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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달리아 사건 document_id A22062314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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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달리아 사건(Black Dahlia case)은 1947년 1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당시 22세의 여성 엘리자베스 쇼트(Elizabeth Short, 1924년 7월 29일-1947년 1월 15일경)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엽기살인사건이다. 쇼트는 1947년 1월 15일 로스앤젤레스 레이머트 공원에서 허리가 잘려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보스턴 출신이지만 초기 생애를 매사추세츠주 메드퍼드와 플로리다주에서 보냈으며, 이후 부친이 살던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당시 배우지망생이었다고 하지만 어떤 작품에도 출연한 바가 없고 따로 직업이 있지도 않았다. 그는 평생 "블랙달리아(Black Dahlia)"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없었고, 이 별명은 쇼트 사후에 범죄 사건에 별명을 붙이기 좋아하던 신문들이 피해자 쇼트에게 붙인 것이다. 아마 사건 발생 한 해 전에 개봉한 누아르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시신이 발견된 이후 로스앤젤레스 시경찰국은 광범위한 수사를 펼쳐 150명 이상의 용의자를 추적했으나 한 명도 체포하지 못했다. 경찰은 변사체의 지문을 워싱턴 D.C.에 사운드포토(원시적 팩시밀리)로 전송했고, 이 지문이 1943년 체포되었을 때 찍은 쇼트의 지문과 일치했기에 부검도 하기 전에 쇼트의 신원을 일찌감치 알아냈다.p=43 쇼트의 신원이 밝혀지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지의 기자들이 쇼트의 모친 포비 쇼트에게 연락을 취해서 딸이 미인대회에서 수상을 했다고 떠벌렸다.pages=11–12 쇼트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고 나서야 기자들은 모친에게 딸이 사실은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언론은 피해자에게 “블랙달리아”라는 별명을 붙이고 그가 “할리우드 대로를 배회하던 여모험자”라고 소설을 써댔다. 또한 기자들은 이 사건이 색정광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는데, 1월 17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사가 대표적이다. 사건 수사 형사들 중 한 명인 랠프 애스델(Ralph Asdel)은 2003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밝혔다. 1947년 1월 15일 새벽녘 쇼트의 변사체가 발견된 공터 근처에 세단을 주차해둔 남자가 있었다. 그날 잔디 깎은 것을 담은 푸대를 그 공터에 투기하러 갔던 주민이 주차된 세단을 목격했고, 오른쪽 뒷문이 열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세단 차주는 공터에 서 있었는데, 목격자가 공터에 도착하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차주는 자기 차로 다가가 창문으로 차 안을 노려보더니 차에 타고 가 버렸다. 세단 차주를 추적한 결과 지역 식당에서 일하는 자로 밝혀졌으나 결국 그도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애스델은 자신은 그 남자가 범인이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제프 코너스(Jeff Connors)라고도 알려진 아티 레인(Artie Lane), 주소록 주인 마크 한센,pages=148–50 프랜시스 E. 스위니(Francis E. Sweeney) 박사,p=215 조지 호델, 호델의 친구 프레드 섹스턴, 조지 놀턴(George Knowlton),p=3 마지막 목격자 레드 맨리,p=222 패트릭 S. 오라일리(Patrick S. O'Reilly), 클리블랜드 토막살인사건의 용의자 잭 앤더슨 윌슨(Jack Anderson Wilson)p=47 등이 현재까지 유력한 용의자로 회자된다. 그 중 조지 호델의 경우 블랙달리아 사건으로 기소된 적은 없는 사람인데, 죽은 뒤 그 아들인 로스앤젤레스 시경찰국 살인반 형사 스티브 호델(Steve Hodel)이 자기 아버지가 쇼트의 살인범이며 그 외에도 여러 건의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해서 널리 알려졌다. 호델은 블랙달리아 사건 이전에도 자기 비서 루스 스폴딩(Ruth Spaulding)의 죽음에 관련해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기소되지는 않았다. 또한 자기 딸 타마 호델(Tamar Hodel)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국외로 도피하여 1950년에서 1990년까지 필리핀에서 살았다. 추리 여러 범죄서적 저자들과 클리블랜드 형사 피터 메릴로(Peter Merylo)는 블랙달리아 사건과 클리블랜드 토막살인사건(1934년-1938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했다.pages=189–90 하지만 1947년 클리블랜드 사건을 조사해본 LA시경 수사관들은 두 사건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1980년에 클리블랜드 사건의 용의자 잭 앤더슨 윌슨에 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고, 세인트존 형사가 블랙달리아 사건과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그는 자신이 블랙달리아 사건과 관련해서 윌슨을 체포하기 직전까지 갔다고 주장했으나 윌슨은 1982년 2월 4일 화재로 사망했다.pages= 80–97 블랙달리아 사건과 클리블랜드 사건의 관련 가능성은 1992년 NBC의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들에서 다루면서 재조명되었다. 