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3.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의 고문서는 2014년 1월에 모두 안동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다. 기탁한 자료는 현판 4점, 3월에 목판 7점과 현판 2점, 2015년 4월 23일에 고서 434종 842책・고문서 1,298점・서화류 17점・기타 3점 총 2,160점 등 고서・고문서・목판・기타류 총 2,173점이다. 고서는 석인본으로 간행한 개인문집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고문서는 노송정 후손들의 수신간찰과 제문, 시문 등으로 구성된 것이다. 시기는 주로 1800년대 중후반 이후로 추정되지만 『가선고적(家先古蹟)』・『선조양세유묵(先祖兩世遺墨)』・『제현유적(諸賢遺蹟』・『선현묵첩(先賢墨帖)』 등 4종의 첩은 1400년부터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성 시기가 비교적 이르며, 작성자 또한 영남의 유명한 명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종택의 고문서 자료들은 한 가문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영남사림들의 사회상과 문화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성책고문서는 174책이다. 그것은 크게 필첩류(筆帖類), 화첩(畵帖)・계첩류(契帖類), 우복관련문서(愚伏關聯文書), 명단류(名單類), 소모사관련문적(召慕使關聯文蹟) 등이다. 『소모일기(召募日記)』는 동학혁명 당시 영안소모사로 활동한 정의묵이 1894년 10월~1895년 1월에 쓴 일기이다. 『토비대략(討匪大略)』은 1894년 동학군의 토벌 상황을 관군의 입장에서 정리한 문서이다. 정경세 관련 문적은 다음과 같다. 『우복선조별집영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營刊時文蹟)은 『우복집(愚伏集)』 별집 간행의 전말을 기록한 문서이다.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은 『우복집』 별집 간행시 우복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을 기록한 문서이다. 『우복선생시장(愚伏先生諡狀)』은 송시열이 찬한 정경세의 시장(諡狀)으로, 시장을 올린 다음 봉상시에서 예조·이조・의정부를 거쳐 국왕이 시호를 결정하기까지의 첩정(牒呈)・관(關)・계목(啓目) 등이 첨부되어 있다.
우복종가의 고문서는 오래 전에 대문채에 보관했는데 1948년 화재가 발행하여 전적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전적류 가운데는 정경세와 정종로가 남긴 것이 많았지만, 화재 당시 정경세 관련 전적류를 우선 보호하는 과정 에서 정종로의 것은 상대적으로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복 종택의 고문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되어 있다. 고서류는 고서류는 424종 827책이다. 분야별로 경부(經部)가 15종 23책, 사부(史部)는 40종 68책, 자부(子部)는 18종 33책, 집부(集部)는 351종 693책 등이다. 경부 가운데 갑인자계열(甲寅字系列)의 활자로 서지학적 가치가 높은 『예기집주대전(禮記集註大典)』가 있다. 사부(史部)에서 『진양정씨가첩(晉陽鄭氏家牒)』이 주목할 만한 것은 정도응이 편찬한 상주 진주정씨의 사적(事蹟)이다. 우복 가문이 상주에 입항한 이후 정경세를 거쳐 정도응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부(子部)는 이황이 찬한 『주서절요』의 전통을 이은 명저로 평가된 정경세의 『주서작해(朱書酌海)』 등이 간행연도가 비교적 오래된 것이다.
