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70년 ADD(Agency of Defense Development)와 1973년에 제정된 방위산업 에 관련된 특별규제 조치에 의해서 한국의 자주국방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군의 현대화사업은 방위세가 신설된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방위세의 규모는 GDP의 약 2%로 외국으로부터 최신무기를 도입함으로써 한국군의 현대화와 자주국방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75년까지는 한국의 국방예산의 약 90% 이상을 부대 운영과 유지에 배분하였고 군사기술 연구/개발 및 무기구입에는 10%도 못 미치는 수준을 배분하였다. 그러나 ’76년부터 ’90년 초반까지는 30-35%를 군사력건설과 현대화에 배분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60년대 말까지 미국의 강력한 군사・안보지원하에 북한의 현시적 군사위협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군의 월남파병, 예비군 설치와 동시에 “선 경제개발 및 사회안정, 후 한국군의 현대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 스스로 자주국방을 위한 한국군 현대화를 추진해야만 했었고 동시에 경제개발과 사회안정을 위한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특별목적세인 방위세를 신설하여 자주국방을 위한 한국군 현대화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방위 세제가 시행되기 이전인 1975년까지 한국과 북한의 전력투자비와 군사력은 북한이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의 군사력 건설 중심의 “4대군사노선” 추진과는 반대로 박정희 정부의 “선 경제개발 및 사회안정, 후 국방력건설”정책은 적중하였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을 추월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방부문에 국가재정의 31.1%, 사회개발에 23%, 경제개발에 약 30%를 배분하였다. 이러한 재원배분은 1962-1975년 간의 약 25%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되었으며, 이는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첫째, 국방, 둘째, 경제개발, 셋째, 사회개발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국방예산의 정부예산과 GDP의 탄력도가 1.02와 1.05로 경제성장률과 정부예산의 증가율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간은 박정희 정부(1961-79)와 전두환 정부(1980-87) 기간으로 약 30여 년간의 장기간이다. 이 기간은 한국의 군사력 건설, 국방운영, 국방개혁 등 한국의 국방과 군사발전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기간이다. 즉 한국의 국방발전과정에 있어서 기반이 되고, 오늘날의 국방능력을 구비하는데 도약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간이었다. 이 기간의 물가상승의 파급을 제거한 실질국방예산의 국가경제능력과 정부재정의 탄력도를 보면 1보다 크거나 거의 동일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가경제성장률과 정부의 재정증가율보다 국방 예산의 증가율이 높았음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정부의 재원배분 추세는 국방부문의 정책우선 순위가 타 부문보다 가장 우선적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비율 측면에서도 GDP의 4-5%, 정부예산의 3분의 1 수준을 상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정책적 우선순위는 한국 군사부문의 세부적 발전측면을 기준으로 볼 때 대북한 열세전력 확보기간을 국방능력 기반 구축기간(1963- 1975)과 대북 군사위협 대응전력 확보기간(1976-1987)으로 구분되어질 수 있겠다.