이 방송에 출연한 오스카 프레일리는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이고 엘리엇 네스가 그 범인의 정체를 알았을 것이라는 설을 제기했다. 스티브 호델, 윌리엄 라스무센(William Rasmussen) 등은 블랙달리아 사건과 그 1년 전 시카고에서 수잔 디그넌(Suzanne Degnan, 당시 6세)이 토막살해당한 사건 사이에 연관성을 제기한다. 로스앤젤레스 시경찰국의 도너휴 반장은 블랙달리아 사건과 시카고 립스틱 연쇄살인이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견해를 공공연히 표출했다.p=101 그 근거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쇼트의 사체가 노턴 애비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노턴 애비뉴에서 동쪽으로 세 가곽을 가면 디그넌 대로(Degnan Boulevard)가 있다. 그 길의 이름이 시카고에서 살해당한 수잔 디그넌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디그넌의 몸값 요구 편지와 "블랙 달리아 어벤저"의 편지들 사이에도 지극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의 편지들은 모두 활자를 오려붙여 조합되었고(예컨대 디그넌 편지는 “BuRN This FoR heR SAfTY”였다), 손글자의 경우 문자 P를 실쭉하게 기형으로 썼으며 낱말 하나는 완전히 일치한다.p=122 디그넌 사건에서는 윌리엄 하이렌스라는 자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하이렌스는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서 억지 자백을 했다고 평생 주장했지만,pages= 48–70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생을 감옥에서 보낸 끝에 2012년 3월 5일 일리노이 대학교 의대병원에서 향년 83세로 죽었다. 뿐만 아니라 스티브 호델은 상술했다시피 자기 부친 조지 호델이 쇼트를 죽인 범인이라고 주장했고, 자기 부친이 외과의 훈련을 받은 바 있음을 근거로 제시했다. 존 길모어가 1994년에 쓴 책 'Severed'에서는 블랙달리아 사건과 조제트 바우어도르프 피살사건을 연관짓는다. 바우어도르프는 사교계 명사로, 1944년 웨스트할리우드의 자택에서 목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pages=152–9 길모어는 쇼트가 할리우드 캔틴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고, 바우어도르프는 이곳의 호스티스였다는 점에서 두 여자의 연결고리를 찾는다.pages=152–9 하지만 쇼트가 할리우드 캔틴에서 일했다는 주장은 확고한 사실이 아니며,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 주장을 부정하는 사람으로는 전 『타임스』 편집자 래리 하니슈가 대표적이다. 2017년에 피우 이트웰이 쓴 'Black Dahlia, Red Rose'에서는 장의사 조수 경력이 있던 벨보이 레슬리 딜런(Leslie Dillon)이라는 자를 주목했다. 그는 마크 한센, 제프 코너스와 아는 사이였고, 피니스 브라운 경사는 한센과 관련된 부패경찰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은퇴한 롱비치 시경찰국 형사 버즈 윌리엄스(Buz Williams)는 2000년 롱비치 시경찰국 관내 소식지 'The Rap Sheet'에 블랙달리아 사건에 관한 기사를 기고했다. 윌리엄스의 부친 리처드 윌리엄스(Richard F. Williams)와 동료 콘 켈러(Con Keller)는 블랙달리아 사건 당시 로스앤젤레스 시경찰국 조직범죄반 소속이었다. 기고에 따르면 리처드 윌리엄스는 레슬리 딜런이 살인자였고, 딜런이 고향 오클라호마로 돌아간 뒤 캘리포니아로 송환되지 않은 것은 딜런의 전처 조지아 스티븐슨(Georgia Stevenson)이 일리노이 주지사 애들레이 스티븐슨 2세의 6촌이라서 스티븐슨 주지사가 오클라호마 주지사에게 청탁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한편 켈러는 한센이 범인이라고 믿었는데, 한센은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스웨덴에서 의대를 다녔고 로스앤젤레스 시경찰국 고위 관료들이 참석한 파티들을 주최하곤 했다. 버즈 윌리엄스의 기사에서는 또한 레슬리 딜런이 로스앤젤레스 시경찰국에 300만 불의 손해배상을 소송했으나 기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래리 하니슈는 딜런이 철저한 수사 끝에 혐의를 벗었으며, 딜런이 쇼트가 살해당했을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었음을 지방검사의 문서에서 호의적으로 평가한다며 이런 주장을 평가절하했다. 하니슈는 경찰이 사건을 은폐했을 리는 없으며, 딜런은 오히려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재정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확고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소문과 진위여부 피해자 엘리자베스 쇼트의 사생활과 죽음에 관해서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있으며 그 이야기들의 진위여부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언론과 대중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수사를 심각하게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서로 모순되는 서사들이 떠돌았다.p=111 『포틀랜드 트리뷴』의 앤 마리 디스테파노(Anne Marie DiStefano)는 수 년간 쇼트에 관해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돌아다녔음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는 매춘부였고, 불감증이었으며, 레즈비언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블랙달리아 전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쇠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복잡하게 꼬여만 가고 있다.” 래리 하니슈는 블랙달리아 사건과 엘리자베스 쇼트에 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을 논파했고, 또한 길모어의 책 'Severed'는 “25%는 실수고 50%는 픽션”이라고 그 신뢰성을 절하했다. 