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농담도 있다지만, 명품 선호 탓에 ‘웃픈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명품이 뭐기에 타국의 위기 상황조차 쇼핑 기회로 삼아 장만하려는 것일까. 명품 소비는 과거 유럽 귀족사회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일반인에게로, 비유럽으로 퍼져나가며 세계적 현상이 됐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의 명품 사랑은 유명하다.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아시아인을 상대로 타깃 마케팅을 펼칠 정도다. 라다 차다와 폴 허즈번드는 2007년 출간된 「럭스플로전」이라는 책에서 아시아인의 명품 열광의 이면을 분석한 바 있다. 브랜드 기업이 자사 제품에 대해 어떻게 ‘신분 상징’의 기능을 과장하고, 마케팅하면서 열렬한 명품 추종자 계층을 형성시키는지 그 내막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특히 한·중·일 3국의 미묘한 소비 심리 차이를 분석했다. 중국은 명품 브랜드가 소비자의 경제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된다는 이유로, 일본은 왕따 당하기 싫어하는 동조 의식 탓에, 한국은 타인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으로 인해 명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명품에 대한 열광의 이면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설파한 ‘구별짓기’가 작동한다.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명품은 계층 상승감을 안겨 주는 ‘경제적 신분증명서’가 됐다. 몽블랑 만년필, 샤넬 백, 페라가모 구두, 에르메스 스카프는 타인과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차별화시켜주는 시각적 심벌인 셈이다. 과시적 소비는 스스로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유한계급임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증명 수단이라고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중년 여성 모임에서 남편이 명품 가방을 사 줬네 안 사줬네가 이슈가 된다.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사기에는 무리인 직장 초년생은 물론 돈을 벌지 않는 여대생도 신용카드를 긁어서라도 100만원 대 명품 가방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요즘에는 명품 구매 여성 연령층이 낮아지고 남성들도 구매 대열에 합류함에 따라 해외 명품이 지난 4년간 매년 5∼18%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열광만큼 짝퉁 수요도 증가하는 것 같다. 2017년 기준으로 지난 5년간 관세청에서 적발한 ‘짝퉁’ 제품의 금액이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명품에 대한 열망은 현대의 산물일까. 절제와 겸양의 유교적 덕목이 강조되던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200여 년을 거슬러 18∼19세기 한양의 으리으리한 양반집 사랑채 풍경을 들여다본다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시 풍경이 펼쳐져 깜짝 놀랄 것이다. 수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 수백만 원짜리 프랑스 와인과 까르띠에 시계 대신에 조선시대 부잣집 양반들이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사고자 했던 품목들은 따로 있다. 거의가 조선이 사대했던 ‘선진국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었다. 고가의 서화와 골동품,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가 그런 사치품목에 해당했다. 떵떵거리며 사는 부잣집에서는 안견, 김시 같은 조선의 유명 서화가나 중국 북경에서 비싼 값에 구한 당송과 명청의 명화를 걸어두고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돼 버렸다.
양반층은 물론 중인층에까지 몰아쳤던 서화골동품 수집과 감상 열기의 이면에는 소비를 통한 과시의 욕망이 숨어 있었다. 필자는 조선시대를 관통한 서화 골동품 수집 문화를 졸저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영조 때 사람인 상고당 김광수(金光遂, 1699∼1770)는 그런 수집 열풍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두 형제 모두 판서와 군수를 지내는 등 벼슬을 했다. 유독 둘째인 그만은 진사시(예비 과거)에 합격했음에도 대과를 보지 않고 한량처럼 지내며 수집취미에 빠졌다. 중국에서 수입된 고대의 비석이나 종정(鍾鼎: 종과 솥)을 소장했고, 고가의 서화와 희귀한 서적을 수집했으며, 비싼 향을 피우고, 우전차(雨前茶)를 달여 마셨다. 대체로 중국 상류사회에서 즐기는 것들이었다. 그는 골동과 서화로서 아주 잘된 작품을 만나면 전답과 집을 계속 팔아서라도 구입했기에 가산을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남들의 비난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미 눈이 어두워졌다. 평생 눈으로 보았던 것이 이제 입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호기를 부렸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그런 그에 대해 과시적인 컬렉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의 예로 실명을 거론하며 야유를 보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허례허식은 상류층 문화의 모방에서 기인한다. 서화골동품 수장 및 감상은 한양에서 대대로 벼슬을 하며 살았던 이른바 ‘경화세족’ 가문에서나 가능했던 양반 문화다. 이는 하위 계층의 모방심리를 낳으며 조선 후기로 가면서는 부유한 중인층과 서민층에까지 번졌다. 보는 눈이 없는 졸부들의 허영을 노린 위조품이 판치기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 컬렉터 이하곤(李夏坤, 1677∼1724)에 따르면 수입된 중국 남송대 화가 마원의 그림 가운데 태반이 가짜였다. 지적 허영으로 패가망신한 사례는 조선 순조 때 문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당대의 풍속과 인물에 대해 쓴 문집 『추재기이(秋齋紀異)』 속 손 노인의 이야기가 잘 보여준다. 손 노인은 한양에 사는 부자였다. 골동품이라면 사족을 못 썼으나 보는 안목이 없었다. 당연히 그에게 가짜 물건을 가져다주고 비싼 값을 받아 챙기는 거간꾼이 많았다. 결국 손 노인은 그 많은 재산을 거덜 내고 거지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손 노인은 속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국 한나라 시대 자기에 비싼 차를 달여 마시면서 “이것만으로도 굶주림과 추위를 몰아낼 수 있다”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조선왕릉,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백제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산사. 