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처럼, 여성호명 담론의 주 형성 공간인 남초 커뮤니티는 과거 여성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과시하던 남성위주의 공간과는 차이를 나타냈다.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 이용층인 2,30대 남성들은 오프라인에서 ‘00녀’와 같은 여성혐오 담론을 떳떳하게 논의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여성비하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00녀’에 관한 담론이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배경에는 한국사회 내에서 2,30대 남성들이 처한 입장이 자리한다. 한국사회에서 연애는 입시, 취업 경쟁만큼이나 치열하고,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이에 키, 자산, 직업적 성공 등의 조건은 단순히 개인이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연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반 조건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을 지니지 못하는 남성은 스스로를 ‘찌질함’으로 표현하며, 결혼, 심지어는 연애조차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비하했다. 젊은 남성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자신의 찌질함을 비하하고 폭로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성호명 담론은 중요한 기제로 활용되었다.
성 혐오성 표현이 확산되는 가운데, 다수 전문가들은 여성 혐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며,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함을 시사하였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성평등을 국가 철학으로 내세우는 유럽연합(EU)처럼 우리나라도 성차별인식을 없애기 위한 국가적 노력과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혐오표현을 직접적인 형사처벌로 다루는 국가가 많으며, 미국은 행정 제재와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등 간접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국내에서도 2007년 입법예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 혐오적 발언을 범죄화하고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엔이 우리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미 권고했지만 정치사회적 상황으로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처벌 조항을 어떻게 구체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감격스러웠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분단의 세월도 그만큼 흘렀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35년 만에 벗어나 광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독립을 위해 불굴의 투쟁에 온 민족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 정세와 시대의 흐름을 탄 면도 있지만 그러나 그 중심은 한민족의 독립역량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 역사의 면면을 보면 암울했던 시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은 민족의 DNA가 있다. 어려운 시절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도전으로 “할 수 있다.”, “해야 된다.”는 열정을 가지고 온갖 시련을 극복해 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20세기 한 편린만 보고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평가하는 잣대로만 삼을 수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나라를 빼앗기는 가장 큰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낸 민족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깊이 겸허하게 성찰해야 통일의 길도 바람 직하게 열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복 70주년에 다시 한 번 민족의 저력을 새겨 보아야 한다
첫째,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의 경험이 있었다.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하였다. 독일 통일의 경험도 우리에게 큰 참고가 되겠지만 한반도에서 최초로 이루어졌던 신라의 삼국통일의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오래된 미래라고 그 통일의 과정에서 수놓았던 이야기들 속에서 교훈과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신라 27대 임금으로 632년에 즉위하여 통일의 길을 넓고 단단하게 닦은 선덕여왕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인재등용의 혜안이 남달랐다. 김유신, 김춘추 같은 통일의 역군을 발탁하여 애국단체, 전사단체요, 교육 단체인 화랑도를 통솔하게 함으로써 고구려, 백제 와의 통일전쟁 각축전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였다. 외교력도 뛰어나 주변의 정세와 정보를 면밀히 파악하여 “무기보다 무서운 것은 분열”이라는 깨달음 속에 이루었던 화합의 자세를 백성들과 함께 다져 나갔다. 백성들의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양 최초의 천문기구인 첨성대와 거대한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민생과 안보를 상징하는 문화 창조의 지혜로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이와 같이 선덕여왕이 보여준 통일 리더십은 앞으로 이루어 낼 통일의 길에 나침반의 역할을 할 것 이다.
