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산출물 · 도서자료 기계독해

문화재 안내표기설명문 등 및 체계 개선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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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616093218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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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KDC
35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일본서기’에 따르면 스슌천황 원년(588)에 소가노 우마코는 법흥사를 건립할 것을 계획, 스슌천황 5년에는 불당(금당), 보랑(회랑)이 완성. 스이코천황 원년(593)에는 탑을 기공하고, 4년에는 어느 정도의 건물이 완성되었다. 13년에는 죠로쿠불상을 만들어, 14년에 안치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사원으로, 많은 박사와 공인들이 한반도에서 도래해 사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타이카노 카이신과 천황의 병 치유 등 아스카시대를 통틀어 아스카에서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켄큐 7년(1196)에 소실되어, 현재에 이른다. 법흥사, 원흥사라고도 불리며, 현재는 止利불사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일본의 중요문화재인 금동장육불이 남아 있다. 1956년부터 계속적인 발굴조사 결과, 탑을 중심으로 삼방으로 금당을 두고, 북쪽에는 강당, 남쪽으로는 중문과 남문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사역은 남북 290미터, 동서 200~250미터의 규모가 되며, 아스카에서는 대관대사와 함께 최대규모의 사원이었다. 1) 가야산은 소백산맥의 지맥(支脈)에 위치한 해발 1430m 산으로 2) 법보종찰(法寶宗刹)인 해인사의 주산(主山)이며, 조선팔경(朝鮮八景)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던 명산이다. 특히 농산정(籠山亭)이 있는 홍류동(紅流洞)의 십리 계곡은 수석(水石)과 홍송(紅松)이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3) 해인사는 통일신라기에 건립된 고찰(古刹)로 1398년(태조7) 이래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로 유명하며, 주변에는 원당암(願堂菴)을 비롯한 여러 부속 암자들이 있다. 고려 고종대에 제작된 4)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방대하고 가장 정확한 것으로 세계 최고의 것이다. 이 곳에는 팔만대장경 외에도 해인사 장경판고(藏經板庫), 반야사(般若寺) 원경왕사비(元景王師碑), 월광사지(月光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 청량사(淸凉寺)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과 삼층석탑(三層石塔) 등의 국보와 보물이 전해지고 있으며, 5)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이 중요민속자료로 보관되어 전해지고 있는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나무들은 1519년(중종 14)에 2)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윤탁(尹倬)이 심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이 가운데 서쪽에 있는 나무는 높이 21m,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7.3m다. 동쪽에 있는 나무는 3) 전쟁의 피해로 가지가 일곱으로 갈라졌지만 각각의 가지가 본래의 줄기 크기만큼 크게 자랐다. 대개 은행나무는 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만 이 나무는 수나무다. 나무의 가슴높이 부분에 60cm 정도 되는 세 개의 유주(호흡작용을 도와주는 돌기)가 있는데 이것은 나무가 나이를 많이 먹었을 때 생긴다. 4) 예로부터 은행나무는 절이나 향교, 문묘, 사단, 경승지 등에 널리 심었다. 은행나무는 지정 보호수 가운데 느티나무 다음으로 개체 수가 많다. 5)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 하나만 있는 식물로 군락을 이루지 않고 홀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겉씨식물의 일종으로 암수가 딴 그루로 따로 떨어져 있고, 잎은 대개 부채꼴 모양인데 중간 부분이 세로로 갈라져 있다. 나무의 품종에 따라 잎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대개 가지 끝에 3~5개의 잎이 모여 있다. 가을이 되어 색이 변한 은행나무 잎은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징코민이라는 성분이 있어 심장에 좋은 약효를 지니고 있다. 은행나무 열매는 진해․거담 등의 질환에 효험이 있다. 1)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 2)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고려시대 유학자인 회헌 안향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세우고, 2)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후에 3)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명종임금께 건의하여 서적, 토지, 노비 등과 함께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 받았다. 4) 소수서원은 신라시대 때 창건된 숙수사라는 절터에 세워졌다. 5) 이에 대해서는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와 선비정신을 이어가는 유불 문화의 융합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나 숭유억불 사상의 영향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원 입구에서 6)학자수라 불리는 의젓한 적송군락을 따라가면 맑은 죽계수를 만난다. 