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봉산탈춤(鳳山탈춤)은 황해도 봉산군에 전승되던 탈춤으로, 19세기말 이래로 해서(海西) 탈춤의 대표적인 놀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굿거리 장단이 사용된다. 말뚝이, 샌님, 서방님, 도련님, 취발이 등의 탈을 쓰고 하며 익살과 웃음을 유발하며 현실을 풍자한다. 그 근원은 산대도감 계통극의 해서탈춤에 두고 있으며, 지방 관아의 이속이 대대로 탈춤의 연행자로 참여하였다.
봉산은 황주, 평산과 함께 팔역지(八域誌)의 소위 남북직로상(南北直路上)의 주요한 장터의 하나로 탈춤공연의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봉산탈춤은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19세기 말 20세기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지역적 분포
황해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가면극은 모두 탈춤이라 불린다. 그 분포를 보면 사리원·봉산을 중심으로 황주와 서쪽인 안악·재령·신천·장연·송화·은율 등지와 동남쪽 평야지대인 기린(麒麟)·신원·서흥·평산·신막 등지, 해안지대인 해주·강령·옹진·송림·추화·금산(金山)·연백 등지에서 추어져 왔고, 5일장이 서면 대개 1년에 1회씩은 탈꾼들을 초빙하여 놀았다고 한다. 즉 이러한 탈춤은 황해도 지역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그 중에 규모로나 내용으로나 최고봉이었던 것은 봉산의 탈춤이었다. 그 밖에 황주·서흥·평산 등지의 탈춤도 상당히 성대하였는데, 이 황해도의 주요 읍들이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중요한 집산지(集散地)여서 탈공연을 뒷바라지할 만한 여건을 능히 갖추었으리란 점을 생각할 때 수긍이 가는 일이다. 또 이 지역은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조선의 영사행사(迎使行事)에 탈놀이가 자주 동원되었던 것도 그 지역 탈춤 발전의 뒷받침이 되었다.
발전
봉산탈춤의 중흥자는 약 2백여 년 전 봉산의 이속(吏屬)이었던 안초목(安草木)으로 그는 나무탈을 종이탈로 바꾸는 등 많은 개혁을 하였다. 그 후 이속들이 주로 봉산탈춤 놀이를 하게 되면서 해서지방의 대표적인 탈춤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봉산탈춤은 연중행사의 하나로 5월 단오날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연희되며 새벽까지 계속된다. 단오절은 남부지방의 추석과 맞먹는 중부 이북 지방의 명절로서, 이때는 시기적으로 보아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난 직후로 모내기할 때까지의 망중한(忙中閑)의 시기이기도 하여 벽사와 기년(祈年)의 행사, 나아가서는 하지의 축제를 베풀기에 알맞은 때이다. 산대놀이가 비교적 전업화(專業化)된 놀이로서 보다 많이 관(官)의 행사와 관련되어 왔음에 비하여, 봉산탈춤을 비롯한 황해도 탈춤은 주로 농민과 장거리의 상인들을 상대로 한 놀이였다. 그러나 역시 고을 원님의 생일이나 부임날과 같은 관아의 경사와 중국사신을 영접하는 놀이로서 연희되었다.
1915년경 행정기관이 사리원(沙里院)으로 옮겨지자 이 놀이도 사리원으로 옮겨져 경암루 앞 광장에서 놀게 되었다.
연출
봉산탈춤의 연출형식은 피리·젓대(대금)·북·장고·해금으로 구성된 이른바 삼현육각(三弦六角:꽹과리와 징을 추가)으로 연주되는 염불·타령·굿거리곡 등에 맞추어 춤이 주가 되고, 여기에 몸짓(mime)과 동작(科:action)과 재담(才談:白, dialogue)과 노래가 따르는 가면무극으로, 크게 보아 가무적 부분과 연극(희곡)적 부분으로 구성된다.
봉산 탈춤은 전문적인 탈꾼들이나 신명이 좋은 마을 사람들이 장터나 광장에서 연희하는데 길놀이부터 뒤풀이에 이르기까지 전 과장을 서른여섯 가지 배역으로 연기한다. 그 내용으로 보아 크게 일곱 과장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과장의 구분은 그리 엄격하지 않다. 그리고 각 과장도 주제별로 된 몇 개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한 테두리 속에 들어 있다.
