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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융 document_id A220623159524

분류
문화
라벨 상태 (label_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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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한융(韓融, ? ~ ?)은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원장(元長)이며 영천군 무양현(舞陽縣) 사람이다. 순숙·종호·진식과 함께 영천에서 명성을 떨친 영장(嬴長) 한소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말솜씨에 능하여 장구(章句)를 익히지 않았다. <heading>적</heading> 순상·가표·이응·왕열과 함께 진식을 사사하였고, 명성이 대단하여 다섯 부(府)에서 벽소(辟召)하였다. 중평 6년(189년), 순상·진기 등과 함께 박사(博士)로 임용되었으나, 이듬해 조정에 도착하기 전에 동탁이 정권을 차지하였다. 한융은 다시 공거(公車)로 부름을 받아 상서(尙書)가 되었다. 같은 해, 발해태수 원소가 제후들을 규합하여 동탁에게 반기를 들었다(반동탁연합). 대홍려 한융은 음수·호모반·오수·왕괴(王瓌)와 함께 반란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각지로 파견되었으나 모두 제후들의 손에 죽었고, 오로지 한융만 명성이 있어 목숨을 보전하였다. 흥평 2년(195년), 헌제는 이각과 곽사를 피하여 장안을 탈출하였다. 태복 한융은 태위 양표 등의 대신들과 함께 헌제를 호위하였고, 12월 헌제의 명으로 홍농으로 파견되어 이각과 곽사의 화친을 성사시키고 궁녀와 관료·거마를 돌려받았다. 한융은 일흔 살에 죽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한융의 아버지인 한소는 어떤 인물로 묘사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한융의 아버지인 한소의 인물적 특징과 명성에 대해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한융의 부친인 한소와 관련된 정보를 탐색한다.

    • 영천에서 명성을 떨친 영장(嬴長) 한소의 아들로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한소가 영천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직책은 영장이었다는 점을 확인한다.

    • 영천에서 명성을 떨친 영장(嬴長) 한소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한소의 직책(영장)과 지역적 명성을 결합하여 인물상을 구성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한소는 영천에서 명성을 떨쳤던 영장(嬴長)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 영천에서 명성을 떨친 영장(嬴長) 한소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에 근거하여 서술형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영천에서 명성을 떨친 영장(嬴長) 한소
최종 답변 (final_answer)
한소는 영천에서 명성을 떨쳤던 영장(嬴長)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한소는 순숙·종호·진식과 함께 영천에서 명성을 떨친 영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