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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색슨 연대기 document_id A22062315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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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색슨 연대기(앵글로색슨 크로니클)는 앵글로색슨어로 앵글로색슨인의 역사를 기록한 편년체 연대기들을 취합한 것이다. 원본은 9세기 후반 웨식스에서 쓰여졌을 것으로 짐작되며 아마도 알프레드 대왕(재위 871년 - 899년) 치세 동안 집필되었을 것이다. 원본이 작성된 후 여러 사본이 만들어져 잉글랜드 각지의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그 이후 각각의 사본마다 독립적으로 가필되었다. 이 사본들 가운데 하나는 1154년까지도 계속하여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연대기는 9 종으로 이것들은 모두 원본이 아닌 사본이다. 역사적 가치도 사본마다 제각각인데 가장 오래된 것은 피터버러 연대기로 알프레드 대왕 치세 끝무렵 피터버러 대수도원에서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원래의 피터버러 연대기는 1116년에 있었던 수도원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 이후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9 종의 연대기 사본은 대부분의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연대기에서 언급되는 사건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은 기원전 60년에 있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브리튼 침공으로 그 이후 연대기가 편집된 당시의 일까지 해를 바꿔가며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라고 부를 때는 이 9 종의 사본을 모두 아울러 일컸는 말이다. 연대기의 서술은 공평하지 않다. 다른 중세 시기의 기로들과 비교하면 어떤 사건은 누락되어 있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한쪽 편에 서서 사건을 기술한다. 연대기 사본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본을 취합한 "연대기"는 로마의 브리타니아 지배 종식에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사이 잉글랜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 밖에 없는 중요한 사료이다. 기록으로서의 가치 뿐만아니라 언어학적 가치도 매우 큰데, 특히 화재 이후 새롭게 편집된 피터버러 연대기는 중세 영어 초기의 용례를 제공한다. 현존하는 9 개의 사본 가운데 7 개는 대영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고, 나머지 2 개는 각각 옥스퍼드의 보들리 도서관과 캠브리지 코퍼스 크리스티 컬리지의 파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배경 앵글로색슨인은 지금의 덴마크를 비롯한 유틀란트 반도를 중심으로 저지대 국가 부근에 살았던 게르만족의 후손들이다. 이들의 선조는 앵글인, 색슨인, 유트인 등이지만 잉글랜드에 정착할 무렵에는 이미 서로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동질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브리타니아 시기부터 용병으로 진출하여 있었고 로마가 브리튼섬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5세기 무렵 정착하여 왕국들을 세웠다.74 - 78쪽 앵글로색슨인이 세운 왕국으로는 에식스(Essex, 동색슨), 서식스(Sussex, 남색슨), 웨식스(Wessex, 서색슨), 머시아(Mercia, 변경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 북부 험버강변 국가), 켄트(Kent, 귀퉁이땅),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 동잉글랜드)의 일곱 개 국가가 있었으며 흔히 앵글로색슨 칠왕국으로 불린다. 9세기 무렵 잉글랜드의 왕국들은 새로운 적을 만나게 되었다. 바이킹 또는 데인인으로 불리는 북유럽 지역의 부족들이 침공해 왔고 이전의 앵글로색슨인이 그랬던 것처럼 영토를 점령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영토는 데인로로 불렸으며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 국가들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웨식스의 알프레드 대왕은 잉글랜드 남부의 에식스, 머시아 등의 왕국을 끌어들여 맞섰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878년 바이킹 구스룸의 군대와 싸워 이긴 후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잉글랜드는 데인인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으며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중반까지는 덴마크의 크누트 대왕이 건설한 북해 제국의 속령 상태였다. 웨식스가 스스로를 색슨으로 강조하여 다른 지역과 구분한 것은 정통성에 대한 선전 목적에 따른 것이다. 