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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교육적 서술방식: ‘분석의 방식’과 ‘종합의 방식’을 중심으로 document_id A22051702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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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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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데카르트에 따르면 증명방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분석의 방식’에 의한 것이 고, 다른 하나는 ‘종합의 방식’, 즉 ‘기하학적 방식’에 의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성찰을 분석 의 방식에 따라 서술했다. 분석의 방식을 통해 서술된 글이야말로 독자들을 배움의 길로 인 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메르센 신부와 그의 지인들은 기하학적 방식이 갖 는 교육적 측면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데카르트에게 성찰을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다시 서술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대한 답변에서 데카르트는 ‘영혼과 신체의 구분을 증명하 는 논증’을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서술해서 첨부한다. 그렇다면 분석의 방식과 종합의 방식에 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 글에서 우리는 먼저 성찰과 두 번째 반박에 대한 답변 을 중심으로 분석의 방식과 종합의 방식의 교육적 측면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적 서술방식은 사유와 서술방식의 필연적인 관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추후의 연구를 위한 예비적 작업으로서, 데카르 트와는 달리 스피노자에게서는 종합의 방식이 참된 교육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간략히 제시할 것이다. 기하학적 방식, 즉 종합의 방식에 따라 서술된 내용은 제1개념에 대한 긍정을 대전제로 요구한다. 그러나 “진리를 거부하려는 싸움을 위해 채비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근거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진리를 납득시키는 근거들에 대한 고찰을 멀리하기 때문에, 진리를 지각하기에 부적합하게 자신을 만든다”. 따라서 종합의 방식으로 성찰의 귀결들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독자들은 성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 귀결들과 곧바로 대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석의 방식을 통해 제1개념이 명석 판명하게 인식될 때, 종합의 방식에 따라 서술된 내용은 비로소 독자들에게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있다. 그리하여 제1개념을 그 자체로 명석 판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면, 기하학적 방식은 메르센 신부와 그의 지인들이 말한 것처럼 유용한 교육적 서술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분석의 방식에 따라 서술된 성찰의 안내에 따라 직접 성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데카르트에게 분석의 방식은 “독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 커다란 유용함을” 주는 교육적 서술방식이다. 분명 주의를 기울이고 순서에 따라 진리를 찾는 사람일지라도 성찰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각각의 부분들을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기하학적 방식을 통해 전체와 부분을 정리해 놓으면 성찰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종합의 방식이 유용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영혼과 신체의 구분을 논증한 이유는 성찰을 이미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에게 성찰의 내용을 간략하고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종합의 방식은 “한편으로는 간단히 하고자 함”이다. 또한 데카르트가 보기에 인간의 본성은 매우 나약하기 때문에, 성찰에 익숙한 독자라고할지라도 다양한 영향에 의해 다시금 혼동되고 불확실한 것들을 참된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종합의 방식으로 서술된 논증은 “성찰 그 자체에 대한 검토를 게을리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주 성찰의 내용을 확인하고 검토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그러나 종합의 방식이 갖는 간결성은 성찰자체의 검토를 등한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단점 역시 지니고 있다. 참된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자신이 믿고 있던 수많은 선입견들을 의심하고 검토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데카르트는 분석의 방식을 통해 성찰의 과정을 서술했다. 데카르트는 독자들에게 성찰의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찰의 과정을 따라오도록 하고자 했던 것이다. 분석의 방식은 기존의 편견들을 떨쳐버리고 명석 판명한 인식만이 참된 것임을 깨닫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 물론 분석의 방식으로 서술되었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며 읽지 않거나 끝내 적대감을 버리지 못한다면 별다른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데카르트는 독자들이 발견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단순히 명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명료히 증명하는 일만으로는 독자들을 자율적인 발견의 길에 들어서도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서술방식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 그치거나, 거부감을 불러와 잘못된 판단 속에서 오류를 진리로 믿게 만들 수 있다. 결국 데카르트에게 분석의 방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하나모든 것을 질문과 검토에 부치도록 이끌어 참된 배움을 줄 수 있는 반면, 종합의 방식, 즉 기하학적 방식은 성찰의 과정을 거친 이들에 게 성찰의 내용을 용이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적인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할 때, 데카르트의 교육적 서술방식은 곧 분석의 방식이다. 