구성
봉산탈춤의 과장(科場)은 크게 7과장으로 나누어 1과장 사상좌춤(四上佐舞), 2과장 팔목중춤(八目僧舞), 3과장 사당춤(社堂舞), 4과장 노장춤(신장수 놀음·취발이놀음 포함), 5과장 사자춤, 6과장 양반춤, 7과장 미얄춤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팔목중춤·사당춤·사자춤 과장이 양주산대놀이와 다르다. 봉산탈춤은 결국 목중·노장·양반 및 미얄의 독립된 네 개의 놀이에 사당춤·사자춤·원숭이 놀이가 곁들여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봉산탈춤은 양주 산대놀이와 동일한 산대도감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다.
봉산탈춤의 내용은 7마당 5거리로 되어 있다. 제1은 사상좌(四上佐) 춤마당으로 사방신(四方神)에 배례하는 의식무(儀式舞) 장면이며, 제2는 팔먹중마당으로 첫째 거리는 팔먹중 춤놀이이며 둘째 거리는 법구놀이이며, 제3은 사당춤마당으로 사당(社堂)과 거사(居士)들이 흥겨운 노래를 주고받는 장면이며, 제4는 노장(老長)춤 마당으로 첫째거리는 노장 춤 놀이로 노장이 소무의 유혹에 빠져 파계하는 장면이며, 둘째거리는 신장사 춤 놀이로 신장사가 노장에게 신을 뺏기는 장면이며 셋째거리는 취발이 춤 놀이로 취발이가 노장으로부터 소무를 빼앗고 살림을 차리는 장면인데 여기서 모의적인 성행위와 출산은 풍요제의적(豊饒祭儀的) 성격을 띠고 있으며 제5는 사자춤마당으로 사자로 하여 노장을 파계시키고 파계승들인 먹중들을 징계하는 장면이며 제6은 양반춤마당으로 양반집 머슴인 말뚝이가 양반형제들을 희롱하는 장면이며 제7은 미얄춤마당으로 영감과 미얄할멈과 영감의 첩덜미리집과의 삼각관계를 그리다가 영감에게 맞아 죽은 미얄할멈의 원혼을 달래는 무당굿으로 끝난다.
봉산탈춤에 사용되는 탈은 팔먹중ㆍ노장ㆍ취발이탈과 같은 귀면형(鬼面型)의 이른바 목탈이 주요한 배역을 맡고 있다. 먹중의 기본 의상은 화려한 더거리에 붉고 푸른 띠를 매며 소매에는 흰 한삼을 달았고 다리에는 행전을 치고 웃대님을 맨다. 먹중춤은 한삼소매를 휘어잡고 뿌리거나 또는 경쾌하게 흩뿌리면서 두 팔을 빠른 사위로 굽혔다 폈다하는 동작의 이른바 '깨끼춤'이 기본이 되는 건무(健舞)이다.
등장하는 배역 수는 34명이 되나 겸용하는 탈이 있으므로 실제로 사용되는 가면 수는 26개가 되며 상좌4개, 먹중〔墨僧, 目僧〕 8개, 거사 6개, 사당, 소무(小巫), 노장〔僧〕 신장수〔鞋商〕, 원숭이, 취발이(醉發), 맏양반(샌님), 둘째양반(서방님), 셋째양반(종가집 도련님), 말뚝이, 영감, 미얄, 덜머리집(용산삼개), 남강노인(南江老人), 무당, 사자 등이다.
봉산탈춤의 가면
사용된 가면은 상좌(上佐) 4개, 목중(墨僧, 目僧) 8개, 거사(居士) 6개, 사당(社堂) 1개, 소무(小巫) 1개, 노장(승)(老長<僧>) 1개, 신장수(鞋商) 1개, 원숭이 1개, 취발(醉發) 1개, 맏양반(兩班) 1개, 둘째 양반 1개, 셋째 양반 1개, 말뚝이 1개, 영감 1개, 미얄 1개, 덜머리집 1개이다.
봉산탈춤사위
봉산탈춤사위는 대부분 배역의 이름에 춤사위를 붙이고 있는 것이 양주의 것과 다르나, 춤의 활달한 멋은 한국가면극 덧보기춤의 제1이라고 볼 수 있는 팔먹중들의 사위춤(한삼춤)이 장관이다. 요철이 심한 탈과 남(藍)·주(朱)·금(金)색의 조화로 화려한 의상과 함께 뛰는 도무(跳舞)가 으뜸으로 북방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무폭(舞幅)이 큰 것이 특징이다.