첫째, 우복 정경세의 종가로서 종택은 고손자 주원(冑源,1686-1756)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43년 이전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우복이 그 이전에 우산리에 별서를 경영하면서 1602년 우복산장(현, 대산루 추정), 1603년 계정(溪亭)을 건립하여 ‘청간정(聽澗亭)’이라 하였다. 그 뒤 그의 고손자 주원이 율리에서 세거지를 옮겨 종택을 지은 것이다. 이 과정은 조선중후기 한 가문의 경영방식과 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볼 수 있는 하나의 물적인 자료이다. 둘째, 가문의 고문서들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에 424종 827책 정도 기탁되어 있다. 종택의 고문서들은 사환(仕宦)을 역임한 인물이 많이 배출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고문서가 상당수 있다. 특히 19세기 중 후반 국내외 정세의 변동 속에서 지방관의 대응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성책이 많다는 점이 다른 가문과 대비 되는 특징인 반면 일반적으로 고문서에서 많이 전해지는 간찰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함라마을은 최초 임천조씨의 집성촌으로 형성된 이래, 남궁(南宮)․조(趙)․장(張)․김(金) 등 여러 성씨들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김안균 가문은 김안균의 6대 조부인 김원공이 입향하면서 거주하게 되었고 4대 조부인 김기형(金箕亨)이 벼슬로 가문의 기반을 잡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함라마을에는 근대기를 거치면서 부농(富農)들이 점차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며, 김안균가옥 역시 이 시기에 건립된 일종의 부농주거로서 상량(上樑)기록들을 근거로 하면, 1922년(안채, 사랑채 등)과 1930년(문간, 행랑채 등)에 신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최초 가옥을 건립한 인물은 김안균(金晏均, 1934~2004)의 부친인 김병순(金炳順, 1894~1936)으로 이 지역 3대 부호 중의 하나로서 당시 만석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농장과 기업 등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하여 가문의 부를 더욱 확장시키게 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김안균가옥은 1986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안채, 사랑채를 비롯하여 행랑채, 담장 등 가옥의 일곽에 대한 크고 작은 보수 공사가 있어 왔다.
전언(傳言)에 의하며 함라산의 형세가 장삼을 입고 염주를 두른 승려가 두 팔을 펼치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며, 김안균가옥이 위치한 곳이 바로 승려가 시주를 받는 주발에 해당하는 곳으로 큰 부를 이룰 명당지라고 전하고 있다. 관련기록에 의하면, 실제로 과거 마을 일대에는 많은 부농들이 거주하였는데 만석꾼이 3호, 천석 이상의 부호가 4호, 백석 이상의 부호가 20여 호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함라마을을 대표하는 부농가옥으로서 김인균가옥을 비롯하여 조해영 가옥(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 이배원가옥(익산시 향토유적 제10호)등이 남아 있다. 또한, 가옥의 의장 수법 등에서 조해영가옥과 김안균가옥은 동일 목수에 의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안균가옥은 전라북도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익산에 남아 있는 고택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여 1986년 9월 8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3호로 보존, 관리되어 오고 있다.
1920년대 지어진 우리나라 상류가옥의 하나로 전통적인 상류 주택이 개화의 물결속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은 김안균의 선대가 지은 것으로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壬戌)에 건립되었고, 행랑채는 1930년(庚午)에 지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김안균의 선조인 김원공은 가난한 선비였으나, 길에 쓰러진 승려를 치료해주고 그 보답으로 승려가 지정해 준 자리에 묘를 쓴 뒤 기울었던 가세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김안균의 증조부인 김기형(金箕亨)이 1854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후에 운봉현감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가 병을 사망하자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솔과 잣을 심어 산소를 정성껏 가꾼 효자로 고종 때 정려를 하사받았으며, 그 정려각은 행랑채 끝에 이어진 낮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의 아들 석종(錫宗, 1904년卒)은 1873년(고종 10) 식년(式年) 사마시(司馬試)에 진사가 되었고, 그 후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우복 종가의 고문서 중 정경세와 관련된 문적 중, 『우복집』 별집 간행 시 우복 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을 기록한 문서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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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특정 문서의 명칭을 문맥 내에서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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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정경세 관련 문적에 대한 설명과 각 문서의 내용을 포함하는 단락을 추출한다.
- 정경세 관련 문적은 다음과 같다.
- 『우복선조별집영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營刊時文蹟)은 『우복집(愚伏集)』 별집 간행의 전말을 기록한 문서이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은 『우복집』 별집 간행시 우복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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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언급한 '우복 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이라는 조건과 일치하는 문구를 선택한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은 『우복집』 별집 간행시 우복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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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선택된 문구가 질문의 조건(마찰상 기록)을 완벽히 충족함을 확인한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은 『우복집』 별집 간행시 우복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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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해당 문서의 명칭을 최종 답안으로 결정한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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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작성한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
근거 (evidence)
- 정경세 관련 문적은 다음과 같다.
- 『우복선조별집영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營刊時文蹟)은 『우복집(愚伏集)』 별집 간행의 전말을 기록한 문서이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은 『우복집』 별집 간행시 우복후손과 풍산류씨 류성룡 후손 사이의 마찰상을 기록한 문서이다.
-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
최종 답변 (final_answer)
『우복선조별집개간시문적(愚伏先祖別集別集開刊時文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