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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도루 document_id A22062312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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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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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도루(橋下 徹, 1969년 6월 29일~ )는 일본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19대 오사카시의 시장이자 52대 오사카부지사였으며, 지역 정당 오사카 유신회의 대표이다. 2008년 오사카부지사에 당선되었으나 자신의 오사카 도 구상 실천을 위해 잔여임기 4개월을 앞두고 부지사직을 사퇴하고 시장에 출마했다. 2010년 지방정치단체인 오사카 유신회를 설립했고 2012년 11월 자신은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고 측근은 오사카부 지사로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3년간 일본 사법 연수원에서 연수를 거친 뒤, 1997년 로펌 가바시마 법률사무소(樺島法律事務所)에 입사, 1998년에는 오사카시내에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개소하였다. 2000년부터는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법률상담, 정치, 시사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거나 리포터로 활동했다. 2008년의 총선거에서 2007년 12월 자민당과 공명당의 공천으로 오사카부의 지사에 당선되었지만 곧 자민당을 탈퇴하고 오사카 유신회를 창립하였다. 부라쿠민 출신 최초의 도도부현 지사이기도 하고, 도도부현 지사 출신 최초의 시장이기도 하다. 자신의 오사카 도 구상의 실현을 위해 임기 3개월을 남기고 오사카부지사를 사퇴하고, 2011년 12월 오사카 시장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오사카시 시장 재직 중이던 2014년 2월 27일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하겠다고 사퇴한 뒤, 재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3월 23일 다시 시장직으로 복귀하였다. 생애 >> 초기 활동 >> 출생과 소년기 도쿄도 시부야구 하타가야정의 부라쿠민 가정에서 태어나, 하타가야 상가 근처의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 하시시타 엔키치(橋下円吉) 대까지만 해도 그의 집안은 부라쿠민이었다. 1947년 이후 신분 차별은 사라졌지만 부라쿠민 가계라는 점과 고아, 야쿠자의 자식이라는 점을 이유로 주변의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게는 1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하시모토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야쿠자였던 아버지가 자살하였고, 홀어머니 밑에서 네살 터울의 여동생을 포함한 3명의 가족과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때 그의 가족은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오사카부 스이타시로 이주했다가 1년 후 오사카시 히가시요도가와구로 이주하였다. 그후 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어머니가 재혼하였다. 이후 친아버지쪽 가족, 친척들과는 연락이 거의 없었다 한다. 도쿄에 거주할 때 친했던 친구는 하시모토를 "잘 돌봐 주는 학생회장의 모습을 보였다"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을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의 학창시절 회고에 의하면 "나는 학창 시절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능력한 교사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혐오스러웠다.", "교사들 중에도 나를 싫어했던 사람은 가득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에 럭비팀에서 럭비선수로도 활동했다. 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 그는 일본국영방송의 프로그램인 전국 고등학교 퀴즈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비록 하시모토 도루는 전국 고등학교 퀴즈 선수권 대회의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방송에는 그의 얼굴이 잠깐 방송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대입 시험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1988년 3월 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년간 재수한 끝에 1990년 4월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의 경제학과로 진학하였다. 1998년 기타노 고등학교 동창인 노리코(典子)와 결혼하였다. 변호사 시절 작은 아버지도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그의 사촌은 1999년 당시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사카 쇠몽둥이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이런 가계 내력에도 불구하고 하시모토는 와세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의류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98년 로펌을 그만두고 오사카시 키타구에서 변호사사무소를 개소하였다. 