춤사위는 팔먹중의 춤집이 큰 외사위ㆍ곱(겹)사위ㆍ양사위ㆍ만사위와 취발이의 깨끼춤, 말뚝이의 두어춤, 미얄의 궁둥이춤과 까치걸음, 팔먹의 뭇등춤 등이며 불림에 따라 장단을 정하고 춤을 춘다. 특히 팔먹춤은 귀면형의 탈과 함께 둘째목이 등장하여 첫째목을 때려서 쫓는 식으로 차례로 반복하는 형식은 벽사무(辟邪舞)의 모습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사위춤
탈춤의 장단은 주로 타령이고 타령춤이 곧 사위춤인데 이 사위춤은 도무(발의 뜀)+한산춤(손의 휘둘림)을 말하는 것이다. 이 춤은 사상좌(四上佐)와 팔먹중·취발이만이 추는 춤으로 한삼의 휘둘려짐은 그 강력한 탈과 함께 성난 무사의 검무(劍舞)와 같으며, 사악귀신(邪惡鬼神)을 쫓아 베어버리는 구나적(驅儺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
사위춤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팔먹중춤
팔먹중춤은 하나하나마다 춤이 짜여져 있어 무용성이 강하며, 저마다 개성적인 춤이 끝나면 빠른 타령장단의 사위춤으로 바뀌는 것이 공통적이다.
팔먹중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상좌춤
이 춤은 사방신고사무(四方神告祀舞)의 의식무(儀式舞)로서, 주로 팔을 벌렸다가 긴 한삼을 사방에 휘날리며 앞으로 뿌렸다 감고 풀면서 사방으로 풀어져 맞춤을 하는데, 그 진행이 마치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의 구나무(驅儺舞)의 진행과 흡사하다.
사자춤
두 사람이 사자가면 속에 들어가 하나는 앞머리에서, 다른 하나는 뒷머리를 잡고 첫 번째는 굿거리장단에서부터 시작하고 두 번째는 타령장단에 맞추어 춘다.
몸짓춤
춤이라기보다 일종의 마임 댄스(mime dance)로 춤과 연기를 함께 한다. 몸짓춤에는 노장춤, 말뚝이춤(두어춤), 취발이춤(깨끼춤), 미얄춤(궁둥이춤) 등이 있다.
봉산탈춤의 기능보유자
산대계(山臺系) 탈놀이의 해서형(海西型) 중의 하나인 봉산탈춤은 1945년 8·15광복 이후 월남한 몇 사람의 연희자들에 의하여 전해지다가 1967년 6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월남한 연희자 중에서 이 놀이의 재현을 위하여 힘써 온 김진옥(金辰玉)이 1969년 사망함으로써 한동안 그 전수가 위기에 처했었으나, 한국가면극연구회의 노력으로 현재는 전수사업을 활발히 펴고 있다.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봉산탈춤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황해도 탈놀이에서 차지했던 위상과 그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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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봉산탈춤의 역사적 위상(최고봉 여부)과 그 특징(영향력 및 명성)을 묻는 질문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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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봉산탈춤의 시대적 위치와 다른 탈놀이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정보를 추출한다.
- 19세기 말 20세기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 봉산탈춤은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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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위상에 대한 근거인 '최고봉' 표현과 특징에 대한 근거인 '개량' 및 '명성' 구절을 선별한다.
-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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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봉산탈춤이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지역 탈놀이의 정점에 있었으며, 타 지역의 영향을 받아 개량하며 명성을 쌓았다는 점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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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봉산탈춤은 강령탈춤과 더불어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이었으며, 타 지방의 영향을 받아 개량하며 뛰어난 연기로 명성을 떨쳤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19세기 말 20세기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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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시대적 위상과 특징을 포함하여 서술형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 다른 지방의 탈놀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개량하였고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로 주위에 명성을 떨쳤고
최종 답변 (final_answer)
봉산탈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또한 다른 지방의 탈놀이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이며 개량해 왔으며, 명수들의 배역과 뛰어난 연기를 통해 주위에 명성을 떨쳤다는 특징이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봉산탈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으며 다른 지방의 탈놀이로부터 영향을 받아들이며 개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