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색(李穡, 1328년 6월 17일(음력 5월 20일) ~ 1396년 6월 17일(음력 5월 20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며 유학자, 시인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성리학을 고려에 소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성리학을 새로운 사회의 개혁, 지향점으로 지목하였다.
찬성사(贊成使) 이곡(李穀)의 아들이며, 이제현의 제자로서 그의 문하에서 성리학자들은 다시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로 나뉘게 된다. 정도전, 유창 등의 스승이었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역성혁명에 협조하지 않았고 조선 개국 이후에도 출사하지 않았다. 그는 이종학의 아버지이고 박상충의 손윗처남이며 박은의 외숙부이고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heading>생애 >> 학문 연구 </heading>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났고 7세 때(1335, 충숙왕 복위4)부터 독서를 하기 시작했으며 아버지 이곡의 친구이자 안향, 백이정의 학문을 계승한 익제 이제현을 찾아가 정주학을 배웠다. 그의 학문은 이색으로 이어졌다. 정몽주, 정도전, 권근, 이숭인 등 고려 말의 대표적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물들이다., 같은 해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했다. 1353년(공민왕 2) 문과에 갑과(3등 이내)로 급제하였으며, 다시 정동행성 향시(鄕試)에 장원(1등)으로 합격되어 서장관에 임명된 뒤 원나라에 들어가 다시 문과에 급제, 한림 지제고(翰林知制誥)가 되었다.
귀국하여 내서사인에 올랐으며, 밀직제학 동지춘추관사가 되자 이로부터 국정에 참여하였다.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고, 정몽주·김구용 등과 명륜당에서 학문을 강론하니 이에 정주(程朱)의 성리학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이후 그는 권문세족의 전횡을 비판하여 공민왕의 개혁 정책에 적극 협력하였다. 또한 불교의 대안으로 성리학을 새로운 개혁의 비전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heading>관료 활동 </heading>
1371년(공민왕 20년) 정당문학이 되고 문충보절찬화공신(文忠保節贊化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다시 1373년(공민왕 22) 한산군(韓山君)에 피봉되었다가, 다시 1377년(우왕 3)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전제 개혁 논의에서 사전 혁파에 반대했는데, 이는 많은 토지를 보유한 계층으로서 이색의 한계이기도 했다. 우왕 폐위 이후 창왕 옹립에 앞장섰으며, 그를 계기로 공양왕 옹립 이후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 뒤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등이 폐가 입진(廢假立眞)을 명분으로 우왕을 폐위하자 그는 관직에서 물러났다.
공양왕 때 판문하 부사(判門下府使)가 되었고, 그 후 오사충(吳思忠)의 참소로 장단(長湍)을 거쳐 함안(咸安)에 귀양 갔으나 돌아와 다시 한산부원군에 피봉되어 예문춘추관사(藝文春秋館使)로 임명되었다. 귀양지 장단에서 선왕(공민왕)에 대한 그리움과 많은 문인들중 애제자(愛弟子) 유창에게 느낀 심정을 읊은 시가 목은시고권지35에 전한다.
그는 역성혁명파의 역성 혁명에 협력하지 않았지만, 그의 문인들은 혁명참여파와 절의파로 나뉘었다. 이 때문에 한 때 제자였던 정도전과 조준, 남은은 그의 정적으로 돌변한다. 이후 정도전은 그와 우현보, 정몽주에게 격렬한 논조로 비판을 가한다.
<heading>생애 후반 </heading>
1392년 4월 정몽주가 피살되자 연좌되었으나 정도전은 그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 다시 금천·여흥·장흥 등지로 유배된 뒤에 석방되었다.
조선 개국 후 태조는 그의 재능을 아껴 1395년(조선 태조 4) 한산백(韓山伯)으로 봉하여 예를 다하여 출사(出仕)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故山)에 파묻을 뿐이라 하였다.
<heading>이색이 등장한 작품 >> 가족 관계 >> 평가 </heading>
후에 서애(西厓) 류성룡은 삼국의 위(魏)의 벼슬을 받지 않았던 후한(後漢) 조의 양표(楊彪)에 비겼다. 문하에 유창, 권근, 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한편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었으며, 고려 말에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존재였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성리학자들은 어떤 두 부류로 나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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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이색의 제자들이 분류되는 구체적인 범주를 찾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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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이색의 문하와 관련된 인물 분류에 대한 문장을 탐색한다.
- 이제현의 제자로서 그의 문하에서 성리학자들은 다시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로 나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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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성리학자들이 나뉘는 두 가지 분류 명칭을 확인한다.
-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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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이색의 문하에 속한 성리학자들이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로 구분됨을 파악한다.
-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로 나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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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두 분류를 명시한다.
-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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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분류 명칭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
최종 답변 (final_answer)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성리학자들은 역성 혁명파와 절의파로 나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