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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집 제3권 하 2019 11 1 ~ 2020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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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대통령비서실
발행연도
2020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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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오늘은 4·19혁명 60주년입니다. 목숨보다 뜨거운 열망으로 우리의 가슴 깊이 민주주의를 심었던 날입니다. 우리는 독재에 맞선 치열한 저항으로 함께하면 정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민주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뜨거웠던 그날 이후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진달래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 간 영혼들을 기억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는 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멈출 수 없는 희망이 자랐습니다. 4·19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혁명이 아닙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먼저 독재타도를 외치며 정의의 횃불을 들었습니다. 3월 8일, 대전의 학생들이 민주와 자유의 깃발로 호응했고, 기어코 3·15부정선거가 자행되자 마산의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3·15의거의 불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4월 19일, 서울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독재타도에 나섰습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100년, 조선일보의 지면에는 대한민국 영욕의 역사가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우리의 영광과 치욕, 애환과 분노가 매일 아침 조선일보와 함께했습니다. 3·1독립운동으로 상승한 민족의 기운에 힘입어 1920년 조선일보가 ‘신문명 진보주의’를 표방하며 창간되었습니다. 창간한 해부터 모두 네 차례 정간을 겪을 정도로 조선일보는 반일 민족주의에 앞장섰고,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기치를 세웠습니다. 1927년에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최대 항일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결성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 소설가 현진건, 염상섭, 심훈, 시인 김기림, 백석, 이육사 등 당대에 손꼽던 문인들과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습니다. 또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만해 한용운의 <흑풍> 등 최고의 문학 작품들을 연재하며 겨레의 울분을 달래 주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조선일보는 국민 곁에 있었습니다. 1995년에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으로 정보통신 강국의 미래를 준비했고, 외환 위기를 맞은 1998년 ‘다시 뛰자’ 캠페인으로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 여러분, 임직원 여러분! 조선일보의 영향은 매우 크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을 위한 역할입니다. 국민통합에 앞장설 때 조선일보는 가장 빛났습니다. 100년 전 선조들이 3·1독립운동으로 힘을 모아 불의와 억압에 맞섰던 것처럼 지금 온 국민이 코로나19 극복에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의 시민들, 각계각층 남녀노소 모두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희망과 용기를 키워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위기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될 때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방역진과 의료진, 공감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국민을 격려하고 분열을 막아내는 데 조선일보가 앞장서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100년 언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입니다. 한 세기 동안 국민 곁을 지켜온 조선일보가 공정한 언론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세기를 열어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정신을 되새겨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임시헌장이 천명한 민주공화제를 진정으로 구현하고, ‘완전 평등’을 온전히 이루고 있는 것일까요? 또 다른 특권의 정치가 이어지고, 번영 속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 또 다른 신분과 차별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 겸허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반성 위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의 길도 명확합니다. 함께 이룬 만큼 함께 잘사는 것이고 공정과 자유, 평등을 바탕으로 함께 번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기념사업추진위원 여러분!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되새기는 데 많은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아이디어를 국민 속에서 모아 주셨고, 새로운 100년의 청사진을 그려 주셨습니다. <쉽게 읽는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기념음악을 만들어 남녀노소 누구나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고, ‘낭독하라 1919!’ 같은 사업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2월 26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함께 잘사는 나라’에 대한 책무와 각오를 되새겼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훈격을 높여 새롭게 포상한 데 이어 역대 최고 수준인 647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했습니다. 