에서 미군정 경찰이 저지해 가지 못하자 김규식이 4월 7일 아놀드 소장을 만나 항의하기도 했다. 따라서 안경근 권태양은 공개리에 4월 7일 오전 10시 35분 서울을 출발하여 4월 8일 오후 2시 40분 평양에 무사히 도착해 일단 여장을 푼 다음 시급히 당사자들과 회견하여 연락사항을 전달하고 여관으로 돌아와 1박하고 9일 오후 3시 특별열차로 평양을 출발하여 10일 오후 9시 15분 서울에 도착 즉시 金九·金奎植에게 연락보고를 했다. 남북회담 한다고 바로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이 서로 양보해서 성 공된다면 환희로 돌아오겠지만 이것이 또 피흘리지 않고 소련연방에 집어넣는 것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되는 바가 없지도 않다. 또한 남조선 단선단정 때문에 남북이 영영 분열되고 분열되기 때문에 북조선에 20만의 인민군이 있으니 남조선에 정부가 서도 그 정부는 며칠 못갈 것인데 그때 가서는 남조선까지 공산화시키고 피를 흘리고 소련의 연방이 안 된다고 누가 전도를 단정할 것 인가?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남조선 단선단정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달할 때까지는 우리의 일을 우리끼리 한다고 하고서 만일 남북회담이 깨진다고 하여 그때 가서 미국에나 소련에다 또 우리 독립을 시켜주시오 할 수는 없으니 우리가 끝장을 보고야 말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김규식은 북의 좌익 본위의 단독행동에 반대하면서 자신은 좌익을 포괄하는 민족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주장했다. 즉 자신은 우익이라는 것이다. 그는 남북회담 참가단체가 좌익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도 검토했으며 양군철퇴 후 전쟁이 발발할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교적 단순히 생각했던 백범과는 달리 우사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우려했다. 또한 김규식은 4월 14일 안경근을 재차 파견하는 등 김일성의 의사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했다. 한편 4월 17일 남한 문화단체대표들은 재일동포의 교육을 옹호하기 위해 ‘재일민족문화옹호연맹’을 결성했는데 이극로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 와중에 우익청년단체와 기독교단체, 월남동포 등은 이 협상을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문화인 108인은 4월 14일 성명을 통해 협상을 지지해 당시 통일열망을 증폭시켜 대변했으며 대중들은 ‘무엇인가 하기는 해야 한다’는 노지도자들의 주장에 대체로 동조하는 편이었다. 이 시점에서 김규식에게도 또 다른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김규식을 중심으로 하는 입법의원과 독립전선에서 ‘매춘협회’(?)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규식은 이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몰랐고, 경찰과 회식을 하는데 사용했으며, 그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돌려주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김규식의 명성에는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38선 이남에서의 단독선거를 거부한 김규식에 대한 전형적인 정치공작이었다. 김규식은 남북에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궁극적으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김구 역시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죽더라도 ‘한국에서 죽고 싶다’는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선거에서 우익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보수 내부에서 반대 세력을 키우는 씨앗을 뿌려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구는 남북협상에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했던 점이 없지 않았다고 판단한 후 활기를 잃었다. 1948년 7월 21일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통일독립자촉진회’를 결성했으며 주석에 추대되었다. 우익인 김구와 김규식은 통일독립촉진회에 좌익·친북인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북의 정부수립을 배신행위로 단죄하고 북한·좌익과 선을 긋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1차연석회의에 남한의 우익인사들이 참여했다는 원죄 때문에 북한은 자신들의 정부가 남쪽 우익인사까지 참가한 남북협상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선전할 수 있었다. 결국 통일을 열망하는 민족의 꿈은 현실정치에서는 실현되지 못했으며 김구-김규식 양거두는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이용당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때의 연석회의 개최 주장을 지금까지도 반복적으로 주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김규식이 남북협상 과정에서 북행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김규식이 북행을 결정하게 된 원인과 계기를 문맥에서 찾아 기술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김규식의 북행 결심과 관련된 조건 및 상황을 추출한다.

    • 김규식은 무조건 북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음에 비해
    • 이에 대한 김일성의 수락의사가 전해지자 김규식도 북행할 것을 결심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김규식이 제시한 조건과 그 조건에 대한 김일성의 반응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유엔조위의 북조선입경을 허용하여 남북총선거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 등 4개 조건을
    • 이에 대한 김일성의 수락의사가 전해지자 김규식도 북행할 것을 결심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김규식이 제시한 4개 조건(유엔조위 북조선 입경 및 남북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 등)에 대해 김일성이 수락 의사를 밝힌 것이 북행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김규식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 김일성이 수락 의사를 전해온 것이 북행의 계기가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간결한 서술형으로 답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김규식은 무조건 북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음에 비해
  • 이에 대한 김일성의 수락의사가 전해지자 김규식도 북행할 것을 결심했다.
  • 유엔조위의 북조선입경을 허용하여 남북총선거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 등 4개 조건을
최종 답변 (final_answer)
김규식이 제시한 4개 조건(유엔조위의 북조선 입경 허용 및 남북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 등)에 대해 김일성의 수락 의사가 전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