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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유교 지식(知識)・문화(文化)의 수용 양상과 ‘제주학풍(濟州學風)’ 주자학적 예교론(禮敎論)과 사림파 학풍의 유입을 중심으로 document_id A220623169350

분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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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이 글은 조선시대 제주지역 유교 지식・문화의 보급 및 확산 양상을 사상 및 문화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제주문화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 지식・문화의 수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간’의 실체와 그 역할, 제주로 유입・정착되었던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에 주목했다. 특히 지식과 문화의 양성 주체로서의 인간을 제주목사 등 ‘관료’, 김정 등 ‘유배지식인’, 김양필 등 ‘현지지식인’으로 구별하여 그 개체의 문화사적 역할 및 의미를 강조한 것과 후일 제주학풍의 원천이 되는 지식・문화의 계통을 조선 주자학의 제 갈래 중에서도 ‘기호학’과 ‘퇴계학’의 양측적 영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기존 연구와 일정한 차별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제주지역 학풍의 갈래와 성향에 대한 천착은 향후 제주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다채로운 연구를 풍부하게 길어올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 제주의 유교적 지식・문화의 보급과 정착을 견인한 존재는 제주목사・판관 및 정의・대정현감 등의 관인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온 지식인들이었다. 이런 흐름은 15세기 이후 사림파의 성장과 더불어 본격화 되었는데, 1470년부터 1473년까지 목사로 재임하며 주자학적 치도 기반을 조성했던 이약동의 역할은 유교문화 확산의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519년의 기묘사화는 사림의 시련인 동시에 새로운 도약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영향은 제주에까지 미쳤는데, 1520년 김정의 제주 유배가 그것이었다. 정통 사림파 학자・관료였던 김정은 1년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주의 문교 및 예교 진작에 크게 기여했고, 그가 육성했던 문인들은 지적 자산으로 남아 제주 문풍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게 된다. 김정이 이른바 제주오현의 수현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약동・김정을 통해 기반을 다진 제주의 유교적 교화 및 교육론은 송인수・심연원 등의 관인을 통해 더욱 진전을 보게 된다. 이들은 사림파 학통의 정통 계승자였으며, 특히 김안국의 문인이었던 심연원은 ‘모재학’은 물론 최부의 금남학풍까지 이식함으로써 제주의 학문적 풍토를 보다 풍부하게 했다.1578년 김정의 사우로 건립된 ‘충암묘’는 제주문화의 주자학적 기치이자 향후 제주학풍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상・문화사적 변곡점을 이루게 되는데,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것은 성운의 문인계열인 대곡학통이었다. ‘충암묘’는 17세기 중반 퇴계・화담학통의 공조 속에 귤림서원으로 승격되어 그 위상을 신장하는 가운데 송인수・김상헌・정온 및 송시열의 추배를 통해 이른바 제주5현의 제향처로 자리매김하면서 상당한 중량감을 확보하게 된다. 이들 5현이 점했던 조선유학사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귤림서원은 육지의 어느 서원에도 뒤지지 않는 제주 유학의 수선지지로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1695년 제주목사 이익태에 의해 이루어진 송시열의 귤림서원 추배는 제주학풍의 무게 중심이 기호학맥 쪽에 실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흐름은 19세기 후반까지 큰 변화없이 유지되었다. 제주의 주자학적 학풍 형성에 영향은 미친 것은 비단 5현만이 아니었다. 제주와 서인 기호학파 및 남인 영남학파와의 학문적 유대는 17세기 이후 더욱 활성화 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을 통해 학풍이 유입되었다. 1618년 폐비론에 반대하다 유배된 기호학파 계통의 이익은 김진용・고홍진・김계창 등 다수의 문인을 육성하여 제주 유학의 저변을 확대했고, 19세기 중후반의 유배지식인이었던 김정희・최익현 또한 문도 교육을 통해 기호학풍을 끊임없이 유입시켰다. 이런 경향은 남인 퇴계학파 계열에서도 나타났다. 1658년부터 1660년까지 목사로 재임했던 이괴는 장수당을 건립하여 교육 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문자행위’를 통해 퇴계학풍의 확대에 주력했다. 이런 흐름은 영조 연간의 김정, 헌종 연간의 이원조 등 남인계 관료를 통해 계승, 발전되었다. 전형적인 퇴계학맥이었던 김정은 삼천서당을 건립하여 교육의 실질성을 제고했고, 이원조는 삼천서당의 중수와 송죽서원의 건립을 통해 김정의 교육사업을 확대, 강화시켰다. 특히 송죽서원의 건립은 교육사업에 더하여 정온 추양사업의 일환에서 추진된 것이었는데, 그 바탕에는 제주라는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영남학의 확산의 과정이기도 했다. 원우에 기준할 때, 5현을 제향한 귤림서원이 서인 기호학파의 주도성이 강한 공간이었다면 정온의 주향처인 송죽서원과 이약동・이괴・이형상・김정・김진용의 제향처인 상현사는 남인 퇴계학파의 영향이 큰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 볼 때, 향후 제주지역의 학풍은 크게 ‘귤림학풍’과 ‘송죽・상현학풍’으로 대별하여 파악해 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이 논문이 조선시대 제주지역 유교 지식 및 문화의 보급과 확산 양상을 분석하기 위해 주목한 두 가지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논문의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자가 분석의 초점을 맞춘 구체적인 두 가지 요소를 찾는 작업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제주문화의 실상 이해를 위해 주목한 대상과 계통성을 추출한다.

    • 제주문화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 지식・문화의 수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간’의 실체와 그 역할, 제주로 유입・정착되었던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에 주목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주목한 요소인 '인간의 실체와 역할'과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을 선별한다.

    • ‘인간’의 실체와 그 역할, 제주로 유입・정착되었던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에 주목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두 요소를 연구의 분석 관점으로 통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연구가 주목한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인간의 실체와 역할, 그리고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이다.

    • ‘인간’의 실체와 그 역할, 제주로 유입・정착되었던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에 주목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따라 두 가지 요소를 명확히 나열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인간’의 실체와 그 역할, 제주로 유입・정착되었던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
최종 답변 (final_answer)
지식·문화의 수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간’의 실체와 그 역할, 그리고 제주로 유입·정착되었던 지식과 문화의 계통성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제주 유교 문화의 확산 양상을 규명하기 위해 분석의 주체인 '인간'과 그들이 전달한 '지식·문화의 계통성'을 핵심 분석 틀로 설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