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예(李藝, 1373년 ~ 1445년 3월 31일(음력 2월 23일))는 본관은 학성. 아호는 학파(鶴坡).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학성 이씨의 시조이다. 울산지역 토성 9개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대대로 향리역을 맡은 중인 계급으로 왜구에게 납치된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은(李殷)을 구출한 공으로 향리역을 면하게 되었고 벼슬을 받아 사대부가 되었다.
이후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한 포로석방의 공훈으로 아전의 역이 면제되고 벼슬길에 올라올라 그를 비롯한 그의 가문 구성원들은 양반이 되었고 그는 사대부의 반열에 올랐고 정2품에 해당되는 관직인 동지중추원사의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으며,에 침입하여 군수 이은(李殷) 등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다른 관리들이 모두 도망가 숨은데 비해 이예는 자진해 군수를 따라가 끝까지 보필해 해적들을 감복시켰다. 후일 조선에서 파견한 통신사의 중재로 1397년 2월 이예는 군수와 함께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왔다. 1416년 1월 27일 유구국(현재의 오키나와)으로 가서, 왜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가 유구국으로 팔려간 백성을 데려오기 위해 유구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유구국에서 44인을 데리고, 같은 해 7월 23일 귀국하였다.
1418년(태종 18년). 대마도 수호 종정무가 사망하자, 조의 사절로 대마도에 파견되어 쌀, 콩, 종이를 부의하여 그의 충성을 후사하였다. 종정무는 치세 기간 도적을 금제하여,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특별히 이예를 파견한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일본을 오가면서 전문 외교관으로 활동횄다.
1443년(세종 25년) 왜적이 변방에 도적질하여 사람과 물건을 약탈해 갔으므로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서 찾아오려 하니, 이예가 자청하여 대마도 체찰사(對馬島體察使)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사행(使行)이었다.
28세인 1400년에서 71세인 1443년까지 44년간 40여회 일본에 임금의 사절로 파견되었다. 그 중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사행(使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13회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44년간의 사행에서 이예가 쇄환해온 조선인 포로의 수가 66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업적
일본인의 조선 입국 허가와 관련한 문인제도와 양국의 교역조건을 규정한 계해약조를 정약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의 명으로 대장경을 일본에 전달하고 조선에 자전(自轉) 물레방아를 도입하였으며 일본식 상가제도의 시행을 건의하는 등 양국 문화 및 경제의 교류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사탕수수의 재배와 보급, 또한 민간에 의한 광물채취자유화와 이에 대한 과세, 화통 및 완구의 재료를 동철에서 무쇠로 변경, 외국 조선기술의 도입 등을 건의한 바 있다.
평가
1910년 (이시기 시호와 증직을 받은자가 임진왜란의 의병으을 중심으로 수백여인에 이른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으로부터 충숙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005년 2월에 문화관광부가 이 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2010년에는 외교통상부가 올해의 외교 인물에 선정하였다.
영화
2013년 6월 1일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 '이예'(감독 이누이 히로아키(乾弘明), 주연 윤태영, 내레이션 고미야 에쓰코(小宮悦子)가 도쿄 시내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이예가 고려시대 향리 계급에서 사대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과정과 그 계기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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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이예의 사회적 신분 변화 과정과 그 원인이 된 사건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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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초기 신분은 울산지역 토성 출신의 향리역을 맡은 중인 계급이었음을 확인한다.
- 울산지역 토성 9개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대대로 향리역을 맡은 중인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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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신분 상승의 첫 번째 계기인 왜구로부터의 군수 구출 사건을 추출한다.
- 왜구에게 납치된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은(李殷)을 구출한 공으로 향리역을 면하게 되었고 벼슬을 받아 사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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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이후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한 포로 석방 공훈이 가문의 양반 신분 확립으로 이어졌음을 연결한다.
- 이후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한 포로석방의 공훈으로 아전의 역이 면제되고 벼슬길에 올라올라 그를 비롯한 그의 가문 구성원들은 양반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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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왜구로부터 군수를 구출하여 향리역을 면하고 사대부가 되었으며, 이후 외교적 공훈을 통해 가문 전체가 양반이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왜구에게 납치된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은(李殷)을 구출한 공으로 향리역을 면하게 되었고 벼슬을 받아 사대부가 되었다.
-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한 포로석방의 공훈으로 아전의 역이 면제되고 벼슬길에 올라올라 그를 비롯한 그의 가문 구성원들은 양반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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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맞춰 신분 변화의 단계와 원인을 정리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향리역을 맡은 중인 계급
- 이은(李殷)을 구출한 공으로 향리역을 면하게 되었고 벼슬을 받아 사대부가 되었다.
- 포로석방의 공훈으로 아전의 역이 면제되고 벼슬길에 올라올라 그를 비롯한 그의 가문 구성원들은 양반이 되었고
최종 답변 (final_answer)
이예는 본래 울산지역 토성으로서 향리역을 맡은 중인 계급이었으나, 왜구에게 납치된 지울산군사 이은을 구출한 공으로 향리역을 면하고 벼슬을 받아 사대부가 되었다. 이후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해 포로를 석방한 공훈을 세움으로써 아전의 역이 면제되고 가문 구성원 전체가 양반이 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이예는 고려시대 왜구에게 납치된 지울산군사 이은을 구출한 공으로 향리역을 면하고 벼슬을 받아 사대부 및 양반 계급으로 신분이 상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