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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토 - 국경문제 연구에 대한 시론(試論) document_id A22062316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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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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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17세기 이전 한국은 북방에서는 중국과의 사이에 국경이 명확하지 않았고, 동쪽 섬들에 대해서는 소유가 다소 애매한 상태에 있었다. 1699년 일본과의 외교적 합의와 1712년에 건립된 백두산정계비를 통하여 압록강, 토문강, 독도를 경계로 하는 영토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근대민족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일본은 1905년 독도를 편입하고, 1909년 간도의 영유권을 중국에 인정함으로써 조선의 영토적 통일성을 파괴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민족국가의 형성에 실패했다. 이처럼 간도문제와 독도문제는 발생과전개과정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영토문제에서 이 두 가지는 같은레벨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백두산정계비는 국경조약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울릉도쟁계합의는 독도문제 연구에서 매우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것이다. 또 독도문제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울릉도쟁계합의는 울릉도 영유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울릉도쟁계합의가 독도 영유권을 포함하고 있다면, 한국의 독도연구에서는 왜 이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가. 또 1905년의 일본의 독도편입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이론적으로 논란이 있는무주지 선점의 부정 및 편입에 대한 통고의무 불이행 외에는 반박할 수 있는논리는 없는가. 1693년부터 1699년까지 약 6년간에 걸쳐 울릉도 및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된 외교 교섭의 결과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선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했다. 그리고 1877년 일본은 태정관지령을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그러면 한일 간에 최초로 이루어진 국경교섭의 결과물인 이 울릉도쟁계합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학계에서의 논의는 이 합의를 국경조약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이것이 양국에 대해 구속력 있는 합의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를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점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의 독도문제연구에서는 이 합의에 대해 현재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사건의 명칭을 한국이나 일본에서 울릉도쟁계와 죽도일건으로 부르고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합의를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정리한 외무성의 ’죽도문제 10포인트‘에서는 죽도일건을 “울릉도의 귀속을 둘러싼 교섭”이라 규정하고, 죽도에 대한 도해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의 울릉도쟁계 연구도 대체적으로 울릉도로 한정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앞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울릉도쟁계합의를 승계한 태정관지령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국가적 결정을 했다는 것은 울릉도쟁계합의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이케우치 사토시와 박지영의 연구가 지적하고 있듯이,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도 울릉도쟁계합의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울릉도쟁계합의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입증된 이상, 울릉도와 함께 독도에 대한 영유권도 울릉도쟁계합의로 완결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전근대기에 형성된 역사적 사실이 근대국제법상의 영토 영유의 판단재료로 유효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전근대의 역사적 사실을 근대이후의 국가관계, 국제질서에 그대로 투영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물론 근대이행기에 동아시아의 전근대적 화이질서가 국제법질서 또는 조약시스템이라 불리는 서양적 근대적 질서로 변모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라는 전근대기에 이루어진 조일 간의 합의를 현대 조약법의 정의에 입각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데 무리가 없는가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17세기의 한일 간의 외교 관행과 문서를 현대 조약법의 틀에 맞추기란 쉽지 않으며, 17세기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환된 문서를 현대 국제법에 대입해 조약여부를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모르며, 그러한 방법론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17세기의 문서는 17세기의 관행과 법체계에 맞게 당시 동북아시아의 국제법을 발견하여 이를 적용규범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과연 당시에 동북아시아에 국제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조 및 PCIJ와 ICJ 판례 등에 비추어 과거에 국가 간에 이루어진 합의에 법적 구속력이 존중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의 합의 방식 등이 오늘 날의 국제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성립된 양국 간의 합의의 법적 효과는 존중되기 때문에 전근대적 역사적 사실이 완전히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서부 사하라 사건, 나미비아 사건,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도서분쟁 등의 예에서도 국가 간 합의 및 조약상의 권원에 대한 구속력이 인정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러한 예는 조선과 중국의 영유권 