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대진(李大振, 1974년 6월 9일 ~ )은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SSG 랜더스의 투수코치이다.
<heading>수 시절 >> [[해태 타이거즈]] 시절</heading>
1993년에 입단하였다. 데뷔 첫 해인 1993년에 두 자릿수 승(2구원승)을 거두며 마운드의 일원이 됐다. 1994년에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잠시 주춤했고 1995년에 방위 대체 복무를 하게 돼 홈 경기만 등판하며 14승(11선발승) 6패,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팀의 새로운 에이스 탄생을 알렸다. 방위 대체 복무를 마친 1996년에는 16승(9구원승) 8패, 2점대 평균자책점, 1997년에는 17승(모두 선발)(1위) 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팀의 마지막 에이스가 됐는데 1996년에는 해태가 선동열의 일본 진출, 박재홍 지명권을 현대에 넘겨준 대신 보상선수로 데려온 최상덕이 팔꿈치 부상 때문에 시즌 2패만 기록하여 같은 해 9월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대에 오르는 등 마운드가 부실해지자 전천후로 투입됐다. 1996년 한국시리즈,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등판한 4경기에서 3승 1패를 거두며 팀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었다. 1996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다. 1998년 5월 14일 현대전에서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을 세우며 완봉승을 거뒀다. 당시 시즌 우승 팀인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 타선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고 이 기록은 MLB에서 1970년 4월 22일 당시 뉴욕 메츠 소속이었던 톰 시버와 타이 기록이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2사 후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해 그의 기록을 막았다는 루머로 팬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이 루머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heading>[KIA 타이거즈]] 시절</heading>
2001년에 팀명이 변경됐고, 팀 내 광주진흥고 후배인 김상진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등번호였던 11번을 잠시 달았다. 1999년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재활로 시간을 오래 보냈고, 이 때 미국에서 어깨 수술을 받으며 익힌 영어가 수준급이어서 외국인 용병과 어렵지 않게 대화를 했고 2000년 마무리로 전업하여 8승(2선발승) 6패 13세이브를 거뒀는데 그 당시 해태는 이강철 (FA로 삼성 이적) 임창용 (1999년 삼성 이적)의 공백 뿐 아니라 연고지역 고교야구 팀 광주일고의 최고 투수이자 19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문제가 해결된 서재응 김병현이 스카우트 머니 부족 탓인지 대학을 거쳐 메이저리그 구단에 입단했으며 19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문제가 해결된 점 등 기껏 키워놓았던 마무리 임창용이 199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데다 선발 유망주 김상진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유망주 농사를 망쳤고 A급 유망주도 없었던 터라 믿을 만한 선수가 본인(이대진) 밖에 없어 2000년 김응룡 감독에 의해 혹사를 당했다. 한 때 타자로 전향해 2002년 LG 트윈스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3루타를 치는 등 활약이 있었으나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한 투수로 복귀했다. 이후에도 몇 년간 재활했고, 2007년 4월 7일 LG 트윈스전에서 선발 투수로 복귀해 6이닝 무실점으로 2003년 이후 약 4년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그리고 2009년 9월 1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통산 세 자릿수 승(당시 77선발승)을 달성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구원 등판해 2.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0년과 2011년 시즌에는 주전에서 밀렸고,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자 팀에 방출을 요청했다.
<heading>[LG 트윈스]] 시절</heading>
계약 양도를 신청해 이적했지만,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2012년 4월 14일에 친정 팀 KIA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그 날 3.1이닝 5피안타, 5사사구, 6실점(5자책)을 기록하고 조기 강판당하며 김기표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그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됐는데 이 경기는 선수로써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됐으며, 시즌 중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heading>구선수 은퇴 후</heading>
해태 타이거즈 시절 은사이자 당시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부름을 받아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며 코치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 친정 팀 KIA 타이거즈로 복귀해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이대진이 1998년 5월 14일 현대전에서 달성한 완봉승 기록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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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98년 5월 14일 이대진의 완봉승 기록이 왜 의미가 깊은지 그 이유를 파악한다.
- 1998년 5월 14일 현대전에서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을 세우며 완봉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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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기록의 구체적인 내용과 상대 팀의 상황을 추출한다.
- 당시 시즌 우승 팀인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 타선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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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기록의 가치를 높여주는 핵심 근거를 선별한다.
- 당시 시즌 우승 팀인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 타선을 상대로 세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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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상대 팀의 전력(시즌 우승 팀, 막강 타선)과 기록(10타자 연속 탈삼진, 완봉승)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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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상대 팀이 당시 시즌 우승 팀인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한 타선이었다는 점이 기록의 의미를 더함을 도출한다.
- 당시 시즌 우승 팀인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 타선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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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문맥에 근거하여 완성된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당시 시즌 우승 팀인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 타선을 상대로 세운 기록
최종 답변 (final_answer)
당시 시즌 우승 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막강한 타선을 상대로 10타자 연속 탈삼진을 포함한 완봉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이대진이 1998년 현대전에서 거둔 완봉승은 당시 시즌 우승 팀의 막강한 타선을 상대로 10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했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