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한국어 지식관계

공통감각과 메텍시스 - 칸트, 랑시에르, 아도르노에게서 ‘도래할’ 공동체의 원리 document_id A220623132712

분류
인문학
라벨 상태 (label_status)
approved
문맥 (context)
본 연구는 칸트, 랑시에르, 아도르노의 고찰들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파편화와 사회 해체 이후 필요한 공동체적 관계의 원리에 관한 사유를 논하고자 한다. 칸트는 그의 공통감각 개념을 통해, 공동체가 전제하는 공통성이 공통의 감각적, 정서적 유사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는 그러한 공통성을 가능케 하는 특정한 방식의 시공간의 구조적 분할과 배치를 전제한다. 이로부터 랑시에르는 칸트가 전제하는 이러한 공통성의 구조가 중립적인 합의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분할과 재분할의 과정을 둘러싼, 배제와 참여의 갈등 속에 전개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끝으로 아도르노는 이러한 정치적 공동체의 형성과정 속에서 미메시스적 연대의 형태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탈억압적 관계망을 의미하는 짜임관계의 형성은 이러한 원리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본 논문은 혈연적 동질성이나 지역적 테두리에서 형성되는 전통적 공동체와 구분되는 현대적 방식의 공동체성의 형성조건과 그 사회·정치철학적 함의들에 관해 논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은 극단적인 사회의 해체를 경험한 뒤로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은 매우 상이하며, 그 현실적 귀결 역시 결코 동일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공화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공동체를 법의 토대 위에 성립된 국가의 공동선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존재한다. 그에 따르면 법은 한 사회의 보편적 공동선의 실현을 규범적 목적으로 삼아야 하며, 국가는 단순한 행정기구, 권력기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보편적 가치관을 실현하는 제도화된 사회규범의 담지자로 이해된다.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는 커뮤니티라는 의미에서, 사회의 기능적 분업 속에서도 각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맺고 있는 소규모 모임들과 관련된 행위들로도 이해된다. 여기에는 써클, 동호회, 지역 모임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는 경제적 합리성이 지배하기 이전, 그리고 세계화가 지구적인 세계시장으로 인류를 통합하기 이전 존재하던 전통적인 지역적 생활단위 내지 친밀성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퇴니스가 도입한 게젤샤프트로서의 사회와 게마인샤프트로서의 공동체 구분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상실된’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생각은 이러한 방식의 공동체 이해와 관련이 있다. 본 논문의 공동체의 이해방식은 위에 설명된 세 가지와 각각 구분된다. 첫째로 랑시에르의 논의를 통해 살펴본 ‘정치적 공동체’는 국가의 공동선이라는 의미로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적 공동체란 우선적으로 감각의 나눔이 실현될 수 있는 장소를 지칭하는데, 이러한 나눔은 그 이중적 의미에서 배제를 전제로 한 분할과정이기도 하고, 그러한 분할을 재구성하는 실천들이 목표로 삼는 공유의 실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치적 공동체란 이러한 이중적 ‘나눔’의 공간이며 ‘나눔’을 둘러싼 이견과 갈등이 표현되는 공간이다. 그것을 공동체로 부르는 이유는 이러한 이견과 갈등의 표현이 언제나 그에 앞서 형성된 사회의 공통성, 공통 세계의 성립을 전제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의 공동선이나 그 내용을 담은 헌법의 정신은 랑시에르적인 의미에서의 정치가 벌어질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며, 정치적 행위들이 발생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 공동체는 국가라는 제도적 틀을 넘어선 광범한 인간의 감각적 실천의 무대를 의미한다. 둘째로 소규모 모임들과 실천들이라는 의미의 공동체는 특수한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목표로 삼는 인간집단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칸트적인 의미에서의 공통감각, 즉 모든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생겨나는 취미판단의 공통적인 구조가 발생할 여지가 생겨나지 않는다. 이러한 소규모 커뮤니티들 속에서는 나와 너 사이의 공통의 감각적 유사성을 통한 관계의 형성이 이뤄지지 않으며, 오로지 사적인 의미에서의 정서적 친밀감만이 발생한다. 따라서 그것은 “공동체적 감각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형태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없다. 셋째로 복원해야 할 전통 공동체라는 표상은 근대적 사회 관계 전반을 인간성의 퇴보로 간주하는 낭만주의적 파토스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동체의 실현은 아도르노가 비판하는 의미에서 비동일자에 대한 배타성을 그 성립조건으로 삼으며, 때로는 그러한 국지적인 공동체적 관계가 민족 공동체 등의 집단 나르시즘이나 집단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결합하여 국가나 사회의 모든 관계들을 무매개적 직접성 속에 포섭하는 억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이러한 전근대적 공동체가 현대 사회에서 복원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개체성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다면 억압적인 원리로 나타날 위험도 있다. 공통감각과 메텍시스라는 철학적 개념들로부터 우리는 ‘국가’로도, 소규모 ‘커뮤니티’로도, 전근대적 ‘게마인샤프트’로도 환원되지 않는 공동체적 관계들이 현대사회의 조건 속에서 출현하는 방식에 관한 유의미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칸트의 공통감각 개념을 경유해 우리는 공동체적 관계의 형성조건인 공통성을 공통의 감각적 유사성의 구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적 감각성의 구조는 사회 전체의 통일된 감각적인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관련된 이견과 갈등의 발생으로 이해하는 랑시에르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란 모든 종류의 갈등에서 벗어나 각 구성원들이 유기적 관계를 이루는 총체성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의 감각적 분할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표현되는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동체의 공통성은 합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둘러싼 갈등의 전제가 되며, 이러한 갈등 없이는, 배제된 자들의 저항 없이는 공동체란 사회적 분할을 정당화하는 치안에 불과한 것으로 남는다. 공동체는 불화를 통해 소음이 말이 되고 보이지 않는 자들이 보이는 자들로 거듭나는 공간, 몫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아도르노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란 미메시스적 공감능력을 토대로 주체들이 연대할 때 성립할 것이며, 그것이 목표로 하는 관계의 형태는 개별자들이 보편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고유성의 권리를 실현하는 공유와 참여의 짜임관계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실현해야 할 공동체, 희망해야 할 공동체의 형태는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극단적인 사회의 해체와 개인의 원자화를 극복하면서도 개체성의 자유와 고유성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공동체란 사회의 특수한 부분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그 관계를 미화하는 방식의 표상으로는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행된 현대사회의 기능적 분업의 한복판에서 그와 분리된 공동체적 관계가 외딴 섬처럼 존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복원되어야 할 공동체가 아닌, ‘도래할’ 공동체는 공통감각의 공유를 전제로 각 구성원들의 공통의 정서적 연대감을 기반으로 한 배제 없는 참여의 원리가 구체화될 장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공통감각의 형성과 배제 없는 참여는 도래할 공동체의 형성을 가능케 해줄 공통성을 전통 공동체의 협소한 폐쇄성과 달리 현대적인 개방성과 개체적 자유의 관점에서 보장해줄 두 가지 규범적 요청들이자,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의 성립근거가 될 개념적 전제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들의 구체적인 실현과정과 그 가능성에 관한 논의는 개념적 수준을 넘어선 현실적 지반 위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구체적 논의의 전개와 확장은 필자에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전통적인 지역적 생활단위나 친밀성에 기반한 공동체를 현대 사회에서 복원하려는 시도가 가질 수 있는 위험성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전통적 공동체의 복원이 현대 사회에서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과 위험성을 묻는 질문이다.