그런데 분석의 방식이 데카르트의 교육적 서술방식이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분석의 방식이 그의 사유에 가장 적합한 서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는 그만의 서술방식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교육적 글쓰기는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고자 최대한 노력할 때 가능하다. “글쓰기를 통한 의사소통이 교육적 글쓰기사태에 근접하려면, ‘의미와 글’ ‘필자가 아는 내용’과 ‘글쓰기를 통해 알리는 내용’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의미와 글쓰기의 차이를 줄이는 노력이란 사유가 그 자체로 요구하는 서술방식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자는 자신의 교육의 개념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서술방식으로 글을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데카르트는 자신의 사유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통해 서술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런데 교육적 서술방식이 사유와 서술방식 사이의 필연적 관련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데카르트가 단지 부가적인 교육적 효과를 줄 뿐이라고 주장했던 종합의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의 사유를 그 자체로 보여주는 서술방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종합의 방식이야말로 교육적 서술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추후의 연구를 위한 예비적 작업으로서, 사유와 서술방식의 관련에 따라 다양한 교육적 서술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와는 반대로 ‘종합의 방식’을 옹호한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에 관해 간략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그랬던 것보다 ‘기하학적 방법’을 더 깊이 신뢰했다. 그래서 심지어 데카르트가 쓴 철학의 원리의 핵심 부분을 개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그것을 기하학적 질서로 제시한다. 이는 자신이 가르치던 어떤 젊은이, 그리고 나아가 데카르트 철학을 공부하던 친구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어째서 데카르트와는 다르게 분석의 방식이 아니라 종합의 방식, 즉 기하학적 방식을 선택했던 것일까? 스피노자가 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로부터 토대를 찾아가는 분석의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변의 수많은 것들에 대한 회의를 통해 토대, 즉 원리를 찾아가는 일은 나의 이성과 이 세계를 만든 신의 이성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분석의 방식을 통할 때 참된 배움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있어 진정한 배움이란 신과 본성상 다르지 않은 방식의 사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분석의방식이 아니라 종합의 방식을 통해서 가능하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을 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신이라는 원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와 같은 기하학적 방식에 따른 서술만이 신이 사유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종합의 방식, 즉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윤리학을 저술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스피노자에게는 기하학적방식이야말로 교육적인 서술방식이다. 반면 데카르트의 이성은 사물의 궁극적 원인을 알수 없다. 그는 인간 이성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앎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의지성은 신의 지성의 일부이므로 세계 역시 자연이 생산되는 방식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서술된 텍스트를 읽을 때, 독자의 사유체계 역시 자연의 질서에 맞게 올바로 배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데카르트의 분석의 방식은 신과 나의 간격을 설정하며, 그리하여 신과 동일한 사유를 불가능한 것으로 막는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인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분석의 방식과 종합의 방식이 어떤 점에서 교육적 효과를 갖는지 살펴보았다. 이어서 사유와 서술방식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독특한 사유가 요청하는 서술방식을 통해 글을 쓰고자 노력할 때 가장 온전한 교육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데카르트의 분석의 방식은 자신의사유의 과정을 그 자체로 보여주며,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성찰의 과정에 들어서게 해서 참된 배움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데카르트의 분석의 방식은 훌륭한 교육적 서술방식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을 배움의 길로 이끌고자 한다면, 저자는 데카르트의 분석의 방식과 같은 자신만의 고유한 교육적 서술방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교육적 서술방식과 관련하여, 앞으로 우리는 데카르트 못지않게 사유와 서술방식의 일치를 실현한 사례로서 플라톤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글쓰기,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질서에 따른 글쓰기 등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데카르트가 '영혼과 신체의 구분을 증명하는 논증'을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서술하여 첨부한 목적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데카르트가 특정 논증을 기하학적 방식으로 서술하여 첨부한 구체적인 이유와 목적을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방식(종합의 방식)을 사용한 대상과 그 이유에 관한 문장을 추출한다.

    •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영혼과 신체의 구분을 논증한 이유는 성찰을 이미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에게 성찰의 내용을 간략하고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의 핵심인 '목적'에 해당하는 근거를 선별한다.

    • 성찰을 이미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에게 성찰의 내용을 간략하고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기하학적 방식의 특성인 '간결성'과 '도움'의 관계를 연결한다.

    • 종합의 방식은 “한편으로는 간단히 하고자 함”이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성찰을 이미 마친 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간략하고 쉽게 검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임을 도출한다.

    • 성찰을 이미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에게 성찰의 내용을 간략하고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근거를 바탕으로 목적을 명확히 기술한다.

    • 성찰을 이미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에게 성찰의 내용을 간략하고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성찰을 이미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에게 성찰의 내용을 간략하고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영혼과 신체의 구분을 논증한 것은 성찰을 충분히 검토한 독자들이 그 내용을 간략하고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