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안평대군 이용 집터(安平大君李瑢家址) 또는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는 조선 세종 29년(1447년, 추정)에 만들어진 세종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별장 터이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바위에는 무계동(武溪洞)이라고 적힌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된다.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당초 문화재 지정 명칭은 '무계정사'였으나, 2003년 12월 5일 무계정사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개요
무계정사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사용하던 정자인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있던 터이다.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1만 권의 책을 갖추고 용산 강가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선비들과 함께 시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한편 이곳에는 커다란 바위면에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무계동(武溪洞)'이란 글씨가 큰 현판 모양으로 새겨져 있어 이곳이 무계정사가 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안평대군 이용의 별장이었던 무계정사지가 현재 폐허가 되어 터만 남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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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무계정사지가 현재 폐허가 된 원인과 그 역사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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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안평대군의 운명과 무계정사의 상태 변화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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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폐허가 된 직접적인 원인인 안평대군의 죽음과 그 시점을 선별한다.
-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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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안평대군이 역모로 인해 사약을 받고 죽은 사건이 무계정사의 폐허화로 이어졌음을 연결한다.
-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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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안평대군이 역모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은 사건 이후 무계정사가 폐허가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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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인과관계를 포함하여 서술형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최종 답변 (final_answer)
안평대군이 역모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 무계정사가 폐허가 되면서 현재는 터만 남게 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안평대군이 역모로 몰려 죽은 단종 1년 이후 무계정사는 폐허가 되어 터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