한말 일본의 야욕과 침탈에 맞서 무력 투쟁한 의병운동은 1894년 갑오의병을 시작으로 1895~1896년 을미의병, 1904~1907년 을사·정미의병, 1910년 국권 상실이후 의병운동까지 25여년 전개됐다. 한말의병전쟁 연구나 의병운동사 기술에 있어서 여성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문헌자료가 절대적으로 빈약해 여성의 의병활동에 대한 실체 파악이 어려워 의병투쟁은 여성과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강원여성의 의병활동상이다. 윤희순이 작성한 의병가사와 격문, 자서전, 편지글이 담긴 『윤희순의병가사집』, 『고흥류씨 항재네해평윤씨 가정록 친서』 등과 윤희순의 숙모 함안이씨(1873~1954)의 편지글 「성재선생댁」은 한말 여성의 의병운동사를 입증하는 근거가 되고있다. 1981년 후손의 사료 공개로 뒤늦게 존재가 알려진 윤희순은 변복령과 단발령에 공분했던 남성과 달리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윤희순은 1895~1896년 을미의병 때 인근 여성들의 항일의지를 촉발해 「안사람 의병가」, 「병정노래」 등의 의병가사와 「왜놈대장 보거라」 등의 격문을 배포하는 선전 활동과 식량 의복 등 보급품을 조달했다.
통일은 남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서로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그 속도와 방향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 신(젊은) 세대와 구세대 등의 젠더 및 세대간 갈등의 표출로 특히 북한가족의 이산이나 해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결혼 및 가족형성 양상에서는 가부장적 권위를 중요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북한 여성들이 남한 남성들에게 선호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으며, 북한 여성들은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는 남한 남성과의 결혼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통일한국에서의 주류 사회 형성과 하위 계층간의 양극화 현상이 일정 정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유념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김규륜 외, 2012:93).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의 지역 이동은 남북한 주민의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피한 상황을 낳는다. 남북한 출신 주민이 접촉하고 생활공동체를 영유하는 과정에서 남북한 주민 사이의 가치관 충돌, 새로운 가치관과 과거의 가치관의 충돌이 야기될 것이다. 북한은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어(종래 ‘11년제 의무교육’에서 2012년 9월 25일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으로 결정) 전체적으로 문해력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대학 이상의 고학력 비중은 대학진학률을 볼 때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사회보장의 차원에서 통일 이후의 여성 관련 법이나 정책들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젠더 불평등이 가속화될 수 있다. 통일 및 통합 비용으로 인해 여성복지정책이 축소되거나 과거 북한 사회가 보장했던 다양한 여성 및 보육 정책들이 폐기 될 경우 여성들의 삶의 질은 현격히 저하될 것이다. 더욱이 여성에 대한 정책은 일자리와도 밀접하게 관련성이 있는 바, 정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여성은 노동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고 여성 스스로 일자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단적으로,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진보적인 동독의 여성 관련 법이나 정책들이 폐기되기 시작했고,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되면서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정현백, 2005:48). 이러한 과정에서 남북한 여성 간의 갈등 또한 중요한 이슈이다. 독일의 경우 동독과 서독 여성 사이의 갈등, 자본주의 진영의 여성과 구사회주의 진영의 여성 사이의 갈등이 있었던 바를 고려하면 남북한 여성간 갈등은 노동, 교육, 정치 영역 등에서 나타날 수 있다. 여성의식이 높아가는 남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북한여성 사이의 의식 격차는 평등과 폭력에 대한 인식 차이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러한 사례들이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독일의 사례를 통해 볼 때, 통일 이후 여성 관련 법이나 정책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독일의 통일 사례를 바탕으로 여성 관련 정책 부재가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독일의 통일 이후 여성 정책 변화와 그에 따른 영향을 추출한다.
-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진보적인 동독의 여성 관련 법이나 정책들이 폐기되기 시작했고
-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되면서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독일 사례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정책 폐기 내용과 그 결과인 삶의 질 저하를 근거로 선택한다.
-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
-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진보적인 여성 관련 법과 보육 지원, 가사휴가제도 등이 폐기됨으로써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되면서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독일의 사례는 여성 관련 정책이 폐기될 경우 여성의 삶의 질이 저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독일의 사례를 근거로 답변을 작성한다.
-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되면서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
근거 (evidence)
-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진보적인 동독의 여성 관련 법이나 정책들이 폐기되기 시작했고
-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되면서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
-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 등의 폐기
-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졌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보육시설 및 유치원에 대한 국가보조금, 가사휴가제도와 같은 진보적인 여성 관련 법이나 정책들이 폐기되었으며, 이로 인해 구동독 여성의 삶이 열악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