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죽전동(竹田洞)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법정동이다. 죽전1동, 죽전2동, 죽전3동은 행정동이다. 옛 수지읍 죽전리로 수지읍사무소의 풍덕천동 동쪽에 위치하였다. 수지(水枝)는 예로부터 풍덕천리와 죽전리, 성복리의 성복천 물줄기가 합쳐진 풍덕천동과 죽전동, 성복동 수계(水系)들이 합수되어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을 이룬다.
이곳은 본래 용인군 수진면의 지역으로서 성복동에서 발원한 성복천이 죽전동 유역을 형성하고, 한강(漢江) 수계의 하구(河口)가 된다.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 부군면 통폐합(府郡面 統廢合)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풍덕천 감바위, 점촌, 풍덕내(풍덕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죽전리라 해서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령 제1983호에 의하여 다시 수지면으로 속하게 되어 복구되었다. 수지구청이 위치한 풍덕천동 수지택지지구가 개발된 이후 수지택지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 '용인죽전 지구단위계획'으로 "용인동천 지구단위계획' 동천동과 같이 개발되었으며 지상 경부고속도로가 풍덕천동과 죽전동을 구분하고 있다.
<heading>역사 >> 지명 유래 </heading>
본래 용인군 수진면(水眞面) 지역으로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竹田)이라 하였고 『1872년지방지도』에는 풍덕천장기(豊德川場基)라 하여 풍덕천이라는 명칭으로 감바위, 대지, 점촌이 처음 확인된다. 풍덕천의 감바위, 대지, 점촌, 풍덕내 일부를 죽전리(죽전동)로 전환하였다. 죽전리(죽전동)는 풍덕천(풍덕천동) 지역으로 포은 정몽주의 면례(緬禮) 행렬이 이어진 풍덕천(豊德川) 지역에서 음운변화를 일으켜 죽절(竹節)로부터 죽전(竹田)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풍덕천에서 대지(枝) · 감바위(玄岩) · 내대지(안대지말) 등 풍덕천동 일부를 죽전리라 해서 읍삼면(구성면)에 포함시켰다가 1973년 대한민국 대통령령(大統領令) 제1983호에 따라 다시 수지면으로 이속시켰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대지(大池)는 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마을에서 득세하였을 때 마을 앞에 큰 연못을 파고 대지라 부르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고기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풍수적인 소응을 관련짓는 속설이다. 또 다른 설로 모현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명칭인 돼지고개는 '큰 고개' 대치(大峙)의 변음으로 결국 대치(大峙)고개 아래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대지라 부른 것인데 대지(枝) 마을 앞에 있는 다리를 죽전교(竹田橋)라 부르는 것을 보면 오히려 대지는 죽전(竹田, 대나무 밭)의 한글 표기로 보인다. 『1898년지방지도』에도 죽전(竹田)이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이 명칭은 '풍덕천(豐德川)'의 지명으로 ‘죽절(竹節)'에서부터 불리게 되어 음운변화(音韻變化)가 일어난 것이다. 기록에는 삼남대로(三南大路)인 죽절(竹節)에 홀연히 명정이 날아올랐는데 이곳에 포은 정몽주의 면례가 왔던 곳이라 하여 풍덕(豐德), 풍덕래(豐德來) 또는 이장하는 도중 명정이 날아오른 곳에서 풍덕천(豊德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풍덕천의 이 마을은 어떤 식으로든 대나무와 관련되어 있다. 대나무하면 충절 · 절개를 상징하는데, 모현면 능원리에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의 묘소가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1411년 개풍군의 풍덕(豊德)에 있던 정몽주의 묘소를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하려 할 때, 포은 정몽주의 면례 행렬이 옛 수지읍 풍덕리에 이르자 면례 행렬 앞에 세웠던 명정이 바람에 날려 떨여졌고 사람들이 명정이 떨어진 곳을 쫓아가 주위 형세를 보니 명당자리라 하여 개풍군에 있던 포은의 무덤을 용인에 쓴 후, 포은 정몽주의 면례(緬禮) 행렬이 이어진 풍덕천(풍덕천동)의 지명을 죽절(죽전동)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의미하는 대나무를 떠올려 이 마을의 이름을 죽절(竹節) · 죽전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단국대학교의 앞 마을이 '성현마을'로 불리고 있어 무관하지 않은 유래이다.
<heading>연혁 >> 죽전1동 </heading>
죽전1동의 인구는 56,682명(2020년 8월 기준, 내국인)으로 용인시 전체 인구의 6.2%를 차지한다. 남자는 27,381명, 여자는 29,301명이며 세대수는 20,719세대이며 외국인은 622명이다.
죽전1동의 인구구조는 도시 지역의 특성이 나타나서 유소년 인구비율은 19.7%로 용인시 전체 18.3%보다 많으며, 노인인구비율은 9.3%로 용인시 전체 10.3%보다 적다.