시냇가에는 시원한 물빛에 취해 시와 풍류를 즐긴다는 취한대와 경자바위가 있다. 경렴정과 지도문을 지나 만나는 서원 경내는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7) 보통은 전당후묘, 즉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 뒤에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 배치가 일반적인데, 소수서원은 동쪽이 강학공간, 서쪽이 제향공간이다. 서쪽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사상을 따른 것이다. 이 산성은 1711년(숙종37)에 북한산에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한양 외각에 성을 쌓자는 논의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산성이다. 당시 완성한 성곽의 1)길이는 7,620보(步), 즉 21리 60보이며, 지형에 따라 적절하게 축성방식을 달리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곽시설로 군사 지휘소인 장대(將臺)를 세 곳(동장대·남장대·북장대)에 만들었고 성문 6개소(북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대서문), 2) 암문(暗門) 6개소, 수문 1개소를 두었다. 성을 쌓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문제로 삼았던 식수문제는 99개소의 우물을 파서 해결했다. 저수지도 26개소나 만들고, 8개소의 창고를 두었다. 성 안에는 승군(僧軍)을 주둔시키기 위한 사찰을 여러곳에 두었는데 승군 총섭이 머물던 중흥사의 3) 규모가 136칸에 달했다. 1712년(숙종38)에는 상원봉 아래에 130칸 규모의 행궁과 140칸에 이르는 군창(軍倉)을 지었다. 근래 훼손되었던 대서문·대남문을 보수하였고, 대성문·대동문·보국문·동장대 등은 다시 지었으며, 성곽과 여장 등도 보수·정비하였다. 이 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500여 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양민공 손소(1433~1484)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경주 손씨가 양동마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여주 이씨는 찬성공 이번(1463~1500)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 이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이처럼 혼인한 신랑이 처가를 따라가서 사는 일이 많았다. 그동안 두 집안에서는 우재 손중돈(1463~1529)과 회재 이언적(1491~1553)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산줄기에 마을이 들어선 모양새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설창산에서 뻗어내린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150여 채의 옛집들이 굽이굽이 들어서 있는데, (1) 이 중에는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 이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네 채나 남아 있어 눈여겨 볼 만하다. 집들은 대개 'ㅁ'자 모양인데, 이는 조선 중기 영남 지방의 일반적인 가옥 형태이다. 기와집 주변의 초가집들은 옛날 기와집에 살았던 양반들이 거느린 노비들이나 소작농이 살았던 집이다. 1984년에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하드리안 성벽 지역에 오신 것을 환영함. 하드리안 성벽은 로마제국 전체에서 가장 철저하게 방어했던 국경지대이다. 성채 옆에 서 보거나 요새 주변을 걸어보면 과거 이곳을 지켰던 군인들의 삶이 어떠했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오늘날 하드리안 성벽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동해의 노스 엄브리아 해안에서 서해의 컴브리아 해안까지 수많은 로마요새, 박물관, 기타 고고학 발굴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로마유적을 둘러보는 것 외에도 해변 모래사장과 펠 언덕지형 등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려는 방문객은 수많은 길을 둘러볼 수 있다. 고성과 정원 여러 곳, 활기 넘치는 시장이 있는 동네와 그림 같은 마을들, 그리고 뉴캐슬과 칼라일 두 대도시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로마제국 끝자락에 위치한 고대와 현대의 관광지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 헤돈 온더월에 오신 것을 환영함. 이름에서 볼 수 있듯 헤돈 온더월 마을은 로마 성벽이 위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여러분은 헤돈에서 10피트 넓이의 ‘넓은 성벽’ 구간을 상당 부분 볼 수 있다. 성벽은 뉴캐슬에서 이만한 폭으로 시작되었으나 서쪽으로 가면 8 피트로 폭이 줄어든다. 이는 비용을 줄이고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마을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석기 시대에 만든 석기도구 몇 개도 인근 밭에서 발견된 바 있다. 