여성 독립유공자 발굴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2017년까지 여성 독립유공자는 299명, 전체 유공자의 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60명, 올해 113명을 발굴·포상해 독립운동에 바친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이 정당하게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계봉우 지사와 황운정 지사를 비롯해 해외독립유공자 다섯 분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신 일도 매우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에도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지난 3월 중국 충칭의 한국광복군총사령부를 복원했고, 하얼빈역 안중근의사기념관도 재개관했습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 기념관 조성과 기념비 건립, 일본 도쿄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의 재개관도 마쳤습니다. 경북 안동의 석주 이상룡 선생 기념관 건립과 임청각 복원도 2025년 완료를 목표로 지방자치단체와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해가 저무는 성탄절입니다. 100년 전 예수님은 우리 곁으로 오셔서 평등한 마음을 나눠 주셨고, 독립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자각한 국민에 의해 뿌리내린 민주공화국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식민지배를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928년 성탄절 기간 서울 명동에 처음으로 등장해 가난한 이웃에게 쌀과 장작을 장만해 주었습니다. 결핵환자를 돕는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은 1932년 캐나다 선교사 셔우드 홀의 주도로 처음으로 발행되어 오래도록 희망을 나눴습니다. 성탄절은 언제나 서로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깨워줍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 낮은 곳으로 오셔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함께 잘사는 나라’는 따뜻하게 서로의 손을 잡는 성탄절의 마음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오늘도 곳곳에서 묵묵히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 국민이 되찾고 지켜낸 민주공화국이기에 우리는 그 이름에서 가슴 뜨거움을 느낍니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우리가 들었던 촛불만큼이나 뜨겁습니다. 우리가 지난해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특별히 기념한 것은 그 정신이 그대로 민주공화국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은 상생으로 더 확장되고 튼튼해집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함께 잘살 수 있을 때 국민주권은 더 강해지고, 진정한 국민통합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세계 정세는 여전히 격변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제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보호무역주의와 기술패권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더 통합적이고 협력적인 사회가 되어야만 경쟁에서 이겨내고 계속 발전해갈 수 있습니다. 극단주의는 배격되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이해하며 손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부터 더 노력하겠습니다. 확실한 변화를 통한 상생도약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더 자주 국민과 소통하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애벌레에서 나비로 탄생하는 힘겨운 탈피의 과정일 것입니다. 지난 2년 반,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던 문인들 중 김기림과 백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학 작품을 연재했는지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 문인인 김기림과 백석이 연재한 구체적인 문학 작품의 명칭을 요구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한 문인들의 명단과 연재된 문학 작품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이 시기 소설가 현진건, 염상섭, 심훈, 시인 김기림, 백석, 이육사 등 당대에 손꼽던 문인들과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습니다.
    • 또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만해 한용운의 <흑풍> 등 최고의 문학 작품들을 연재하며 겨레의 울분을 달래 주었습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김기림과 백석이 기자였다는 사실과 특정 작품(<임꺽정>, <흑풍>)이 연재되었다는 사실은 확인되나, 해당 작품들이 김기림이나 백석의 작품인지에 대한 연결 정보가 없다.

    • 시인 김기림, 백석, 이육사 등 당대에 손꼽던 문인들과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습니다.
    • 또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만해 한용운의 <흑풍> 등 최고의 문학 작품들을 연재하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은 기자로 활동한 인물 그룹과 연재된 작품 그룹을 각각 나열하고 있을 뿐, 인물과 작품 간의 1:1 대응 관계를 명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김기림과 백석이 어떤 작품을 연재했는지는 문맥을 결합해도 알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김기림과 백석의 연재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문맥에 존재하지 않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음을 최종 답변으로 결정한다.

근거 (evidence)
  • 이 시기 소설가 현진건, 염상섭, 심훈, 시인 김기림, 백석, 이육사 등 당대에 손꼽던 문인들과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습니다.
  • 또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만해 한용운의 <흑풍> 등 최고의 문학 작품들을 연재하며 겨레의 울분을 달래 주었습니다.
  • 시인 김기림, 백석, 이육사 등 당대에 손꼽던 문인들과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습니다.
  • 또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만해 한용운의 <흑풍> 등 최고의 문학 작품들을 연재하며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김기림과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다는 사실과 <임꺽정>, <흑풍> 등의 작품이 연재되었다는 사실이 각각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특정 인물이 어떤 작품을 연재했는지에 대한 연결 정보가 누락되어 있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식을 통한 추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