알프레드 대왕은 오늘날 이길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대와 싸워 잉글랜드를 구원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의 관점에서 잉글랜드는 아직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늘날 잉글랜드에 해당하는 낱말인 앙겔퀸(Angelcynn)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알프레드 자신이었다는 점은 당시 상황을 감안할 때 시사하는 점이 크다. 당시 잉글랜드의 다른 왕국들은 굳이 웨식스를 수장으로 삼을 이유가 없었다. 그 이전까지 패권을 쥐고 있던 머시아가 다시 수장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데인로의 바이킹들을 수장으로 삼는 것도 가능했다.가 9세기 후반 웨식스에서 집필되었을 것이라고 여긴다.|group=notes}} 프랭크 스탠튼은 서술된 내용을 볼 때 첫 원본은 왕실이나 귀족이 아니라 세속적 이유로 작성되었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작성 장소를 "서머싯과 도싯 사이의 남서부 지방"으로 추정하였다. 원본이 집필된 후 각지의 수도원에서 보내져 사본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원의 사본들은 저마다 독립적으로 가필되었는데 소실된 부분을 다시 작성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면서 서로 다른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윈체스터 연대기(또는 파커 연대기로도 불린다)로 891년까지 역사를 한 사람의 필경사가 작성하였다. 필경사는 연대기 여백에 DDCCXCII 이라고 제작 연도를 밝혀두어 파커 연대기를 작성한 필경사가 892년에 집필을 완료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윈체스터 연대기는 후대에 다른 필경사들이 가필한 부분이 있다. 다른 사료를 보아도 윈체스터 연대기의 제작 연도를 892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솔즈베리의 주교였던 아세르가 893년 집필한 알프레트 왕의 삶에서 이 연대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존하는 윈체스터 연대기는 최소 두 번 이상 다시 쓰인 것으로 이 사본의 첫 집필이 윈체스터에서 있었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첫 원본의 제작 시기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알프레드 대왕(재위 871년 - 899년) 시기로 고대 영어 문어체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연대기 사본이 알프레드의 왕위 계승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존 연대기 현존하는 연대기 9 개 가운데 7 개는 앵글로색슨어라고도 불리는 고대 영어로 작성되었다. 나머지 2 개 가운데 하나인 켄터베리 이중언어 개요서는 고대 영어로 쓰인 부분과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한 부분으로 되어 있고, 다른 하나인 피터버러 연대기는 대체로 고대 영어로 작성되어 있지만 마지막 부분은 초기 중세 영어로 작성되었다. 한편 가장 오래된 것인 윈체스터 연대기는 1070년까지 사용되었던 머시아 방언으로 작성되었고 1075년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1861년 벤저민 소프는 6개의 사본을 묶어 롤스 시리즈를 발간하였다. 그는 A에서 F까지 기호를 부여하여 사본을 구분하였다. 소프는 또한 1731년 화재가 난 애쉬번햄 하우스에서 타다 남은 일곱번째 사본을 발견하고 이 것에 기호 G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관습에 따라 이후 발견 된 두 사본에는 각각 H와 I가 기호로 부여되었다. 현존하는 사본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현존하는 모든 연대기 사본은 756년에서 845년 사이의 사건 기록에 오류를 보인다. 그러나 세인트 니어츠 연보의 저자는 이 부분을 바로잡았다. 애덜위어드 연대기 역시 연대기 오류가 있지만 885년 이후의 기록에는 누락된 부분이 없다. 반면에 현존하는 연대기 사본은 모두 이 부분에 누락이 있다. 이로 보아 현존 하는 사본은 모두 최소 두 번 이상 다시 편집된 것으로 원본과는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의 역사 >> 윈체스터 연대기 사본 [A]로 불리는 윈체스터 연대기 (또는 파커 연대기)는 현존하는 연대기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기록은 올드 민스터에서 시작하였고 알프레드 재위 말까지 이어졌다. 먼저 알프레드 대왕의 가계를 설명하는 서문이 있고, 기원전 60년부터 편년체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975년 윈체스터 연대기는 알프레드 법령집, 그리고 924년 출간된 웨식스의 계보와 함께 묶여 출간되었고 11세기 초 캔터버리로 옮겨졌다. 캔터버리에 있는 동안 연대기의 일부 구절들이 삭제되었고 이를 참조하여 사본 [E]가 제작되었다. 이 사본 역시 기원전 60세기부터 편년체로 역사를 기록하여 977년의 사건까지 기록하고 있다. 현존하는 사본은 [A]에서 파생되었으나 10세기에 더욱 확장시킨 계보를 서문을 겸해 싣고 있다. 사본 [B]가 애빙던으로 옮겨 온 까닭은 11세기 제작된 사본 [C]를 집필할 참고본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사본 [C]의 제작이 끝난 뒤 사본 [B]는 캔터버리에 보관되었다. 