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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공 (왕서) document_id A22062308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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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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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제안공 왕서(齊安公 王偦, ? ~ 1131년 음력 2월 14일)는 고려의 왕족이다. 숙종과 명의왕후의 여섯째 아들이다. 제안후(齊安侯)라고도 한다. <heading>생애 >> 가계 </heading> 언제 태어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고려의 제15대 왕 숙종과 그 명의왕후의 여섯째 아들이다. 성은 왕, 이름은 서(偦), 본관은 개성이다. 예종 등의 친동생이며, 순종과 선종 등의 친조카이다. 인종에게는 숙부가 된다. 왕서의 모후 명의왕후는 숙종의 유일한 부인으로, 문하시중을 지낸 정주 유씨 유홍의 딸이다. 당시 왕비들이 대개 인천 이씨 출신이던 때에 태조의 신혜왕후, 정덕왕후에 이어 오랜만에 탄생한 정주(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출신의 왕비이다. <heading>왕자 시절 </heading> 1103년(숙종 8년) 정식으로 이름을 받고 예물을 하사받았다. 이후 1106년(예종 원년) 음력 2월 2일 익성치리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상서령 수사공 상주국의 관직을 받고 제안후(齊安侯)에 봉해졌으며, 이때 식읍 2,000호와 식실 200호를 함께 하사받았다. 1108년(예종 3년) 음력 4월 9일에는 예종의 명으로 여진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한 윤관, 오연총 등을 개경 동쪽의 근교로 나가 맞이하고, 이들을 위로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한편 왕서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관직을 수여받았는데, 1110년(예종 5년) 음력 12월에 봉화공신 수사도의 관작과 식읍 3,500호를, 1114년(예종 9년) 음력 12월 16일에는 동덕공신 검교태보 수태위의 관직과 식읍 3,000호 및 식실 250호를, 바로 한달 후인 1115년(예종 10년) 음력 1월 17일에는 익성치리봉화공신 검교태보 수태위의 관직과 식읍 3,000호 및 식실 250호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1122년(예종 17년) 음력 1월 3일 제안공(齊安公)으로 진봉되었다. 그러나 인종이 외척 이자겸의 힘을 기반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이자겸이 조정의 막강한 권력자가 되었다. 이자겸은 자신의 반대파였던 한안인과 문공인 등의 일파를 차례차례 제거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왕서의 친형들인 대방공과 대원공을 역모를 꾀했다는 내용으로 무고하여 유배를 보내게 하였다. 이후 1128년(인종 6년) 이자겸은 몰락하였으나, 대방공은 유배지에서 이미 사망한 뒤였고, 이듬해인 1129년(인종 7년) 대원공만이 겨우 살아남아 개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친형들이 외척에 의해 유배를 가는 모습을 보면서, 왕서는 스스로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들을 모두 물리기 시작했다. 또 자신에게 오는 손님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며, 항상 술을 마시면서 스스로를 감추었다. 이러한 자위책 덕분에 왕서는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사후 그에게는 사절(思節)의 시호가 올려졌다)으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왕장은 의종의 이러한 처사에 분개하다가 얼마 후 죽고 말았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이자겸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왕서의 친형들이 겪은 상황과 이에 대응하여 왕서가 화를 면하기 위해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이자겸의 권력 장악 시기에 왕서의 형들이 처한 상황과 왕서 본인의 대응 방식을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이자겸이 왕서의 친형들인 대방공과 대원공을 역모로 무고하여 유배를 보냈음을 확인한다.

    • 이자겸은 자신의 반대파였던 한안인과 문공인 등의 일파를 차례차례 제거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왕서의 친형들인 대방공과 대원공을 역모를 꾀했다는 내용으로 무고하여 유배를 보내게 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왕서가 화를 면하기 위해 취한 구체적인 자위책을 추출한다.

    • 왕서는 스스로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들을 모두 물리기 시작했다. 또 자신에게 오는 손님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며, 항상 술을 마시면서 스스로를 감추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형들의 유배라는 위기 상황과 왕서의 은둔 및 자위책 사이의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이러한 자위책 덕분에 왕서는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형들은 유배를 갔고, 왕서는 군사를 물리고 외부 접촉을 끊으며 술로 자신을 감추어 화를 면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대방공과 대원공을 역모를 꾀했다는 내용으로 무고하여 유배를 보내게 하였다.
    • 스스로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들을 모두 물리기 시작했다. 또 자신에게 오는 손님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며, 항상 술을 마시면서 스스로를 감추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따라 형들의 상황과 왕서의 대응을 구분하여 서술형으로 작성한다.

    • 대방공과 대원공을 역모를 꾀했다는 내용으로 무고하여 유배를 보내게 하였다.
    • 스스로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들을 모두 물리기 시작했다. 또 자신에게 오는 손님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며, 항상 술을 마시면서 스스로를 감추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이자겸은 왕서의 친형들인 대방공과 대원공을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무고하여 유배를 보냈다. 이에 왕서는 화를 면하기 위해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들을 모두 물리고, 손님을 만나지 않으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항상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감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왕서는 친형들의 유배를 목격한 후 화를 면하기 위해 호위 군사를 물리고 은둔하는 자위책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