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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아포리즘] 고종의 길, 망국의 길/서강대 교수(매체경영) document_id A220517030196

분류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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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당신은 고종의 재위 기간을 아시는가. 가끔 강의실에서 고종의 재위 기간을 물어보면 대부분 10년 안팎으로 답한다. 4~5년에서부터 길어야 10년 정도라는 것이다. 이해가 간다. 왕조가 망하던 격동기 군주를 감안한 대답일 것이다.\n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그는 무려 44년간 군주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스스로 자신의 오랜 재위 기간을 축하하는 기념비도 세웠다. 광화문 네거리 칭경비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격동기에 어떻게 오랜 세월 자리를 꿰차고 있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n답은 아주 간단하다.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종묘사직, 조선 민중의 안위, 행복은 관심 밖이었다. 자신이 지닌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 일본에, 때로는 중국에, 가끔은 러시아에 붙었다. 이런 부단한 노력 덕분에 44년간 왕 자리를 보전하게 된다. 조선왕조 500여년 중 영조, 숙종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n그에 대한 증언은 넘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잘한 것은 자신의 공으로, 잘못은 모두 남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자신에게 다산 정약용과 같은 충신이 없음을 개탄했다. 그래서 1883년(고종 20년) 어명으로 다산의 ‘여유당전서’를 정밀 필사케 했다. 그러나 다산을 높이 평가했지만 행동은 정반대였다. 평생을 현실감 없이 착각 속에서 살았다. 이는 망국 후 자결했던 매천 황헌의 ‘매천야록’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자신이 웅대한 지략과 불세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라고 기술돼 있다. 고종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을 몹시 부러워하면서도 권력을 잃는 입헌군주제는 원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극히 무능하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의 특권만 챙긴 인물이다.\n그런 고종을 빼어난 인물이라고 잊혀질 만하면 미화하는 주장도 있다. 식민사관이다. 격변기에 나름 잘 대응했다는 것이다. 망국의 책임도 고종에게 전가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당찮은 주장이다. 500년 왕조가 허망하게 망한 책임은 고종에게 있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실체적 진실이다. 같은 시기에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을 보면 답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고종과 메이지 일본왕은 같은 해 태어났지만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n오늘 덕수궁 뒷길을 걸으니 온갖 생각이 든다. 아관파천, 1896년 고종이 일제 감시를 피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갔던 길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길. 그는 그날 러시아에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구걸하기 위해 내달린 것이다. 그런 치욕의 길을 ‘고종의 길’로 조성해 떠들썩하게 미화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의도가 궁금하다. 고종의 저열한 권력집착증에 조선은 나아갈 방향조차 잃었다.\n광화문 네거리 칭경비는 고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인물인지를 증거해 준다. 1902년 자신의 즉위 40년을 축하하기 위해 세웠다. 당시 돈으로 100만원 들었다. 그해 국가예산이 800여만원이었으니 예산의 8분의1이 잔치 비용으로 들어간 것이다. 열강의 탐욕은 더해 가고 나라는 백척간두에 섰지만 고종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제국의 화려했던 마지막 잔치가 끝나고 3년 뒤 조선은 사실상 망했다(을사보호조약).\n어두운 비각 안에 웅크리고 있는 칭경비를 보면 한없는 분노를 느낀다. 무능한 지도자 탓에 망국의 선조들이 당한 고초를 생각하면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나는 서울시민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오늘 칭경비를 보면서 어리석고 우유부단한 지도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연민마저도 아끼고 싶은 심정이 든다.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고종의 길은 없다. 고종의 길은 망국의 길일 뿐이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고종이 조선의 안위나 민중의 행복보다 자신의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열강에 붙으며 44년간 왕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고종이 장기간 재위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원인과 행동 양식을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고종의 재위 기간과 그가 자리를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추출한다.

    • 그는 무려 44년간 군주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 자신이 지닌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 일본에, 때로는 중국에, 가끔은 러시아에 붙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장기 재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고종의 태도와 행동을 선별한다.

    • 답은 아주 간단하다.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지닌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 일본에, 때로는 중국에, 가끔은 러시아에 붙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고종이 국가적 대의보다 개인의 권력 유지를 우선시하며 외세에 의존했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그에게 종묘사직, 조선 민중의 안위, 행복은 관심 밖이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고종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부와 특권을 유지하고자 외세에 붙는 노력을 했음을 결론으로 도출한다.

    •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지닌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 일본에, 때로는 중국에, 가끔은 러시아에 붙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에 근거하여 서술형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지닌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 일본에, 때로는 중국에, 가끔은 러시아에 붙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고종은 종묘사직이나 조선 민중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신이 지닌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외세에 붙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44년간 왕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고종은 조선 민중의 안위보다 자신의 부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44년간 왕 자리를 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