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부전교회''(釜田敎會, Bujeon Presbyterian Church)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중앙대로 1276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1932년]] [[3월 5일]] 부산 부전동 400-10에서 부산진교회 서면기도소로 시작하였는데 1934년 부전교회로 개칭하였다. 1934년 한익동 목사가 부임하여 사역하였고 1953년 한병기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가 크게 성장하였다. 서울 내수동교회 출신인 박성규 목사가 현재 담임으로 사역하고 있다.
==한병기 목사==
부전교회는 한병기 목사를 통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다.한병기(韓柄基) 목사는 1913년 4월 6일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삼억동리에서 3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서당에 입학하여 맹자, 논어까지 한학을 공부하고, 내금강면에 있는 영화의숙(永華義塾)이라 하는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보통학교 과정을 3년 만에 졸업하였다. 그는 향학열이 불타 14세에 당시 일본 고베에 있는 중앙신학교 학생이었던 김성태의 주선으로 청운의 뜻을 품고, 도일(渡日)하였다.
일본에서 그는 한인교회인 금궁(今宮)교회를 다니며 소학교 정규과정을 마친 후, 세이기(成器)상업학교에 진학하여 5년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후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대학(關西大學)에 입학하여 법학 전문부 3년, 대학부 3년, 총 6년간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방학 때에 집에 오면 할아버지는 함께 자면서 그에게 목사가 되라는 권고를 계속했으나 법대생 한병기는 전혀 개의치 않고, 변호사가 되어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재학 중에 만주국 고등고시(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는 일본 고등고시를 치려는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그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얼마동안 회양중학교, 신안중학교, 내금강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한 공산당 치하에서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은 것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감시와 학대를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국군이 북진한 그 해 12월 8일에 월남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나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노부모와 어린처자를 두고 “잠시 다녀오마!” 작별 인사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세가 회복되어 고향땅을 밟을 수 있다 생각하고, 시계와 만년필도 다 빼놓고 나왔다. 그렇게 헤어진 후 그는 54년간 가족(사모와 1남 2녀)을 그리워하며 정절을 지키고, 2004년 11월 4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목회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가 월남하여 금강산 시절부터 친구였던 김형식 목사가 부산 부전교회에서 목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찾아갔다. 김 목사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 목사는 한병기를 교회에 거주하게 하면서 프린트 하는 일, 글 쓰는 일을 하게 하였다. 그는 김 목사의 특별한 사랑과 신학교에 가라는 권유를 받고, 기도하며 묵상하던 중에 목회자가 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사명감을 느껴 1951년 9월, 대구에서 시작한 총회신학교 본과에 입학하였다. 할아버지는 늘 그에게 너는 맏아들로 하나님께 바쳐진 몸이니 신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시고, 기도해주었는데 그 기도의 응답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래 있다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입학 당시에 한병기는 38세였다. 한병기 전도사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육법전서를 성경전서로 바꾸어 잡았다.
그는 대구에서 공부하는 동안 대구 문화교회에서 전도사로 봉사하였다. 1953년 12월에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하기 1개월 전인 1953년 11월에 부전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김형식 목사를 보좌하면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복음학원과 성민(聖民)중학교를 맡아서 교육 사업에도 힘을 썼다. 그는 1955년 7월 19일에 경남노회 노회장인 노진현 목사에게서 목사 안수를 받았기에, 항상 노 목사에게 감사하고 존경했다. 그가 안수 받을 때 나이는 43세이었다. 김형식 목사가 사임하게 되자, 학원의 일은 그만두고 목회에만 전념하였다. 그 후 2년이 지나 부전교회의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는 목회자로서 재충전을 위해서 1966년에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박형룡 박사를 지도교수로 모시고 조직 신학을 전공하여 1967년에 마쳤다.
그는 신학교 재학시절 대구 문화교회 전도사 생활(2년)을 제외하고는 1953년부터 1983년 7월 은퇴하기까지 30 여년을 부전교회에서만 줄곧 목양에 전념했으니, 보기 드문 목회자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63회 총회장(1978. 9-1979. 9)으로 섬겼다. 그는 그가 품은 개혁주의 신학과 겸손한 인격으로 총회를 바르게 인도하였다. 그는 목회자인 동시에 교단을 바르게 인도한 총회장이기도 했다.
==주요 사역==
부전교회의 주 사역은 예배와 교제, 훈련과 섬김, 그리고 복음 전파[전도와 선교]로 요약할 수 있다. 어린이 도서관, 아트홀, 체육관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교구사역]''
부전교회 교구는 모두 7개 교구와 40개의 지역, 300여개의 목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교구에는 평신도 리더가 주체가 되어 목장 단위로 소그룹 모임을 가지게 됩니다.