이곳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이사장 이상해는 1995년부터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사람이다. 신청서를 쓰고 심사를 받아 등재시키기까지, 20여 년을 이 일에 매진했다. 건축학자로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젊은 건축학도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건축가가 되도록 가르쳤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을 역임한 적도 있다. 이렇게 그의 70년 삶은 툭툭 끊어진다. 굵직하게 나뉘는 여러 가지 일들이 툭툭 시간 순서대로 배열된 듯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하나의 맥으로 고르게 이어진다. 건축학자로서 자신이 태어난 땅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평생을 바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들이 응집되어 지금의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로 모여들었다. 이곳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통건축 부재와 재료를 수집해 보존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문화재청 산하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처음 이사장직을 제의 받았을 때 무척 고민했어요. 사실은 문화재 위원장을 끝으로 이제는 좀 앉아서 개인적인 학술 연구를 해야겠다고 작심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센터를 맡아달라는 거예요. 이게 처음 시작하는 거니까. 첫 발을 잘 디뎌야한다는 부담감에 고민을 많이 하다가, 도움 줄 일이 있을 것 같아서 하기로 결정했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는 2017년 12월 준공식을 가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한 것이 바로 숭례문 화재로 인해 쏟아져 나왔던 피해부재의 이관이었다. 화재 이후 훼손된 자재만도 3,357개로 엄청났지만, 그것들을 한꺼번에 안전히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처럼 오래된 건축물에서 나온 부재의 관리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숭례문 부재는 임시방편으로 경복궁 한편에 보관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그대로 둘 수만은 없는 노릇. 그래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의 건립은 순조롭게 추진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숭례문 화재가 센터 설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결정적 계기가 되어준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조선시대 부잣집 양반들이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구매했던 사치품목 중,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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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구매한 사치품 중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 아닌 품목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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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이 구매했던 사치품목과 그 출처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거의가 조선이 사대했던 ‘선진국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었다.
- 고가의 서화와 골동품,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가 그런 사치품목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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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문맥에는 조선시대 사치품이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품목(서화, 골동품, 벼루, 연적)들이 언급되어 있으나 이들 중 무엇이 중국산이 아닌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 거의가 조선이 사대했던 ‘선진국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었다.
- 고가의 서화와 골동품,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가 그런 사치품목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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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문맥은 사치품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왔다고 설명하며 예시로 서화, 골동품, 벼루, 연적을 들고 있다. 하지만 제시된 예시 품목들이 각각 중국산인지 아니면 조선 자체 생산품인지에 대한 개별적인 구분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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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 아닌 품목'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각 품목의 원산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문맥은 품목의 종류와 '대부분 중국산'이라는 경향성만 언급할 뿐 개별 품목의 출처를 확정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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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문맥의 정보만으로는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거의가 조선이 사대했던 ‘선진국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었다.
- 고가의 서화와 골동품,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가 그런 사치품목에 해당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사치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설명하며 서화, 골동품, 벼루, 연적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제시된 품목 중 어떤 것이 중국산이 아닌지에 대한 개별적인 정보는 누락되어 있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