이 사본도 사본 [A]와 같이 말미에 교황과 캔터버리 대주교의 명단 목록을 수록하고 있다. 내용은 기원전 60년에서 490년에 이르는 1부와 1048년까지의 사건을 기록한 2부로 나뉘어 있다. 사본 [B]와 사본 [C]는 491년과 652년의 사건 기술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어 [C]가 [B] 이외의 다른 사본도 참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본은 또한 알프레드의 딸이자 머시아의 여왕이었던 애셀플래드가 902년에서 924년까지 추진하였던 머시아 토지 등기에 대해 915년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애빙던 연대기 II의 기록은 1066년까지 이어지며 스탬퍼드브리지 전투를 마지막으로 기록이 그친다. 12세기에 간단한 서술 몇 줄이 추가되었다. 이 연대기에는 다른 사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다. 사본 [D]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머시아 토지 등기와 같은 사건들은 빠져있고 937년 있었던 브루넌버 전투에 대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뒤쪽으로 1131년까지의 기록이 추가되었는데 후대에 연대기를 보관하고 있던 수도원에서 그때 그때 간략한 기록을 추가한 것이다. 이 기록들 뒤로 1154년까지의 사건을 정리한 다른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이 마지막 기록이 언제 이루어졌는 지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중세 영어로 작성되어 있다. 사본 [E]는 1633년에서 1654년 사이에 캔터버리 대주교로 있던 윌리엄 라우드가 소장하여 라우드 연대기로도 불린다. 윌리엄 리즐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켄터베리 이중언어 개요서 1100년 무렵 캔터버리 대성당에서 제작된 사본 [F]는 켄터베리 이중언어 개요서로 불린다. 사본 [A]를 참조하여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본은 고대 영어와 라틴어 두 언어로 쓰였다. 사본 [D]나 [E]와 같이 계보를 서문으로 실었지만 브루넌버 전투에 대한 시는 빠져있다. 이 사본엔 많은 주석과 행간 첨언이 달려있는데 어떤 것은 참조한 사본에 달려있던 것을 옮긴 것이고 어떤 것은 이 사본의 고유한 주석이다. 캔터버리의 앤셀름이 사망한 1109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대부분 영어로 쓰였지만 일부는 라틴어로 쓰였다. 소실된 연대기 더럼 도서관의 도서 목록에는 지금은 소실 된 연대기가 기록되어 있다. 목록에 등재된 것은 둘로 하나는 크로니카 듀오 앙글리카(cronica duo Anglica, 앙글리아 연대기)이고 다른 하나는 파커가 기증한 히스트 앙글리애 삭소니카(Hist. Angliae Saxonica, 앵글로색슨의 역사)이다. 출전, 신뢰도, 일자 다른 모든 사료와 마찬가지로 연대기 역시 인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초기의 기록은 연대기 이전에 작성된 잉글랜드의 역사에 대한 다른 기록들과 같이 신빙성이 매우 낮다. 110년까지의 기록은 연대기 집필 당시 전해져 오던 간략한 세계사 백과인 베다 베네라빌리스의 역사 개요를 참조하였다. 연대기는 노섬브리아와 머시아 국왕들을 위한 연보 및 계보를 작성하였고 웨식스 주교들의 목록도 제공하고 있다. 이것들은 각기 다른 출전을 사용하여 작성되었을 것이다. 661년 있었던 켄왈의 전투를 "동쪽"에서 있었던 일로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가지고 있던 당대 기록을 연대기 편집에 다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도 오래된 고대 역사에 대한 서술이 요약된 뒤로 이어지는 당대 사건에 대한 기록은 7세기 이후 웨식스에서 있었던 일들로 시작된다.{{refn|연대기에 나타나는 최초의 당대 기록은 648년의 일이다. 연대기는 부활절 예배의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성직자들은 다음해 축제의 날짜를 확정하는데 연대기를 이용하였다. 이때문에 연대기 행간에는 천문학적 일자가 다음해 특정 축일까지의 날수와 함께 기록되었다. 그러나 연대기가 점차 역사 기록서의 모양을 갖추게 되자 사건에 대한 주석이 늘면서 축일을 셈하는 기록은 사라지게 되었다. 후대의 기록은 당대의 큰 사건을 연보 맨 앞에 두고 역사적 설명을 담게 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일자 역시 마찬가지로 주의가 필요한데 후대에 가필하면서 연대 표기에 종종 오류를 남겼다. 예를 들어 사본 [D]는 1044년 연보를 누락한 채 1045년에서 10052년까지의 기록을 남기면서 연대기의 왼쪽 편에 연대를 표기했기 때문에 이 기간의 날짜들은 정확하지가 않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오늘날과 같이 새해의 첫날을 1월 1일로 삼는 관습이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사본 [E]에 작성된 1091년의 새해 첫날은 크리스마스이다. 이는 당시까지도 이어지던 옛 관습을 따른 것이다. 한편 사본 [C]는 당시 춘분으로 삼았던 3월 25일을 1044년의 새해 첫 날로 여겼다. 이 사본은 에드워드 참회왕의 결혼식이 열린 1045년 1월 23일을 포함하여 1045년 4월 22일까지 1044년으로 기록하였다. 한편 9월을 새해의 출발로 보는 사본도 있다. 