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한국어 지식관계

순화군 document_id A220623079860

분류
문화
라벨 상태 (label_status)
approved
문맥 (context)
순화군(順和君, 1580년 음력 10월 10일 ~ 1607년 음력 3월 18일)은 조선의 왕족이다. 선조의 여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순빈 김씨이다. 이름은 보(?), 시호는 희민(僖敏)이다. <heading>개요 </heading> 어려서부터 잔인한 성격을 지녔으며 동물을 잔혹하게 학대하였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에서 이복 형인 임해군과 함께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선조의 여러 아들 중에 이복 형인 임해군, 정원군 등과 더불어 타인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구타와 폭행, 재물 갈취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다. 성격이 포악하여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민가의 재물을 약탈하는 등의 행동을 하여 사헌부와 사간원으로부터 거듭 탄핵당했다. 특히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고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임해군이나 정원군의 행패보다는 덜했으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이 되었다. 이러한 광패한 행동으로 인해 선조에 의해 군(君)의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사망 후에 선조에 의해 다시 왕자의 작위를 회복하였다. <heading>생애 >> 출생 </heading> 1580년(선조 13년) 10월 10일, 선조(宣祖)와 순빈 김씨(順嬪 金氏)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선조의 여섯째 아들이자 순빈에게는 유일한 자식이다. <heading>임진왜란 </heading> 7월 23일, 임해군과 순화군은 함경도 회령에서 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순왜(順倭, color=gray) 국경인(鞠景仁)과 국세필(鞠世弼) 등에게 포박되어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졌다. <heading>생애 후반 </heading> 1597년(선조 30년), 황해도 신계에 머물며 지역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형장을 쳐서 백성들이 이를 원망하며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1600년(선조 33년), 모후인 의인왕후의 국상중에 의인왕후의 빈전 옆 여막에서 시녀를 강간하였다. 조선의 국법대로라면 어머니의 상중에 여인을 강간한 행위에 대한 처벌은 교수형이었다. 선조는 순화군을 외방으로 귀양보냈다. 임진왜란이 이후에도 사람 죽이는 버릇과 재물 약탈이 계속되어 양사로부터 탄핵을 받다가 1601년(선조 34년) 파면되고, 순화군의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과 호성원종공신을 책록할 때 순화군은 호성원종공신 1등의 한 사람으로 책록되었다. 그러나 양사의 탄핵은 계속되었고 수원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수원부유수가 바뀌어 후임으로 오는 수원부유수 권경우(權慶佑)가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난리를 피워 물의를 빚기도했다. 그해 10월 3일 왕명으로 사복시정(司僕寺正) 이수준(李壽俊)의 집에 안치되었다. <heading>사망 </heading> 이수준의 집에 감금된 상태에서 중풍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다가 1607년(선조 40년) 3월 18일 사망했다. 선조는 특명으로 순화군의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heading>사후 </heading> 시신은 양주군 별비곡면 청학리(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덕흥대원군 묘소 내 계좌(癸坐), 청학리에서 덕릉고개 방향에 안장된 어머니 순빈 김씨 묘소 아래에 안장되었으며, 묘비석과 신도비는 20세기 이후에 세워졌다. 부인 황씨에게서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사촌 형인 익성군의 아들 진릉군 봉경(후에 태경으로 개명)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그러나 진릉군 태경이 진릉군의 옥사로 죽으면서 파양되고, 다시 이복 동생인 인성군의 아들 해안군 억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후에 정조조에 이르러 부사직 정존겸이 그의 시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려 희민(僖敏)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순화군 이보(李?)가 사람을 죽였다. 사신은 논한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순화군에게 자식이 없었을 때,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입적된 양자의 계보적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순화군의 자녀 부재 상황에서 제사를 위해 입적된 양자의 혈연적 관계를 파악한다.

    • 부인 황씨에게서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첫 번째 양자 후보인 진릉군 봉경의 관계를 추출한다.

    • 사촌 형인 익성군의 아들 진릉군 봉경(후에 태경으로 개명)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진릉군의 사망 이후 새로운 양자 관계를 추출한다.

    • 진릉군 태경이 진릉군의 옥사로 죽으면서 파양되고, 다시 이복 동생인 인성군의 아들 해안군 억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진릉군(사촌 형의 아들)에서 해안군(이복 동생의 아들)으로 이어지는 양자 입적 과정을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최종적으로 해안군 억이 순화군의 양자로 입적되었음을 확인한다.

    • 이복 동생인 인성군의 아들 해안군 억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따라 진릉군과 해안군의 관계를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사촌 형인 익성군의 아들 진릉군 봉경
    • 이복 동생인 인성군의 아들 해안군 억
최종 답변 (final_answer)
순화군에게 아들이 없자 처음에는 사촌 형인 익성군의 아들 진릉군 봉경이 제사를 주관하였으나, 진릉군이 옥사로 죽으면서 파양된 후 이복 동생인 인성군의 아들 해안군 억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순화군에게 아들이 없자 처음에는 사촌 형인 익성군의 아들 진릉군 봉경이 제사를 주관하였으나, 진릉군이 옥사로 죽으면서 파양된 후 이복 동생인 인성군의 아들 해안군 억이 양자로 입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