세인트 앤드류 교회가 마을 중심부에 있다. 650년 정도 건립된 이 교회 건설자재의 상당부분은 로마시대 성벽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늘날 여러분은 정통 노르만족 성단소와 후기 색슨족의 돌 다루는 기술이 교회중앙부 신도석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교회 내 유산 센터에서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한 정보와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이외에 펍 2개, 찻집과 가게 등이 있는 마을을 좀 더 둘러볼 수도 있고, 마을을 관통하는 하드리안의 성벽 국가 사적 길을 걸어볼 수도 있다. 사적 143호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의 범위를 문화유적지 ‘서울 문묘 및 성균관’으로 이해하여 종합안내판을 설치한다. 한편 보물 제141호 서울 문묘 및 성균관[대성전ㆍ동무ㆍ서무ㆍ삼문ㆍ명륜당]은 문묘와 성균관에 딸린 몇 개의 건물을 묶어서 하나의 문화재로 지정한 것인데,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으로 나누어 권역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대성전, 동무, 서무는 제향목적으로 세워진 건조물이다. 이 구역은 제향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고, 여기에 권역안내판 1개를 설치할 수 있다. 다음으로 명륜당이 있는 곳은 강학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권역안내판 1개를 세울 수 있다. 따라서 보물 제141호 서울 문묘 및 성균관[대성전·동무·서무·삼문·명륜당]은 하나의 지정문화재에 대해 2개의 권역안내판을 설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천연기념물 제59호 서울 문묘 은행나무에 대해서는 개별안내판 1개를 설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문화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지만, 국가 지정 문화재 및 광역시와 도 지정 문화재를 항목에 포함하고 있어서 문화재 정보 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1991년 12월 31일 초간본이 발행된 이후 4년 뒤인 1995년에 CD-ROM형태의 디지털 백과사전으로 편찬되었으며 2001년 1월에 온라인서비스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2007년에 기존 내용의 개정 및 오류 들을 수정할 목적으로 개정증보가 이루어졌으며 이 작업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기본 메타데이터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기본 메타데이터는 한글항목명, 한자항목명, 이칭별칭, 키워드, 분야, 유형, 시대, 개별웹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헤돈 온더월 마을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 교회의 구체적인 건립 연도는 언제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헤돈 온더월 마을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교회가 정확히 몇 년도에 건립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점을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헤돈 온더월 마을과 세인트 앤드류 교회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세인트 앤드류 교회가 마을 중심부에 있다.
    • 650년 정도 건립된 이 교회 건설자재의 상당부분은 로마시대 성벽에서 가져온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교회의 건립 시기와 관련된 문구를 선택한다. 해당 문구는 '650년 정도 건립된'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건립 시점(연도)이 아니라 건립된 지 흐른 기간이나 대략적인 시기를 나타내는 모호한 표현이다.

    • 650년 정도 건립된 이 교회 건설자재의 상당부분은 로마시대 성벽에서 가져온 것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제공된 정보 '650년 정도 건립된'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이 교회가 서기 650년에 지어졌다는 것인지, 혹은 현재로부터 650년 전에 지어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건립 시기가 650년경이라는 것인지 명확한 연도를 확정할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문맥에는 교회의 건립과 관련된 불분명한 수치만 존재할 뿐, 질문이 요구하는 정확한 건립 연도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정확한 건립 연도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세인트 앤드류 교회가 마을 중심부에 있다.
  • 650년 정도 건립된 이 교회 건설자재의 상당부분은 로마시대 성벽에서 가져온 것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세인트 앤드류 교회가 '650년 정도 건립되었다'는 모호한 정보만 포함되어 있다. 질문이 요구하는 정확한 건립 연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추가적인 정보나 외부 지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