당시 연도의 표기는 로마 숫자를 따랐고 아라비아 숫자는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각각의 사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제작되었고 제작자의 편향이 반영되어 있다. 연대기 배포의 목적에는 알프레드 대왕이 자신의 영광을 부각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선전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group=notes 연대기가 웨식스를 중심에 놓고 다른 앵글로색슨 왕국들을 서술하며 바이킹을 침략자로 그리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829년의 기록에서 연대기는 노섬브리아를 침공한 에그버트를 기록하면서 그가 머시아와 에식스를 정복한뒤 모든 잉글랜드 국가의 패자를 뜻하는 브레트왈다(Bretwalda, 브리튼의 왕)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가 노섬브리아로 진격하자 노섬브리아는 복속을 약속하면서 평화를 제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3세기 버킹엄셔 출신 연대기 사가인 웬도버의 로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로저는 "에그버트가 남부 왕국들을 굴복시킨 뒤 많은 군사로 노섬브리아를 침공하였고 곳곳을 돌며 약탈을 일삼자 노섬브리아 왕은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때때로 사본 사이에서도 기록이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스트앵글리아의 백작이자 머시아 백작 레오프릭의 아들인 앨프가르는 1055년 추방당했는데, 사본 [C], [D], [E]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앨프가르에 대해선 또 다른 상충되는 기록이 있다. 그는 1058년 머시아의 백작이 되었고 그해 다시 추방되었는데 이 시기에 대해선 오직 사본 [D]만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여기 백작 앨프가르가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는 노르웨이로부터 그루피드의 도움을 받아 군대를 배에 태워 함께 돌아와 폭력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으로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 지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더럼의 사이먼 역시 연대기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영어 학자인 니콜라스 호우(Nicholas Howe, 1953년–2006년)는 연대기와 교회사를 "앵글로색슨의 역사상 위대한 두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잉글랜드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많은 기록이 남겨졌으나 위 두 문서를 제외하면 원래의 형태가 그대로 남은 것이 없다. 연대기의 후대 기록이 사본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료가 당대 사건의 목격자일뿐만 아니라 해석자라는 점을 일깨운다. 또한 초기 기록들 역시 다른 사료에서는 볼 수 없는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연대기는 사료로서 뿐만아니라 영어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로서도 중요하다. 벤자민 소르프(Benjamin Thorpe)가 1861년 사본 [A]에서 [F]까지를 구분하여 출간 롤스 시리즈를 출간하여 연대기의 표준을 대체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앵글로색슨 연대기라고 부를 때,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이 요구하는 '앵글로색슨 연대기'라는 용어의 정의를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앵글로색슨 연대기'라는 명칭이 사용된 문장을 찾는다.

    • 앵글로색슨 연대기라고 부를 때는 이 9 종의 사본을 모두 아울러 일컸는 말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용어의 정의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구절을 선별한다.

    • 앵글로색슨 연대기라고 부를 때는 이 9 종의 사본을 모두 아울러 일컸는 말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앞서 언급된 '9 종의 연대기 사본'이 무엇인지 문맥을 통해 연결한다.

    • 현재 남아 있는 연대기는 9 종으로 이것들은 모두 원본이 아닌 사본이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9 종의 사본을 모두 아우르는 명칭임을 결론짓는다.

    • 이 9 종의 사본을 모두 아울러 일컸는 말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기술한다.

    • 이 9 종의 사본을 모두 아울러 일컸는 말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현재 남아 있는 9종의 연대기 사본을 모두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앵글로색슨 연대기라는 명칭은 현존하는 9종의 사본 모두를 아울러 일컫는 집합적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