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한국어 지식관계

최일구 document_id A220623132156

분류
문화
라벨 상태 (label_status)
approved
문맥 (context)
최일구(崔一九, 1960년 11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프리랜서 방송인 겸 가수이자 전직 뉴스 보도 기자 출신이며, 전직 문화방송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뉴스 앵커였고 MBC 퇴사 후 잠시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 등을 지냈다. 그리고 최근까지는 트로트 가수로도 활약하였다. 주요 이력 >> 생애 >>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고등학교 시절 최일구는 머리를 짧게 자른 후 도시락을 2개씩 싸서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으나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가보니 허파에 물이 차 있는 늑막염 진단을 받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을 받아 휴학계를 내고 여름을 보냈다. 다행히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대입 공부를 시작했다. 물리·화학·수학은 포기하고 국어·영어만 집중적으로 공략해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최일구는 2년간 무조건 놀고 군대를 갔다 온 후 남은 대학교 2년간 언론사 입사 공부를 하자는 전략을 세워, 다행히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기자 1985년 기자로 MBC에 입사하여 4년간 경찰서 출입기자로 활동했다. 최일구의 고향에서 내내 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대가 컸으며 최일구 자신도 꿈을 이뤘다는 것에 대견해했다. 그러나 경찰서 출입기자 생활은 쉽지 않았다. 1985년 최일구는 60년생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많았던 탓에 군대보다 힘들다고 생각했다. 경찰기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에 상황보고를 해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특종 취재 경쟁이 특히 심한것은 야간이었다. 언론사들은 각각 취재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한 차량이 중간에 없어지면 경쟁사 기자들이 특종 취재를 간 걸로 생각하고 긴장하기도 했다. 최일구는 단독 특종 보도를 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아깝게 특종을 놓친 경우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김만철 일가 탈북 사건이었다. 당시 정부는 보호 처소를 마련해 두었고 기자들은 김만철 가족이 어디서 묵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타사보다 확실한 영상을 확보했다는 승리감에 도취한 최일구는 그러나 경쟁 방송사에 김만철의 누나가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알고보니 서울에 김만철의 누나가 생존해 있던 것이었다. 제보자는 MBC에 먼저 전화를 해 "김만철 누나 생존해 있다"고 제보했으나 MBC 직원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끊어버려 특종을 놓친 것이었다. 최일구는 당시 보도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일구는 이후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 출동으로 활동했고, 1992년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서울 야경을 취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4년 2월에 시작한 2580 초창기 기자로도 활동했다. 대표적인 보도로 충남 보령 서해 앞바다 식인 상어 취재가 있다. 식인 상어가 출몰했다는 제보를 받고 내려갔는데 상부에서 상어를 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와 보령의 전문 잠수부 연합을 섭외하고 수중카메라까지 동원했다. 상어를 유인하기 위해 돼지피를 이용했으나 끝내 식인상어는 출몰하지 않았고 근처 어민들을 취재하고 수중취재를 하는데 그쳤으나 29.5%의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었다. 가장 위험했던 취재는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사건 기자였던 최일구는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아보자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주목했다. 특히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에 모든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는 시위도 횡행했다. 최루탄 공방이 오가던 중 대다수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피해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가 열흘쯤 지나 해산하는 날, 모든 취재를 마쳤음에도 제대로 보도가 안될 정도로 언론 통제가 심했고 최일구는 이에 대해 부끄럽다고 뇌까렸다. 차량이 훼손되어 취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최일구가 취재한 내용중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보도는 1996년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였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당산철교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많이 보도가 되었으나 최일구는 비파괴 검사를 해보기로 계획하고 밤에 다리에 올라가 무려 100군데 넘게 균열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이후 언론사들의 후속 취재가 이어졌고 재공사에 착수하게 되는 결실을 맺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앵커 최일구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앵커를 꿈꿨다. 