<heading>죽전2동 </heading>
죽전2동의 인구는 18,449명(2020년 8월 기준, 내국인)으로 용인시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남자는 9,102명, 여자는 9,347명이며 세대수는 7,442세대이며 외국인은 74명이다.
죽전2동의 인구구조는 유소년인구비율이 16.1%, 노인인구비율이 9.0%이다.
<heading>죽전3동 >> 문화재 및 유적 </heading>
이곳 죽전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으로 선사유적과 백제유적,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고분군이 있고 고려청자를 비롯한 각종 도기를 굽던 가마터 즉, 요지 등이 있는데 특히 죽전동 선사유적은 세 곳에 분포되어 있어, 죽전택지개발지구 내 현대홈타운 건설부지 일원의 '선사유적1', 죽전동 898-2 일대의 '선사유적2', 죽전동 산7 일대의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선사유적1'은 조사자에 의해 일명 ‘대덕골 유적’으로 명명되었다.
‘대덕골 유적’으로 불리는 죽전동 선사유적은 2002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오리역 - 죽전역 간 복선 전철 건설공사 구간에 대한 지표 조사와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2003년 용인 지역 광역지표 조사 때 발굴되었다.
제일 먼저 발견되어 일명 ‘죽전동 대덕골 유적’으로 불리는 이곳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대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집터와 움집, 삼국시대 토광묘와 석곽묘, 조선시대 수혈유규와 분묘가 조사되었다.
학계에서 '죽전동 선사유적1'로 분류하는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와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의 경계를 이루는 구릉성 산지에서 남쪽으로 흘러나온 가지능선부에 해당하며 해발고도는 약 95m 내외이다.
시차를 두고 나중에 발견된 '죽전동 선사유적2'는 성남시에서 신갈동 방향으로 난 성남대로를 타고 용인시 죽전동에 들어서면, 도로 서편으로 의류할인매장이 위치하는데, 이 곳 뒤편의 민묘군이 들어선 작은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다.
새롭게 발견된 '죽전동 선사유적3'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용인시와 경계를 이루는 산지에서 남쪽으로 흘러나온 꽃무두리 라고 하는 작은 구릉지 상면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위치한 구릉 남쪽에 접해서 중앙하이츠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며 구릉 사면 일부는 절토되어 급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고 구릉지 일대는 현재 모두 밭으로 경작 중에 있다.
한강유역의 백제의 초기 주거지와도 연관되어 학계의 관심을 갖게 하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백제의 주거 유적지는 이곳에서 '죽전동 유적'으로 불리고 있다. 2003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실시한 죽전지구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주거지 2기 및 다수의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죽전동 요지'로 불리는 이곳의 요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도기 가마 터이다. 현재 극동 스타클래스 아파트의 뒤편에 일부 남아있는 '죽전동 요지1'은 죽전리 일대의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어, 2001년에 기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한편 2008년 10월 11일부터 해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 1,2동 주민들이 합동으로 탄천문화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문맥에서 원인이나 근거를 찾아 설명하라. 해당 인물, 기관, 장소, 대상 또는 개체명으로 제시하라. 문맥의 여러 부분에 분산된 정보를 함께 고려하라.
질문 (question)
죽전동의 지명이 '죽절(竹節)'에서 '죽전(竹田)'으로 불리게 된 배경과 관련된 인물은 누구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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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지명 변화(죽절→죽전)의 원인과 그 과정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을 찾는 질문이다.
- 죽전리(죽전동)는 풍덕천(풍덕천동) 지역으로 포은 정몽주의 면례(緬禮) 행렬이 이어진 풍덕천(豊德川) 지역에서 음운변화를 일으켜 죽절(竹節)로부터 죽전(竹田)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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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지명 유래 부분에서 '죽절'에서 '죽전'으로의 변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을 추출한다.
-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의미하는 대나무를 떠올려 이 마을의 이름을 죽절(竹節) · 죽전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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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지명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인물인 '포은 정몽주'를 특정한다.
- 포은 정몽주의 면례(緬禮) 행렬이 이어진 풍덕천(豊德川) 지역에서 음운변화를 일으켜 죽절(竹節)로부터 죽전(竹田)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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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정몽주의 면례 행렬이 지나간 곳의 지명이 음운 변화를 거쳐 죽절/죽전이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의미하는 대나무를 떠올려 이 마을의 이름을 죽절(竹節) · 죽전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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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지명 유래의 핵심 인물은 포은 정몽주임을 결론짓는다.
- 포은 정몽주의 면례(緬禮) 행렬이 이어진 풍덕천(豊德川) 지역에서... 죽절(竹節)로부터 죽전(竹田)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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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인물 명칭을 명확히 답변한다.
- 포은 정몽주
최종 답변 (final_answer)
포은 정몽주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지명 유래에 담긴 역사적 인물과 상징적 의미(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사이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