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파에스툼'' (Paestum)은 [[마그나 그라이키아]]에 속한 [[티레니아 해]] 연안의 고대 도시이다. 파에스틈 유적에는 기원전 600년에서 기원전 450년 사이에 [[도리스 양식]]으로 지어진 세 개의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유적지는 개방되어 있으며, 박물관이 있어 도시에서 발견된 유물과 셀레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도시를 처음 세웠을 당시의 이름은 ''포세이도니아'' (Poseidonia)였다. 이후 [[루카니인]]들에게 정복당했으며, [[고대 로마]]에 복속되었다. 루카니인들은 도시를 ''파이스토스'' (Paistos)로 불렀고, 로마인들이 현재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
첫번째 헤라 신전은 기원전 550년 경에 그리스인들이 지은 것으로, 파에스툼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 18세기의 고고학자들은 이것을 고대 로마의 건물로 잘못 판단하여 바실리카로 추정하였다.
이후 신전에 새겨진 글귀나 테라코타 조각을 확인한 결과 헤라를 섬겼던 신전으로 밝혀졌다. 또한 신전 앞에서 [[제단]]이 발굴되어, 일반적인 그리스 신전처럼 야외에서 [[제물]]을 바치고 종교 의식을 거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전의 기둥에는 엔타시스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서 초기 양식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몇몇 주두에서는 채색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신전은 보통의 그리스 신전보다는 좌우로 넓은 편인데, [[켈라]] 가운데에 기둥 일곱개를 세우고 두 개의 문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전에 두 신을 함께 모셨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긴 면에는 18개의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이 문을 가리지 않도록 짧은 면에는 홀수인 9개의 기둥을 세운 것 또한 특이한 점이다.
두번째 헤라 신전은 기원전 460년에서 기원전 450년 경에 지어졌다. 헤라 신전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포세이돈 신전으로 잘못 알려졌다. 일반적인 신전의 기둥 세로홈은 20개지만 이 신전의 기둥 세로홈은 24개이며, 기둥이 굵고 기둥의 간격이 좁은 편이다. 신전에서는 제우스 및 다른 신들을 섬기기도 하였다. 신전의 동쪽에는 큰 제단과 작은 제단이 하나씩 남아있는데, 로마 시대에 기존의 큰 제단 자리로 [[포룸]]으로 가는 길이 지나가게 되면서 작은 것을 새로 만든 것이다.
유적지의 북쪽 가장 높은 곳에는 기원전 500년 경에 지어진 아테나 신전이 있다. 예전에는 [[케레스]] 신전으로 잘못 알려졌다. 과도기 양식의 신전으로, 이오니아 양식과 도리스 양식이 함께 나타난다. 바닥에는 세 개의 중세 기독교식 무덤이 있어서, 중세에는 [[교회당]]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유적===
유적지 중심부에는 [[아고라]]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 [[포룸]]이 있다. 포룸의 북쪽에는 기원전 200년 경에 지어져 카피톨리누스 삼신인 [[유노 (신화)|유노]], [[유피테르]], [[미네르바]]를 모신 작은 로마 신전이 있다.
포룸의 북동쪽에는 작은 [[원형극장]]이 있는데, 서쪽 절반은 보존되어 있으나 동쪽 절반은 1930년에 유적지를 지나는 도로를 놓으면서 훼손되었다. 계단식 좌석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회소도 있었는데, 불레우테리온(bouleuterion)이나 에클레시아스테리온(ekklesiasterion)으로 추정된다. 집회소에는 지붕은 없었지만, [[아케이드 (건축)|아케이드]]가 있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로마 시대에는 기능을 잃고 흙으로 메워졌다.