교섭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울릉도쟁계합의와 거의 같은 시기인 1712년에 건립된 조선과 중국의 경계를 가르는 백두산정계비는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국경조약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885년과 1887년 조중 간에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두 번에 걸쳐 국경담판을 벌인 사실과, 1906년 이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이 조선을 대신하여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중국과 국경교섭을 벌인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조선과 중국, 일본과 중국 사이의 간도영유권 교섭은 1712년의 백두산정계비를 주된 근거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도 민간 및 학계 일부에서는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보면 전근대의 역사적 사실이 근대 국제법에서 의미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했을 때 울릉도쟁계합의와 태정관지령에 대해 적극적으로 현대 국제법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상 살펴본바와 같이, 독도문제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독도 영유권을 명확히 하는 두 번의 조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699년의 울릉도쟁계합의와 이를 승계하여 취한 일본의 일방적 행위로서의 태정관지령이다. 울릉도쟁계합의가 양국에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이며, 태정관지령은 일본의 일방적 행위이기는 하나 울릉도쟁계합의의 연장선상에서 해석을 하면 국제법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즉 역외적 효과를 낳는 국내법령인 것이 분명하다. 이상의 논의를 전제로 하여 한국의 국경 및 독도 영유권 문제 연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첫째, 18세기 이후 불가분의 조선 영토로 인정되었던 간도와 독도가 20세기 초 일본의 조처로 한반도로부터 분리되어 조선의 영토적 통일성이 붕괴되었다. 이처럼 독도문제와 간도문제는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의 문제가 왜 같은 레벨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는가. 백두산정계비는 국경조약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후술하는 바와 같이, 울릉도쟁계합의는 독도문제 연구에서 매우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부정하는 재료로서 태정관지령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하여 태정관지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국제법적 의미를 더 강하게 가지고 있는 울릉도쟁계합의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독도문제에서 울릉도쟁계합의를 강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셋째, 일본은 울릉도쟁계합의에서 인정한 울릉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고, 또 울릉도쟁계합의를 파기한 적도 없다, 그러면 울릉도쟁계합의에서 인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일본은 왜 인정하지 않는가, 또 한국은 이에 대해 왜 반론하지 않는가? 넷째, 1905년의 일본의 독도 편입에 대해서 한국은 주로 무주지 선점론 및 편입에 대한 통고의무 불이행 등을 중심으로 비판을 가해왔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논란이 있다. 이러한 논란을 피하고 한국의 입장을 이론적으로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독도 편입의 실체를 인정한 위에 조선의 법적 권원과 일본의 실효적 지배의 상충문제로 파악하여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울릉도쟁계합의가 독도 영유권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도문제 연구에서 이 합의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울릉도쟁계합의가 독도 영유권을 포함함에도 한국 연구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 울릉도쟁계합의가 독도 영유권을 포함하고 있다면, 한국의 독도연구에서는 왜 이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가.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제시된 두 가지 주요 원인을 추출한다.

    • 이 사건의 명칭을 한국이나 일본에서 울릉도쟁계와 죽도일건으로 부르고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합의를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
    • 전근대기에 형성된 역사적 사실이 근대국제법상의 영토 영유의 판단재료로 유효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인식의 한계와 방법론적 회의론을 핵심 근거로 선별한다.

    • 이 합의를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
    • 전근대의 역사적 사실을 근대이후의 국가관계, 국제질서에 그대로 투영할 수 없다는 관점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명칭에 따른 인식의 국한 문제와 전근대적 사실의 근대적 유효성에 대한 회의론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두 가지 이유를 정리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 이 합의를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
    • 전근대기에 형성된 역사적 사실이 근대국제법상의 영토 영유의 판단재료로 유효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인식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이 합의를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
    • 전근대기에 형성된 역사적 사실이 근대국제법상의 영토 영유의 판단재료로 유효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첫째, 울릉도쟁계합의라는 명칭 등으로 인해 이 합의를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전근대기에 형성된 역사적 사실이 근대 국제법상의 영토 영유 판단 재료로서 유효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울릉도쟁계합의가 독도 영유권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합의가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으로 인식되는 점과 전근대적 역사적 사실의 근대 국제법상 유효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독도문제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