기자가 방송을 하다보면 리포팅을 하거나 중계할때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판이 쌓이게 되며 그것이 나중에 앵커 오디션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받게 되어 앵커가 된다. 최일구는 목소리가 좋은 앵커가 좋은 앵커라고 말한다. 2003년 사회부에서 사건 데스크를 하고 있던 최일구에게 보도국장이 주말 앵커를 제안하고 오디션을 거쳐 2003년 10월 11일부터 최윤영 아나운서와 함께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됐다. 최일구는 자신의 목소리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신뢰가 가는 목소리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앵커가 되어 첫 뉴스를 진행하는 날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한 시간 특집으로 진행되어 최일구는 크게 긴장했다. 9시 정각이 되면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방송이 시작되는데 이 불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아 제때 시작을 못하거나 말을 수시로 더듬는 등 실수를 저질렀다. 2005년까지 앵커를 하다가 다시 보도국들로 들어가서 생활하던 중 2010년 1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다시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았다. 주말 뉴스데스크에서는 최일구가 직접 출동하여 현장 체험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코너도 마련했다. 최일구는 앵커 멘트에 대해 짧고, 쉽고, 공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CNN 뉴스처럼 좀 더 자유롭게 진행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뉴스가 딱딱하다고 느꼈던 최일구는 대화하는 것 처럼 뉴스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여 "~군요"라는 독특한 말투와, 멘트를 탄생시켰고 '최일구 어록'이 나오기도 했다. 모든 멘트는 사전에 대본으로 만들어놓고 진행하며 애드리브는 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어록에 대해 "너무 가볍지 않느냐", "장난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가 진행하는 뉴스데스크는 "예능데스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MBC 파업과 퇴사 2012년 2월 MBC 파업 직후 파업에 참여하기 위해 부국장 보직사퇴와 주말 MBC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자진 하차하였다. 파업 참여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징계가 풀린 후 보직을 받지 못해 2012년 10월 MBC아카데미 교육발령을 받아 3개월동안 교육을 받았고, 교육 종료후 교육발령이 3개월 연장되었다. MBC아카데미 교육을 받는 도중 2013년 2월 MBC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를 하였다. 퇴사 직후 SNL 코리아 제작진의 적극적인 설득에 2013년 4월 tvN SNL 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 진행자로 방송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tvN의 모기업 사주가 비리에 연루되어 사전 녹화된 '최일구의 끝장토론'이 불방되었고, 2013년 8월 SNL 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 진행자에서 하차하였다. 2017년 9월 2일부터 MBN 뉴스 8 주말 앵커로 5년 7개월만에 뉴스 앵커로 복귀했고(정아영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 2017년 10월 23일부터 TBS 교통방송의 가을철 프로그램 개편으로 TBS FM(수도권 FM 95.1MHZ) 월~금 낮 2시11분~4시 토~일 낮 2시06분~4시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최일구가 기자 시절 진행했던 보도 중 당산철교의 문제를 밝혀내어 재공사에 착수하게 만든 보도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최일구의 기자 시절 보도 중 당산철교 부실공사를 밝혀내어 실질적인 변화(재공사)를 이끌어낸 특정 보도를 찾는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당산철교', '부실공사', '재공사'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한다.

    • 가장 영향력이 컸던 보도는 1996년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당산철교의 균열을 확인하여 후속 취재와 재공사를 이끌어냈다는 구체적 사실을 확인한다.

    • 최일구는 비파괴 검사를 해보기로 계획하고 밤에 다리에 올라가 무려 100군데 넘게 균열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이후 언론사들의 후속 취재가 이어졌고 재공사에 착수하게 되는 결실을 맺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1996년의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가 질문에서 요구하는 영향력 있는 보도와 일치함을 확인한다.

    • 가장 영향력이 컸던 보도는 1996년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해당 보도의 명칭을 결론으로 도출한다.

    • 1996년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작성한다.

    • 1996년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96년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최일구가 기자로서 수행한 보도 활동 중 당산철교 부실공사 보도는 1996년에 수행되어 실질적인 재공사 착수를 이끌어내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