방송 활동 오사카에서 변호사로 생활하던 중 2000년 고교 선배로부터 MBS 라디오의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리 출연 부탁으로 우연히 출연했다가, 2001년 1월 4일 아사히 방송의 ワイドABCDE〜す의 PD의 요청으로 ワイドABCDE〜す에 기자 오오타니 아키히로 등과 함께 리포터로 출연하게 되었다. 이후 아사히 방송의 슈퍼 모닝이나 무브에도 패널로 출연하였다. 한때 그는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9회 이상 출연하며 법률상담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지명도를 높였다. 2003년 4월 쿠보다 노리아키(久保田紀昭)의 후임으로 일본방송의 움직이는 법률 상담소에 고정 출연하였다. 2003년 7월부터는 일본방송의 한 가족의 거기까지 말해 위원회(たかじんのそこまで言って委員会)라는 프로그램에도 고정 패널로 출연하였다. 여기서 하시모토는 정치인, 법조인, 현직 판,검사, 탤런트, 문화인에 대한 비판, 풍자 발언을 하는 한편 와이드 쇼에도 출연하여 어떤 일본 국내외 사건, 사고, 시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표현했다. 또한 사법 문제와 일본 법조계 전반, 판사의 자질, 검사의 자질에 대해서도 폭넓게 비판하여 화제를 얻기도 했다. 정치 활동 >> 오사카 부지사 시절 2006년 말에 지방자치선거에 오사카부지사 후보로 출마, 2008년 1월 27일에 제52대 오사카 부지사에 183만 3천 3천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하시모토는 선거운동 기간인 11월26일 거리연설에서 “여러분의 한 표가 자민당·민주당·공산당·시청, 그리고 시청에 꼬여 있는 단체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2008년 2월 6일 당시 38세로 오사카 부지사에 취임, 사임하기까지 일본 부라쿠민 출신 최초의 도도부현 지사이자, 내 최연소의 광역 지자체 단체장이었다. 오랫동안 NHK에 방송하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각종 법률 관련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방송인으로서의 지명도도 쌓아왔다. 그는 자민당의 공천으로 자민당-공명당의 연립 후보자로 오사카부의 부지사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월급과 연금을 30% 삭감하며 비용절감에 나섰다. 취임 일성으로 느는 현재 5조 엔에 달하는 오사카부의 채무를 경감시키고 재정 재건을 위해 공무원들과 오사카 부지사인 하시모토 자신의 임금을 삭감하고 불필요한 청사 전물들을 매각하여 채무 상환을 하는 등 행정에 엄청난 열의를 보였다. 2월 6일 취임사에서 한 말인 “오사카는 파산 상태다. 청사를 해체하겠다.” “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 그리고 마지막엔 죽어 달라.” 등의 발언에서 그의 열의를 재확인할 수 있다. 그는 취임 직후 자신의 연봉과 퇴직금, 연금을 30% 삭감하고 이어 공무원 임금도 삭감하였다. 그밖에 각종 시민 단체 보조금 삭감과 기초 생활 수급자 수급 기준을 강화하여 부지사 취임 2년차인 2009년 말, 오사카부의 재정을 흑자로 만들었다. 2009년 1월 세계 경제 포럼(다보스 포럼)의 영 글로벌 리더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은 “중국에 정부 개발 원조(ODA)를 지급하는 것은 매춘 행위”,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한다” 등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사카 부지사로 재임할 당시에 부라쿠민과 빈곤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었던 것으로 인해 비판도 많이 받았다. 2009년 10월 30일 총무성 지방자치 담당 고문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2010년 4월 19일 오사카 유신회를 창립하고 당수가 되었으며, 2년 후 시민단체등과 통합하여 2012년 9월 10일 일본유신회로 개편하고 당수에 취임하였다. 오사카 부지사 재직 중이던 2011년 6월, 그는 교육기본조례를 도입할 때 오사카부 내의 각종 공식 행사에서는 기미가요의 제창을 의무화하는 기미가요 기립 조항을 추가하였다. 오사카 부지사 사퇴 및 시장 출마 2011년 10월 그는 오사카부 부지사직을 사퇴했다. 일본의 광역단체장인 오사카부(府) 현역 지사가 한 등급 낮은 기초단체장인 오사카시장 선거(11월 27일)에 나서기 위해 사임한 것은 화제가 되었다. 그가 지사 임기(2012년 2월말까지) 도중에 하차한 것은 자신의 지론인 ‘오사카도(都)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월 7일 시의회 의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20일 후에 수리되었다. 자신이 사퇴해 치러지는 재선거에 다시 출마해 유권자 심판을 통해 당선되면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재출마했고, 3월 23일 당선되어 재취임했다. 정책 >> 공적자금 절약, 감축 계획 2007년 오사카부 지사에 도전, 당선됐으며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월급을 30% 삭감하며 비용절감에 나섰다. 2015년 5월 하시모토 시장은 오사카시와 오사카부가 인프라 정비 등 광역 행정 권한을 각각 보유하면서 빚어지는 ‘2중 행정’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이런 내용의 행정구역 개편안을 마련했다. 이유는 일본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본 정부의 참정권을 줄 필요가 없고, 일본 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의 지방참정권에 반대하고, 헌법 개정과 핵무장에 찬성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독도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일본 우파들이 옛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확전을 꾀하는 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뿐 아니라 연합군도 위안소를 만들어 운영했는데 왜 우리만 잘못이냐는 식의 주장이다. 