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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과 협력coopetition의 혁신전략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구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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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0216054732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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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발행연도
2016
KDC
32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LG전자는 기술도입을 최소화하면서 자체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987년 우면동 종합기술원 당시에 10명으로 시작한 LCD 관련 연구개발조직은 안양연구소 시절을 거쳐 2008년 현재 파주연구소에 550명, 구미연구소에 180명에 각각 이를 정도로 확대되었다. 특히 초기 연구개발 멤버들의 역할은 대량생산체제 이후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할 만큼 이들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LCD 사업 성장에 도움이 컸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당시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일본기업들의 투자가 주춤한 틈을 노려 1995년 TFT-LCD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특히 LG전자는 구미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갔으며, 이후 1997년에는 구미공장 증설과 더불어 노트북용 TFT-LCD를 생산하게 된다. 당시 LCD 패널은 급속도로 팽창하는 시장수요 때문에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었고, 이에 따라 적기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호황을 맞게 된다. 1998년 삼성전자가 LCD 패널 세계 1위로 등극한 다음 해인 1999년 LG전자가 2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LG전자가 글로벌 디스플레이업체로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1999년 이후부터이다. LG전자는 업계 2위로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입장에서 이를 반전시킬 계기를 찾게 되는데, 바로 세계적인 전자회사인 Philips사 합작법인인 LG-Philips LCD를 설립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동안 LG전자는 자체적인 연구개발로 핵심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지만, 세계시장에서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계기가 필요하였다. 특히 이 무렵부터 LCD 패널은 TV의 주력 아키텍처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으며, PC용 모니터와 노트북, 휴대폰 등에서도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LG전자는 삼성전자와 본격적인 ‘세대 경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양사의 치열한 세대 경쟁은 타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즉, TFT-LCD 분야에서 가격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핵심기술인 대면적화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경쟁구도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이전 세대 패널의 장변(長邊)보다 다음 세대 패널의 단변(短邊) 길이가 길 경우, 패널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패널의 세대교체는 동일공정으로 한 번에 제조 가능한 패널 수가 증가함을 의미한다. 분석에서 특히 일본기업들 간의 협력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본기업들 간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자원보완성이 높은 영역에 위치하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즉, 서로의 역량을 보완할 수 있는 상대방을 탐색하여 전자업체들 간의 수평적 협력이 이루어졌다고 진단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기업들이 LCD를 중심으로 일본기업들이 선점하고 있었던 LCD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특히, 제 3세대 LCD 생산라인 투자를 일본이 유보하고 있는 사이에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였다. 또한, 2002년의 제 5세대 생산라인 투자를 LG가 주도하면서 결국 2000년대 중반에는 대형 LCD 뿐만 아니라 중소형 LCD 시장까지 한국기업들이 선도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불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46인치 LCD TV를 시판하고(2004년) 바로 다음 해에는 세계 최대 크기인 82인치 TFT-LCD 패널 개발에 성공하였다(2005년). 2006년에는 와인잔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출시한 ‘보로도 TV’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됨(배일영, 2014)으로써 2000년대 중반에는 한국이 일본 업체들을 완전히 따돌리는 형국이 된다. LG전자(혹은 LPL)가 디스플레이산업에서 새롭게 혁신경로를 탐색하는 전략은 디스플레이의 또 다른 아키텍처 개발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CRT에서 LCD로 디스플레이 아키텍처가 전환될 때, 느긋하게 대응한 미국 전자 기업들과 대규모 설비 투자에서 우리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 전자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이다. 특히 TV시장에서 LCD와 더불어 급부상한 PDP는 대형TV 시장에서 LCD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PDP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PDP 개발은 1987년 삼성전관 (삼성SDI의 전신)과 대우전자 계열의 오리온전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평판TV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고 일본업체들을 중심으로 대형TV에서 PDP패널 채용이 확대됨에 따라 LG전자도 199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 당시 마쓰시타, 후지쯔, 히타치, NEC, 파이오니아 등 일본업체들은 LCD산업 주도권을 우리나라에 뺏긴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곧 과잉투자에 의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틈을 타 시장진입에 성공함으로써 PDP시장의 주도권을 우리나라에 뺏기게 되었다. 즉, 일본기업들이 2000년에 PDP패널 양산을 시작할 때, PDP패널 설계 방식에 따라 너무 다양한 생산라인을 구축한 반면, LG전자와 삼성전자는 단일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양산에 들어감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2004년부터는 LG전자와 삼성전자의 PDP 매출 합계가 일본보다 앞서기 시작하였으며, 일본 마쓰시타와 3각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고 나머지 일본기업들은 뒤처지게 되었다. LG전자는 PDP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치열한 국내외 경쟁을 벌이는데 여기에는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을 누가 먼저 양산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그 전까지 LG전자와 삼성전자가 PDP 라인증설 순서에 따라 몇 달 만에 업계 순위가 바뀌었으나, 삼성전자는 이 다면취공법을 양산에 적용하면서 LG전자를 앞서 나가기 시작하였다. LG전자는 3기 라인에서야 다면취공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양 사와 마쓰시타와의 3각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90년대의 디스플레이 산업 정책의 목표는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일본을 추격하는 것이었다. 당시, 기술선진국들(미국, 일본 등)은 신흥공업국이었던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첨단기술 이전을 기피하였다. 이에 정부는 국내 기업의 기술적 종속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여 “첨단산업 발전기반 조성을 위한 임시조치법”에 의거해 고기술, 고생산성, 고부가가치 등 첨단산업육성을 위한 「첨단산 업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1988년, 산업부(당시 상공부)에 ‘첨단산업 발전심의회’를 설치해 산하에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메카트로닉스, 신소재, 정밀화학, 생물 산업, 광산업 및 항공 산업 등 7개 분야별 분과위원회와 총괄분과위를 구성하였다. 이후 학계, 연구기관, 산업계, 관계부처 등 총 160명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약 70여회의 의회와 8회의 공청회를 거쳐 우리나라 첨단산업발전에 대한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종합육성체제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과기처의 「첨단기술개발기본계획」과 상공부의 「첨단산업발전5개년계획」은 부처 간 중복 등의 문제로 사실상 백지화 되었다. 1990년대의 기술개발정책은 우리나라가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선도기술개발사업을 통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1994년 고선명 디지털 TV가, 1996년에는 대형 PDP TV가 개발됐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1993년 64MB D램이, 이듬해 1994년 256MB D램이 차례로 개발되어 세계 정상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정보통신분야는 산·학·연 공동개발을 통해 세계최초로 C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해 이동통신 분야의 세계 선도국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차세대 평판 표시장치 기반기술 개발 사업 역시 세계 최초로 초대형 TFT-LCD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이 사업에서는 고품위 TFT-LCD 개발, 풀컬러 PDP 개발 등 당시 도전적 과제를 수행하여 화질, 성능 측면에서 목표를 초과하는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의 비약적 발전들로 인해 이전 기술개발 사업들은 후속과제 및 신규사업으로 이어졌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LG전자가 PDP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할 때, 업계 순위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핵심기술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LG전자의 PDP 분야 경쟁 상황과 순위 변동의 핵심 요인이 된 기술을 찾는 것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PDP 분야의 경쟁 양상과 기술적 관건에 대한 내용을 추출한다.