    • 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상실된’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생각은 이러한 방식의 공동체 이해와 관련이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전통적 공동체의 특성과 아도르노의 비판 내용을 추출한다.

    • 아도르노가 비판하는 의미에서 비동일자에 대한 배타성을 그 성립조건으로 삼으며
    • 집단 나르시즘이나 집단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결합하여 국가나 사회의 모든 관계들을 무매개적 직접성 속에 포섭하는 억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전통적 공동체 복원의 구체적인 위험 요소를 선별한다.

    • 비동일자에 대한 배타성을 그 성립조건으로 삼으며
    • ‘개체성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다면 억압적인 원리로 나타날 위험도 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전통적 공동체의 배타적 성격이 개체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집단 나르시즘과 결합할 수 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전통적 공동체 복원은 비동일자에 대한 배타성을 띠며, 이는 개체성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집단 나르시즘 및 집단 동일시와 결합하여 억압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의 근거를 바탕으로 서술형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전통적인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비동일자에 대한 배타성을 성립조건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개체성의 자유에 대한 억압' 문제가 해소되지 못할 경우 억압적인 원리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가 집단 나르시즘이나 집단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결합하여 사회의 관계들을 억압적인 방식으로 포섭할 위험도 존재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전통적 공동체를 현대 사회에서 복원하려는 시도는 비동일자에 대한 배타성을 성립조건으로 삼으며 개체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억압적 원리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