교구는 5개 내외의. 지역으로 구성된 지역공동체이며, 교구 내 일꾼으로는 교구교역자, 교구장, 부교구장이 있습니다. 지역목장은 5개 내외의 목장으로 구성된
평신도 목장 공동체이며, 지역목장 일꾼으로는 지역목자가 있습니다. 목장은 5-12명으로 이루어진 평신도 소그룹 공동체이며, 목자와 예비목자, 목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구 내에는 모임 구성원에 따라서, 장년 성도들이 모여 소그룹 모임을 가지는 일반목장, 70세 이상의 성도들이 모여 소그룹 모임을 가지는 행복한목장, 20-45세 사이의
기혼 성도들이 모여 소그룹 모임을 가지는 헵시바목장이 있습니다. 현재 목자들을 훈련할 수 있는 수요목자모임을 수요일 저녁마다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목자를 세우기 위한
정기적인 예비목자모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헤세드, 미스바, 아바딤 : 대학청년부사역]''
부전교회의 대학청년부는 헤세드(대학부, 20-27세), 미스바(1청년부, 28-34세), 아바딤(2청년부, 35-45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예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훈련), 공동체의 지체들과 한 몸을 이루고(친교), 지역과 민족을 섬기며(섬김), 열방까지 복음을 증거하는(선교) 청년공동체이다.
''[주일학교 : 교육사역원]''
부전교회 교육사역원[다음세대]
부전교회 교육부는 다음세대를 위한 예배와 신앙훈련, 교제와 자녀교육의 토대를 쌓아가는 부전교회의 현재와 미래가 담겨있는 사역기관입니다. 부전교회 교육부는 학생들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과 가장마다 온전한 신앙계승을 위해서 학생의 신앙생활과 함께 가정예배를 세워감으로 다음세대가 믿음 안에서 자라나며 또한 신앙가정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통해서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충만히 경험하여 지역과 부산과 열방을 섬기고 주님과 함께 꿈꾸었던 비전을 따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
교육사역원 사명선언문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는 성령충만한 다음세대
성경적 근거 – 누가복음 24장 13-48절 핵심구절 24:32
키워드 – 동행, 말씀, 제자
핵심가치 – 동행하는 하나님을 발견함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순종함 학생의 신앙여정에 동행함
교육목적 – 예수님의 제자를 길러냄
교육목표 – 학생 목자와 예비목자를 양성한다.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는 학생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학생
사역에 동역자가 되는 학생
조직편성
교육사역원에는 4개의 주요기관에 10명의 전문사역자와 400여명의 교사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훈련기관, 가정기관 협력기관
주일학교는 각각 90시 40분에 1부예배와 12시에 2부예배를 드립니다.
훈련기관에서 태아학교와 그로잉252 그리고 사랑부 토요학교는 토요일에 2회에 걸쳐 학기제로 운영되며, 꿈키예배와 어와나 청소년 성장반은 주일에 진행됩니다.
헵시바는 30세-45세를 기준으로하여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중그룹입니다. 개인적 신앙은 교구에 소속되어 목양을 받고 가정예배와 신앙계승에 관하여는 교육사역원의 지도를 따라 신앙가정세우기 그리고 기독학부모를 세우는 유바디교육을 도입한 가정기관입니다.
협력기관에는 여러사역을 돕고 연합사역을 진행할 수 있는 유익한 팀들입니다. 매주 열리는 달란트 스토어는 아이들의 방앗간이 되고 미션콰이어는 음악적 재능을 발굴하고 지도하는 어린이 연합찬양대입니다. 기독교사모임은 어린이집부터 고등교사까지 모든 교육관련 종사자들의 모임으로 학교와 교회교육이 함께할 수있도록 기도하고 나눔을 가지는 기독교사모임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역위원회에는 사역원장과 교역자, 각 부서 부장과 기관장들이 모여 사역을 논의하고 협력하는 연합의 장입니다. 사역위원회를 통해서 더 깊이있고 풍성한 신앙교육이 발전되고 있습니다.
== 연혁 ==
== 역대 담임목사 ==
== 각주 ==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부전교회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한병기 목사가 기여한 핵심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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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부전교회의 성장 과정에서 한병기 목사가 수행한 역할과 그 의의를 파악한다.
- 부전교회는 한병기 목사를 통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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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한병기 목사의 부임 시기와 사역 기간을 확인한다.
- 1953년 한병기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가 크게 성장하였다.
- 1953년부터 1983년 7월 은퇴하기까지 30 여년을 부전교회에서만 줄곧 목양에 전념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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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교회 성장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역 내용을 선별한다.
- 1953년 11월에 부전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김형식 목사를 보좌하면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복음학원과 성민(聖民)중학교를 맡아서 교육 사업에도 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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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장기적인 목양 전념과 교육 사업 수행이 교회의 성장에 기여했음을 연결한다.
- 30 여년을 부전교회에서만 줄곧 목양에 전념했으니, 보기 드문 목회자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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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한병기 목사가 1953년 부임 이후 약 30여 년간 부전교회에서 목양에 전념하며 교회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시켰음을 결론짓는다.
- 부전교회는 한병기 목사를 통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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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한병기 목사의 장기적인 목양 전념과 교육 사업 기여를 중심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1953년 한병기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가 크게 성장하였다.
- 30 여년을 부전교회에서만 줄곧 목양에 전념했으니
최종 답변 (final_answer)
한병기 목사는 1953년 부임한 이후 약 30여 년 동안 부전교회에서 줄곧 목양에 전념하였으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복음학원과 성민중학교의 교육 사업에도 힘을 쏟음으로써 부전교회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한병기 목사는 30여 년간 부전교회에서 목양에 전념하고 복음학원과 성민중학교의 교육 사업에 힘써 부전교회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