    • LG전자는 PDP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치열한 국내외 경쟁을 벌이는데
    • 여기에는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을 누가 먼저 양산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순위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핵심기술 명칭을 선택한다.

    •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을 누가 먼저 양산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 그 전까지 LG전자와 삼성전자가 PDP 라인증설 순서에 따라 몇 달 만에 업계 순위가 바뀌었으나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삼성전자가 해당 기술을 먼저 적용하여 LG전자를 앞서 나갔으며, 이 기술이 순위 변동의 관건임을 파악한다.

    • 삼성전자는 이 다면취공법을 양산에 적용하면서 LG전자를 앞서 나가기 시작하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서 요구하는 핵심기술의 명칭은 '다면취공법'임을 도출한다.

    •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기술 명칭을 바탕으로 최종 답안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LG전자는 PDP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치열한 국내외 경쟁을 벌이는데
  • 여기에는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을 누가 먼저 양산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을 누가 먼저 양산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 그 전까지 LG전자와 삼성전자가 PDP 라인증설 순서에 따라 몇 달 만에 업계 순위가 바뀌었으나
  • 삼성전자는 이 다면취공법을 양산에 적용하면서 LG전자를 앞서 나가기 시작하였다.
  • 핵심기술인 ‘다면취공법’
최종 답변 (final_answer)
다면취공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