성매매 필요 논란 하시모토는 성매매, 풍속업의 필요성을 종종 언급하기도 했다. 2013년 5월 13일 하시모토 시장은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가 된 것은 전쟁의 비극의 결과"라고 밝히고,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도 있다. 위안부에게는 상냥한 말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연했다. 하시모토는 위안부가 일본 군부의 정책이든, 현지인들의 협조하에 현지인들의 공출, 인신매매를 통한 결과이든 비극적인 사실이고, 일본에도 어느정도 책임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하시모토 도루는 성매매 관련 업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2013년 5월 13일 저녁에는 "위안부 제도가 아니어도 '풍속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해 5월 초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때 병사들이 성적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풍속업을 더 활용해 달라"고 지휘관에게 제언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성매매는 없앨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매매를 금지한다면 비뚤어진 방법으로 욕구를 해소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성의 성욕을 죄책감을 조장하고, 물리적으로 처벌하고 규제해봐야 더 비뚤어진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오히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탄압할 수록, 자발적 남성 성기능 불구자의 급증과 인구 감소라는 악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점 그는 위안부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고, 일본 정부에도 책임은 있다고 봤으며, 윤리적으로 문제있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하시모토는 2012년 8월 20일의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위안부 제도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한국 쪽 주장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2013년 5월 13일 시장실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가 된 것은 전쟁의 비극의 결과"라고 밝히고,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도 있다."고 보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정치를 대중영합주의, 인기영합주의로 규정하였다. 청년 정책, 세금 감축 정책에 한해서는 과감하고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는데 독단적 업무스타일과 극우적인 성향 덕에 반대편에서는 하시모토와 파시즘을 합쳐 하시즘 또는 하시스트라고 풍자하기도 한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하시모토 도루가 오사카부지사직을 사퇴하고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와 그 과정에서의 시점 변화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하시모토 도루의 부지사 사퇴 이유와 시장 출마로 이어지는 시간적 흐름 및 인과관계를 파악한다.

    • 2008년 오사카부지사에 당선되었으나 자신의 오사카 도 구상 실천을 위해 잔여임기 4개월을 앞두고 부지사직을 사퇴하고 시장에 출마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사퇴의 목적과 구체적인 시점, 이후의 행보를 추출한다.

    • 자신의 오사카 도 구상 실천을 위해
    • 잔여임기 4개월을 앞두고 부지사직을 사퇴
    • 2011년 12월 오사카 시장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사퇴의 직접적인 동기와 임기 관련 정보를 선별한다.

    • 자신의 지론인 ‘오사카도(都)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 임기 3개월을 남기고 오사카부지사를 사퇴하고, 2011년 12월 오사카 시장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부지사 임기 중 '오사카도 구상' 실현을 위해 사퇴를 결정하고 시장 선거에 도전한 인과관계를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사퇴 이유(오사카도 구상 추진)와 시점(임기 종료 전 사퇴 후 시장 출마)을 결합한다.

    • 자신의 지론인 ‘오사카도(都)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이유와 시간적 변화를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자신의 지론인 ‘오사카도(都)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하시모토 도루는 자신의 지론인 '오사카도(都)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 오사카부지사직을 사퇴했다. 그는 부지사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잔여 임기 약 3~4개월 전) 사퇴한 뒤, 2011년 12월 오사카 시장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하시모토 도루는 자신의 오사카도 구상 실천을 위해 오사카부지사직을 사퇴하고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