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산출물 · 도서자료 기계독해

경계 너머 깃든 가치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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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81120054015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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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8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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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어디 공연뿐일까. 오거리문화센터에서 유달초등학교까지, 골목골목 조금이라도 너른 곳이 보이기라도 한다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근대역사관 2관 근처에서는 당시의 각국 영사와 일본인, 그리고 조선인과 지게꾼, 유랑극단으로 분한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축제의 흥을 돋웠다. 근대건물을 스크린 삼아 역사 이야기가 수시로 펼쳐졌고, 근대역사를 주제로 한 ‘퀴즈 골든벨’ 역시 많은 학생이 참여해 열기를 높였다. 어른들도 맞히기 어려운 퀴즈가 연달아 나왔지만, 제법 잘 맞히는 학생들 덕에 퀴즈대회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가 아닌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며 성장해가는 학생이 참 대견하고 부러웠다. 이외에도 목포진역사공원에서는 ‘한지 소원등 만들기’, 유달초등학교에서는 ‘민속놀이체험’, 근대역사관 1관에서는 문화재 팝업카드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돼 관람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밤에 열리는 축제에서 먹을거리와 사갈 거리를 빼놓을 수 없는 법.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출출해진 관람객들은 달짝지근한 냄새로 유혹하는 푸드트럭에서 배를 채우고, 50여 곳에 이르는 플리마켓(벼룩시장)에서 추억으로 남길 만한 물건을 사 갔다. 문화재청의 지역문화재 활용사업은 지역에 있는 문화재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개발하여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된 사업입니다. 지역문화재 활용사업은 2008년에 시작된 생생문화재 사업부터 향교·서원 문화재(2014년~), 문화재야행(2016년~), 전통산사 문화재(2017년~)까지 총 4개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문화재 활용사업의 2017년 사업별 모니터링 결과, 문화재야행 등 4개 사업, 250개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여 약 272만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였으며, 이를 통해 총 1,364억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지역문화재 활용사업에 대한 국민적 호응에 힘입어 올해는 280개 행사를 시행 중이며, 내년에는 290개 행사를 선정하였습니다. ‘춘마곡, 추갑사’라 해서 봄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태화산 마곡사.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고 전하는 이 사찰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는데, 이를 1172년(명종 2)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지눌은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마곡사는 또한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스치다 조스케(土田壞亮)를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남아있다. 마곡사에는 자연과 조화를 중요시한 한국의 전통미가 담겨 있다. 특히 층층이 겹쳐 선 석탑과 전각들은 태화산 산세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며, 단풍이 깊게 물든 가을 풍광은 일품으로 꼽힌다. 지난 6월 30일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마곡사를 비롯한 7개 사찰은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 산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원효대사가 창건한 밀양 표충사에 들렀다. 본래 이 사찰의 이름은 죽림사였다고 한다. 그 후 신라 흥덕왕 때 영정사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 후기 사명대사를 추모하는 사당이 들어서면서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밀양 표충사 들어가는 길은 완만한 솔숲이다. 청량한 느낌이 든다. 한참 걷다보니 2층 누각이 나선다. 밀양 표충사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작은 글씨로 ‘수충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은 유교와 불교의 공간이 함께 있는 다소 특이한 공간이다. 수충루에 들어서면 왼쪽에 사당이 먼저 나온다. 여기가 유교의 공간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란 극복에 앞장선 사명대사를 비롯해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는 유교식 제향을 올린다. 옆의 유물관에서는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양국대장의 사령깃발, 사명대사 일본 상륙 행렬도 팔곡병 등을 볼 수 있다.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면 가지산을 배경으로 한 사찰들이 나온다. 동서로 기다랗게 펼쳐진 가람, 그 가운데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이 있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은 통일시대의 석탑으로 보물 제467호다. 1995년 석탑의 해체 보수 공사 중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석탑의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탑기비(1491년) 등이 발견되었는데, 출토 유물들은 일괄해서 보물 제1944호로 지정되었다. 밀양 표충사는 영정약수로도 유명한데 신라 흥덕왕 때 셋째 왕자가 풍으로 고생하다가 이 우물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우화루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전국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복사해 걸어두었다는 우화루. 대사의 영정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산길을 헤매었으니 이젠 물길로 나서보려 한다. 사진으로 먼저 본 월연대와 영남루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가는 길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밀양단장면허씨고가부터 들러야겠다. 밀양에는 예로부터 사림유학자, 낙향고관대작들이 많아 고택들이 많다. 그러나 밀양단장면허씨고가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고가는 허채(許埰, 1859∼1935)가 1890년 건립한 목조 기와집이다. 마당의 규모나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만 봐도 당시 집주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 남아있는 것 외에도 정침, 별당, 내고, 별당, 큰사랑채 등이 있었다고 하니 본래의 건물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된다. 이 집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니 왠지 그들의 글 읽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빡빡한 일정으로 밀양천을 따라 솔밭이 펼쳐진다는 기회송림은 다음 기회에 가기로 하고, 명승 제40호 담양소쇄원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꼽히는 명승 제87호 밀양 월연대로 길을 잡는다. 월연대는 조선 중종 15년 문신이었던 이태가 기묘사화를 예견하고 낙향하여 지은 별서 건물이다, 낙향한 그는 쌍경당과 월연대 등의 건물을 세우고 주변 풍경을 아름답게 조경하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눈앞에서 본 밀양 월연대는 기대 이상이다. 명승 제87호인 밀양 월연대는 밀양 8경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조경문화답게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지은 것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작은 돌들을 모아 가지런하게 쌓은 석축과 토담, 그 위에 자연스럽게 놓인 건물들이 무질서한 듯 멋스럽다. 또한 밀양 월연대 일원에서 보이는 강변 풍경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보름달이 뜨면 더욱 아름답다고 하는데 볼 길이 없어 아쉬웠다. 강이 보이는 곳에서 최대한 많은 풍경을 카메라에 넣을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밀양단장면허씨고가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을 배출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구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밀양단장면허씨고가에서 배출된 근대 유학자들 중 특정 인물의 이름을 요구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밀양단장면허씨고가와 관련된 정보를 추출한다. 이 집은 허채가 1890년에 건립한 목조 기와집이며, 이 집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 이 고가는 허채(許埰, 1859∼1935)가 1890년 건립한 목조 기와집이다.
    • 이 집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니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건립자인 허채에 대한 정보와 근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있으나, 배출된 구체적인 유학자들의 명단이나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이 집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니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건립자인 허채는 언급되었으나, 그로부터 이어져 나온 '근대 유학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 중 누가 가장 유명한지에 대해서는 문맥 내의 어떤 문장을 결합해도 알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가장 유명한 근대 유학자'에 대한 정보는 문맥에 존재하지 않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음을 최종 답변으로 결정한다.

근거 (evidence)
  • 이 고가는 허채(許埰, 1859∼1935)가 1890년 건립한 목조 기와집이다.
  • 이 집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니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밀양단장면허씨고가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과 건립자인 허채에 대한 정보는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배출된 유학자들의 구체적인 명단이나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으므로 외부 지식 없이는 답을 결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