포룸과 아테나 신전 인근의 [[헤로온]] (heroon)은 신원미상인 도시의 설립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사후 백여 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헤로온은 중앙부에 큰 석판으로 사각형의 돌방을 만들고 경사지붕을 만든 뒤 낮은 봉분을 쌓은 형태이다. 1954년에 돌방을 발굴 조사한 이후, 절반은 땅 속에 있고, 절반은 땅 위에 드러난 형태로 남아있다. 그 안에서는 꿀을 담은 흔적이 남아있는 크고 인상적인 수입산 청동병, 기원전 520년에서 기원전 500년 경에 만들어진 아테나 그림을 그린 대형 [[흑회식]] [[암포라]] 등이 출토되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파에스툼의 유물===
국립 파에스툼 고고학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지만, 유적지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이전에는 많은 유물이 반출되어 세계 각지에 파에스툼 유물이 흩어져 있다. 특히 스페인 마드리드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 (스페인)|스페인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로마 시대의 리비아와 티베리우스 조각상, 다수의 도기류 등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채색 도기를 다수 소장하고 있으며, [[베를린 고고학 컬렉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서 파에스툼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채색 도기의 경우, 기원전 4세기부터 여러 제작자들이 만들었는데, 제작자의 이름은 대부분 알 수 없다. 도시 인근의 무덤이나 들판에서 주로 발견되었으며, 도시에서 제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 ===
국립 파에스툼 고고학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로는 셀레 유적의 메토프, 다이빙하는 사람의 무덤, 헤로온의 부장품 등이 있다. 또한 [[테라코타]]로 만든 건물 장식과 신상, 도기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역사 ==
=== 설립 ===
[[스트라본]]은 [[시바리스]](Sybaris) 출신의 [[아카이아인]]들이 포세이도니아(''Poseidonia'')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시를 세웠다고 하였다. 개척자들은 처음에는 바다 가까이에 요새를 세웠고, 이후 내륙의 보다 높은 지대에 도시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포세이도니아는 기원전 510년 [[크로토네]]가 시바리스를 정복하였을 때, 그 난민들을 수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5세기 초의 포세이도니아의 주화에서 아카이아의 도량형을 수용하였고, 시바리아 주화에서 볼 수 있는 황소 장식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A. J. 그레이엄은 난민의 수가 포세이도니아인과 시바리스인 사이에 심폴리테이아(Sympoliteia) 형식의 통합(synoecism)을 이루기에 충분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화==
파에스툼에서는 기원전 550년부터 주화를 만들었다. 모두 기념주화로,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 장식이 되어있다. 기념주화 발행은 [[티베리우스]]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기원전 89년의 원로원 칙령으로 이탈리아 내의 주조권을 일원화한 이후에도 파에스툼만은 독자적으로 동전을 주조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후 발행된 주화에 새겨진 "P. S. S. C." (Paesti Signatum Senatus Consulto)라는 명문이 이를 증명한다.
== 각주 ==
== 출처 ==
== 더 보기 ==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파에스툼 유적에서 발견되는 도리스 양식 신전들의 보존 상태와 그 구성 요소들은 어떠한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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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파에스툼 유적 내 도리스 양식 신전의 보존 상태와 구체적인 구성 요소(건물, 유적 등)를 파악해야 한다.
- 파에스틈 유적에는 기원전 600년에서 기원전 450년 사이에 [[도리스 양식]]으로 지어진 세 개의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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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신전 외에 유적지에 분포하는 구성 요소들을 추출한다.
-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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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보존 상태'와 '구성 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를 선별한다.
- 세 개의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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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신전의 보존 상태와 함께 분포하는 유적들의 종류를 결합하여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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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도리스 양식의 세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기단부, 성벽, 경기장, 도로 등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세 개의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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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문맥에 충실한 답변을 작성한다.
- 세 개의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파에스툼 유적에는 기원전 600년에서 기원전 450년 사이에 지어진 세 개의 도리스 양식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파에스툼 유적에는 기원전 600 년에서 기원전 450 년 사이에 지어진 세 개의 도리스 양식 신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여러 건물의 기단부, 도시의 성벽, 원형 경기장, 포장도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