이러한 추세는 전두환 정부에 들어와서도 지속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재원배분 정책은 닉슨과 카터 미국 정부의 대한반도 군사・안보지원정책의 반향(反響; repercussion)과 연관이 있었겠으나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 역시 자주국방과 북한에의 열세전력 극복을 위해 군사력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특히 ’80년대 초-중반 간에는 전두환 정부와 레이건 미 정부와의 협약에 의해서 GNP의 1% 규모의 국가재정을 국방예산에 배분하기로 했었던 사실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의 국방부문에의 재정배분은 국가재정의 약 1/3을 국방부문에 배분했지만 전두환 정부가 연평균 약 29%로 박정희 정부의 약 27%보다 더 높게 대북한 열세전력을 극복하기 위해 재원을 배분했다. 그러나 연평균 국방예산의 국가경제 탄력도를 비교해보면, 전두환 정부의 0.83은 1.02인 박정희 정부보다 낮은 수준이다. 즉 전두환 정부는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는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낮았으나, 박정희 정부는 높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태우 정부에 들어와서는 눈에 띄게 국방 분야 재원배분이 박정희, 전두환 정부에 비해서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즉 국방 부문의 정책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국방예산의 정부재정과 국가경제성장에 대한 탄력도가 0.75와 0.80으로 1보다 적다. 이는 국방예산의 상대적 증가율이 정부재정과 국가경제 성장률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추진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 중 걸프전의 교훈, 주한미군의 감축 대비 및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 등에 대비하여 긴장완화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위한 북방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긴장완화를 위해 전력증강의 과감한 전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력 건설을 게을리하였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정책목표를 전환시켰을 뿐이었다. 군사력건설과 군사력 운용정책 목표를 가용재원의 적정한 배분을 통해서 전투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억제효과가 큰 핵심전력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전력구조 고도화를 꾀하고, 주한 미군 주둔 정책과 연계하여 독자적 전략구사가 가능토록 한다는 데 두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7년 방위력 개선사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부에 방위사업실, 합참에는 전력평가참모본부를 신설하였고 특히 합참에는 군 구조 발전부를 상설조직으로 편제화하였다(국방부, 1997, p. 132). 또한 김영삼 정부 기간 전력투자 분야에 총 16조 6,284억 원을 배분하였다. 김영삼 정부의 군사력건설을 위한 전력투자부분에의 재원배분 특징은 1970, 1980년대와는 달리 육군과 지상전력 분야의 재원배분율이 현저하게 감소한 반면에 해・공군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상승하였다. 해, 공 군 및 연구개발 분야의 예산증가는 C4ISR체계 확보 노력 등 전력구조의 첨단화를 위한 일환으로 보인다. 또한 1996-1997년 기간 공통전력 분야의 예산증가율이 105%, 120%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독자적 조기경보 및 감시, 방공, 지휘・통제・통신체계의 구축을 위한 백두・ 금강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국방부문의 정책우선순위의 하락은 한국 내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요인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민의 정부출범에서부터 김영삼 정부는 정치적으로 과거의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과거의 정부를 군사정부로, 새로 탄생된 정부를 문민의 정부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김영삼 정부는 특히 군 개혁 및 군대 내 사조직의 해체와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는 등 군사문화의 상징적 제거를 통해 국민들에게 국방 및 군사부문에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군사력 건설, 군 운영 및 군 관련 각종 사업들의 소요결정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국방예산의 규모 결정에 적지 않은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파급효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율을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과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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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율이 국가경제 성장률(경제 규모 증가율)과 비교하여 각각 어떠한 양상을 보였는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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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박정희 정부의 국방예산 관련 탄력도 수치와 전두환 정부의 국방예산 관련 탄력도 수치를 추출한다.
- 국방예산의 정부예산과 GDP의 탄력도가 1.02와 1.05로 경제성장률과 정부예산의 증가율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연평균 국방예산의 국가경제 탄력도를 비교해보면, 전두환 정부의 0.83은 1.02인 박정희 정부보다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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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박정희 정부는 탄력도가 1보다 커서 경제성장률보다 국방예산 증가율이 높았음을 확인하고, 전두환 정부는 탄력도가 1보다 낮아 경제성장률보다 국방예산 증가율이 낮았음을 확인한다.
- 경제성장률과 정부예산의 증가율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전두환 정부의 0.83은 1.02인 박정희 정부보다 낮은 수준이다.
- 전두환 정부는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는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낮았으나, 박정희 정부는 높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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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박정희 정부의 탄력도는 1보다 크므로 국방예산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지만, 전두환 정부의 탄력도는 1보다 작으므로 국방예산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는 논리적 관계를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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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두 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율과 국가경제 성장률 간의 관계를 대조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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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박정희 정부는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 높았던 반면, 전두환 정부는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 낮았다.
근거 (evidence)
- 국방예산의 정부예산과 GDP의 탄력도가 1.02와 1.05로 경제성장률과 정부예산의 증가율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연평균 국방예산의 국가경제 탄력도를 비교해보면, 전두환 정부의 0.83은 1.02인 박정희 정부보다 낮은 수준이다.
- 경제성장률과 정부예산의 증가율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전두환 정부의 0.83은 1.02인 박정희 정부보다 낮은 수준이다.
- 전두환 정부는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는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낮았으나, 박정희 정부는 높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박정희 정부는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 높았으나, 전두환 정부는 국가경제 규모의 증가율보다 국방예산의 증가율이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