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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document_id A22062316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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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llang|ja|{{ruby-ja|日|に}}{{ruby-ja|本|ほん}}{{ruby-ja|労|ろう}}{{ruby-ja|働|どう}}{{ruby-ja|組|くみ}}{{ruby-ja|合|あい}}{{ruby-ja|総|そう}}{{ruby-ja|評|ひょう}}{{ruby-ja|議|ぎ}}{{ruby-ja|会|かい}}|니혼로도쿠미아이소효기카이}}, {{llang|en|General Council of Trade Unions of Japan; ''JCTU''}}) 약칭 ''총평''({{llang|ja|{{ruby-ja|総|そう}}{{ruby-ja|評|ひょう}}|소효}})은 과거 일본에 있었던 [[노총]]이다. 일본 최대의 전국노총이었다. [[일본사회당]]의 강고한 지지기반이었다. == 내력 ==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후 [[일본 미군정]]의 보호육성 아래 다시 출발한 일본의 노동운동은 경제사회 정세를 배경으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색채가 짙었고, [[일본공산당]]이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냉전]]이 격화되고 미군정의 정책이 전환됨에 따라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산별회의)나 [[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 (1947년)|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전노련) 등으로 집약된 종래의 노동운동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한편, [[생디칼리슴]]과 [[공산주의]]의 배제, [[국제자유노동조합연합]](ICFTU, [[세계노동조합연맹]]에서 분열되어 결성) 가맹 등을 지향하는 운동 조류가 진행되었다. 그 조류의 노총으로서 1950년(쇼와 25년) 7월 11일 총평이 결성되었다. 초대 의장은 [[일본탄광노동조합]](탄노) 출신의 [[타케후지 타케오]], 사무총장은 [[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 도시공공교통협의회|일본도시교통노동조합]](도시교) 출신 [[시마가미 젠고로]]가 선출되었다. [[일본노동조합총동맹]](총동맹), [[국철노동조합]](국노), [[일본교원노동조합]](일교조), [[도쿄도노동조합연합회]](도노련), [[전일본해원조합]](해원조합), [[일본사철노동조합총연합회]](사철총련) 등 주요 노총들과 단위산별(단산)들이 총평에 참여했다. 총평 결성은 미군정의 의향에 의한 것이었으며, 결성대회에서 일본공산당 배제 및 ICFTU 가맹을 내용으로 하는 대회선언을 채택하고, 산별회의 및 전노련과 선을 긋는 노총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미군정 원조하에 반공노총으로 출발한 총평이었지만, 이듬해인 1951년 3월 제2회 대회에서 행동강령으로서 평화 4원칙을 결정하고 ICFTU 가맹 의안을 부결하는 등, 벌써부터 좌경 반미 노선으로 전향했다. [[요시다 시게루|요시다]] 내각이 국가공안보장법([[파괴활동방지법]]의 전신), 집회데모취체법, 총파업금지법, 노동삼법개정을 도모하자 1951년 6월 「노동법개악반대투쟁위원회」(노투)를 설치하고, 노동악법들의 국회 심의가 이루어진 1952년에는 정치총파업을 4차에 걸쳐 실치했다(노투 파업). 총평은 가맹 단산인 탄노와 [[일본전기산업노동조합]](전산)을 필두로 전투적 쟁의를 전개했다. 이 변화를 당시 언론은 “닭이 오리가 되었다”고 했다. 일설에는 당시 미군정의 노동조합 담당자가 “치킨(겁쟁이)이 [[레임덕]](쓸모없는 것)이 되었다”고 욕한 것을 통역사가 이해하지 못하고 “오리 되었다”고 직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2년 7월 제3회 대회에서는 내부 우파가 제안한 ICFTU 일괄가맹안이 부결되고, [[좌파사회당]] 지지를 결정하면서 좌파 노선을 분명히 했다. 인사에서도 전산위원장 [[후지타 스스무 (1913년)|후지타 스스무]]가 새 의장에, [[타카노 미노루]]가 새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민동좌파의 주도권을 확립했다. 한편 우파는 임원을 내지 않으면서 총평 내부 좌우대립은 깊어져갔따. 1952년 12월 [[전국섬유산업노동조합동맹]](전섬동맹), 해원조합, [[전국영화연극노동조합]](전영연), [[일본방송노동조합]](일방노) 4개 단산이 총평의 정치투쟁 중시 지도를 비판하는 「총평비판―민주적노동조합의 입장에 서서」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 우파계 노조들과 지도부의 불화가 표면화된다. 소위 4단산비판 사건. 양자의 대립은 해소되지 않고 제4회 대회를 거쳐 1953년 7월부터 11월까지 일방노를 제외한 우파계 3개 단산이 잇따라 총평에서 탈퇴, 우파 노총인 총동맹(1951년 6월 재건되었음)과 1954년 새로운 연락협의체로서 [[전일본노동조합회의]](전노)를 결성했다. 