그래서 살해당하기 전까지 1주일간 쇼트의 행적은 지금까지도 미궁에 남아 있다. "블랙달리아"라는 이름 사건 직후 신문들은 롱비치의 약국 직원과 손님들이 엘리자베스 쇼트에게 영화 블루달리아(1946년작)에서 따온 “블랙달리아”라는 별명을 붙였다는 보도를 했다.p=212 또한 널리 알려진 소문으로 쇼트가 달리아꽃을 머리에 장식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는 것도 있다. 검찰수사관들의 보고서를 보면 이런 별명들이 사건 이후 신문기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히 적시되어 있다. 이 별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약국에서 쇼트의 지인들을 인터뷰한 『헤럴드익스프레스』지 기자 베보 민스였다.p=39 그 외에도 아그네스 언더우드, 잭 스미스 등이 이 별명을 만든 사람들로 거론된다. 성생활 관련 소문 길모어의 'Severed'를 비롯한 많은 범죄실록들은 쇼트가 1940년대에 여러 차례 로스앤젤레스에 살았거나 방문을 했으며, 할리우드 캔틴에서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쇼트는 할리우드 캔틴이 1945년에 문을 닫은 뒤에야 로스앤젤레스에 이사를 왔다는 것을 밝힌 하니슈에 의해 논파되었다. 등은 이런 주장들의 진위여부를 의심한다. 하니슈에 따르면 사건 당시 대배심에서 이미 쇼트가 성매매를 했다는 증거가 없음이 밝혀져 있다. 그 중에는 시카고 경찰관도 한 명 있었다. 연방수사국 문서에도 쇼트의 애인들 중 한 명의 증언이 수록되어 있다. 마이클 뉴턴의 책에는 쇼트의 부검보고서가 통째로 인용되어 있는데,pages=44–6 부검보고서에서는 쇼트의 자궁이 “작다”고만 되어 있지 그 외에 발육부진이라던가 특정 장기가 해부학적으로 비정상이라고 시사할 만한 내용은 없다.p=187p=46 또한 부검 보고서에서는 쇼트에게 임신 경험이 없다고도 명시되어 있기에 또다른 소문인 임신설 역시 반박된다. 『타임』지는 이 사건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미제사건들 중 하나로 선정했다. 쇼트의 삶과 죽음은 픽션과 논픽션을 막론하고 다양한 책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제임스 엘로이의 1987년 소설 『블랙달리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살인사건 그 자체 뿐 아니라 2차대전 종전 직후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의 정치, 범죄, 부패, 피해망상을 공시적으로 조망했다는 의의가 있다.pages=209–10 이 소설은 200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2011년-2018년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에서도 실제와는 많이 다르게 블랙달리아 사건이 다루어진다. 두 작품에서 엘리자베스 쇼트 역은 각각 루시 아너즈, 미나 수바리가 연기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피해자 엘리자베스 쇼트에게 붙여진 '블랙달리아(Black Dahlia)'라는 별명은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블랙달리아'라는 별명의 유래와 형성 경위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별명의 기원과 관련된 정보를 본문에서 추출한다.

    • 이 별명은 쇼트 사후에 범죄 사건에 별명을 붙이기 좋아하던 신문들이 피해자 쇼트에게 붙인 것이다.
    • 아마 사건 발생 한 해 전에 개봉한 누아르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이 별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약국에서 쇼트의 지인들을 인터뷰한 『헤럴드익스프레스』지 기자 베보 민스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별명의 주체, 기원(영화), 최초 사용자를 선별한다.

    • 신문들이 피해자 쇼트에게 붙인 것이다.
    • 누아르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헤럴드익스프레스』지 기자 베보 민스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신문사들이 영화 제목에서 영감을 얻어 별명을 만들었으며, 특정 기자가 이를 처음 사용했다는 인과관계를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별명의 유래와 최초 사용자를 포함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 신문들이 피해자 쇼트에게 붙인 것이다.
    •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이 별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약국에서 쇼트의 지인들을 인터뷰한 『헤럴드익스프레스』지 기자 베보 민스였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에 근거한 완전한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신문들이 피해자 쇼트에게 붙인 것이다.
    •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이 별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약국에서 쇼트의 지인들을 인터뷰한 『헤럴드익스프레스』지 기자 베보 민스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블랙달리아'라는 별명은 엘리자베스 쇼트가 생전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건 사후에 범죄 사건에 별명을 붙이기 좋아하던 신문들이 붙인 것이다. 이 별명은 사건 발생 한 해 전에 개봉한 누아르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며, 『헤럴드익스프레스』지의 기자 베보 민스가 쇼트의 지인들을 인터뷰하며 처음 사용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피해자 엘리자베스 쇼트의 별명인 '블랙달리아'는 쇼트 사후 신문 기자들이 사건 발생 한 해 전에 개봉한 누아르 영화 『블루달리아』에서 빗대어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