총평은 3개 단산의 탈퇴를 계기로 [[계급투쟁]]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삼는, 제2회 대회 때부터 시작된 노선전환을 완성시켰다. 운동방침에 [[일본사회당]] 지지를 명기하고 반전평화운동을 추진했다. 총평이 가진 정치적 영향력은 지대하여 반대파에게 “옛날 육군 지금 총평”이라는 야유도 들을 정도였다. 총평의 좌파노선에는 [[노농파]] [[마르크스주의]] 연구집단인 [[사회주의협회 (일본)|사회주의협회]]의 영향이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까지 총평 본부의 전임자는 대부분 사회주의협회 회원이었다고 한다. 1978년(쇼와 53년)에는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에 참가했다. 1983년(쇼와 58년) 당시 총평은 산하에 49개 단산 451만 명 조합원을 거느리며, 일본의 전체 조직노동자의 36%가 총평 조합원이었다. 그 중 70%가 관공서 공공부문 노동자였다. 매년 [[중립노동조합연락회의]](중립노련)과 함께 춘투공투회의를 조직하고 [[춘계생활투쟁]](춘투)를 임금결정기구로 정착시켰다. 1987년 발족한 [[전일본민간노동조합연합회]](전민노련)에 합류하기 위해 1989년 해산되었다. 전민노련은 이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이 되었다. 우경화된 연합과 달리 총평의 정치활동을 계승하는 조직으로 1989년 9월 ''총평센터''(総評センター)가 만들어졌고 1992년 10월 ''사회당과 연대하는 노조회의''(社会党と連帯する労組会議)로 전환되었다. 이 조직은 일본사회당 및 그 후신인 [[사회민주당 (일본)|사회민주당]]을 지지했지만, [[민주당 (1996년 일본)|민주당]] 결성 이후 지지축을 민주당으로 옮기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1997년 ''민주리버럴노조회의''(民主・リベラル労組会議)로 전환되었다. 1999년 5월에는 연합정치센터의 결성에 따라 민주리버럴노조회의는 해산하면서 총평계의 정치활동은 종지부를 찍었다. == 가맹 단산 == 해산을 결성한 임시대회(1989년 11월)가 열리기 직전인 1989년 7월 가맹 단산은 다음과 같다. 결성 당시에는 민간기간산업 단산도 많이 가맹했었지만, 총평이 좌경화되면서 민간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탈퇴하고 우파 노총인 [[전일본노동총동맹]](동맹)에 가맹하면서 총평은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 되었다. == 역대 지도부 == ; 역대 의장 ; 역대 사무총장 == 각주 ==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총평이 좌경화됨에 따라 가맹 단산의 구성 성격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총평의 좌경화라는 원인에 따른 가맹 단산의 구성 변화(분류/성격 변화)를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총평의 초기 구성과 좌경화 이후의 구성 변화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결성 당시에는 민간기간산업 단산도 많이 가맹했었지만
    • 총평이 좌경화되면서 민간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탈퇴하고
    • 총평은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 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좌경화로 인한 구체적인 구성 변화를 나타내는 문장을 선별한다.

    • 총평이 좌경화되면서 민간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탈퇴하고
    • 총평은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민간기업 노조의 탈퇴와 공공부문 노조 중심의 재편이라는 인과관계를 통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결성 당시의 민간기간산업 중심에서 좌경화 이후 공공부문 중심의 조직으로 변화했음을 도출한다.

    • 총평은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 되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변화 과정을 기술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총평이 좌경화되면서 민간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탈퇴하고
    • 총평은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 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결성 당시에는 민간기간산업 단산이 많이 가맹해 있었으나, 총평이 좌경화되면서 민간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탈퇴하여 우파 노총인 전일본노동총동맹에 가맹하게 되었고, 그 결과 총평은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변화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결성 당시 민간기간산업 단산이 많이 가맹했던 총평은 좌경화됨에 따라 민간기업 노조들이 대부분 탈퇴하고 우파 노총인 전일본노동총동맹에 가맹하면서 공공부문 노조 중심의 구조로 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