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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신초상(功臣肖像)의 관복(제1기) 고찰 document_id A220623170518

분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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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이 연구는 공신초상의 관복 제1기를 하향뿔의 사모와 잡색 단령 시기로 규정하고 성종 7년 이전에 그려진 조선 초 개국공신에서 성종 초 좌리공신까지의 공신초상 관복의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관복 제1기에 속하는 공신초상 중 이제, 이천우, 마천목, 신숙주, 설계조,그리고 이숭원 공신초상 등 관복 표현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6점을 선정하고 관복 구성품별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 삼공신의 사모는 모체는 낮고 모정은 둥글며, 사모의 하향각은 좁고 짧은 형태였으나 단종대 이후 정난·좌리공신 사모는 모체가 높아지고 사모의 하향각도 두 배 정도로 길어졌다. 그리고 관복 제1기 공신초상의 사모뿔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개국 초에는 단령의 색상 규정이 없었으나 대체로 옅은 색의 단령으로 표현되었다. 세종대 이후 예복용 흑단령 제도가 시작되었으나 공신초상 관복에는 흑단령 제도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단종대 이후에는 담홍색 단령으로 표현되었다. 단령 겉감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으며, 옆트임에는 ‘안주름무’가 표현되었다. 단령 받침옷 답호와 철릭 역시 통일된 색상은 없었으나 정난공신 이후에는 청색 답호와 초록색 철릭을 착용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품대는 공신의 품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단종대 이후 흉배제도가 제정되었으나 제1기공신초상 중에는 정난공신 신숙주 초상에서만 유일하게 흉배가 표현되었다. 단령에 신는 화자는 조선 초 삼공신 초상에서는 흑화가 확인되었으나 단종대 이후 정난·좌리공신 초상에서는 백화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일부 공신초상의 흑화와 백화 솔기선 부분에 연금사로 장식한 휘가 확인되었는데 휘 장식의화자는 3품 이상이 신던 협금화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조선 초 공신초상 중 1476년 적개공신 초상에서 보여지는 수평 사모뿔과 아청색 흑단령이 표현되기 이전까지를 ‘공신초상의 관복 제1기’로 규정하고 태조 이후 태종대까지의 개국·정사·좌명 삼공신과 단종 이후 성종 초까지의 정난·좌익·익대·좌리공신을 중심으로 관복 표현 양상을 살펴보았다. 현전하는 공신들의 전신 초상 중 시기에 맞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개국공신 이제, 정사·좌명공신 이천우, 좌명공신 마천목, 정난·좌익·익대·좌리공신 신숙주, 정난공신 설계조, 그리고 좌리공신 이숭원 초상 등 전신상 6점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사모의 경우, 조선 초 삼공신 초상에 표현된 사모는 모정이 둥글고 모체의 높이가 낮았으나 세종 말에 모체가 높아지기 시작하여 단종대 정난공신 이후 좌리공신까지 2배 정도 높아진 형태로 변화하였다. 삼공신의 사모 양각은 하향의 좁고 짧은 것이었으나 단종대 이후 모체의 높이와 마찬가지로 두 배 정도로 길어졌다. 특히 좌리공신초상에서는 사모 양각의 각도가 수평에 가깝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사모 양각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신초상 관복 제1기에 속하는 세종대에 흑단령 제도가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완전하게 정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삼공신초상의 단령 색상은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체로 옅은 색으로 표현되는 특징을 보였는데 이는 기록과 일치하는 양상이었다. 단종대 이후에는 토홍색 단령을 입은 것으로 공신초상에 표현되었는데 이 역시 당시 기록의 내용과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단, 초록단령과 직금백한흉배가 묘사된 신숙주 초상은 다른 공신초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에 추후 연구 과제로 남겼다. 그리고 단령의 무 양식은 ‘안주름무’임을 확인하였다. 단령의 받침옷인 답호와 철릭 역시 조선 초에는 정해진 색상이 없었으나, 단종대 이후 청색 답호와 홍색 철릭으로 표현되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단령과 답호의 안감은 주로 짙은 홍색으로 표현되는 양상도 파악되었다. 공신초상의 단령 겉감에는 무늬가 전혀 표현되지 않았으며 단령 깃 안에는 흰 동정 대신 답호 깃이 드러나도록 표현되어 답호의 색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호나 철릭에도 문양을 표현하지 않았으나 이제 초상에서처럼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짐작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문무백관들의 품계는 품대와 흉배로 드러났다. 공신초상 관복 제1기에 속하는 공신들은 대부분 품대를 통해 품계를 나타냈으나 초상화의 상태가 좋지 않아 추정에 그쳤다. 흉배는 이 시기에 널리 사용되지 않은 듯한데, 단종대 정난공신 신숙주 초상화에만 흉배가 표현되어 특이한 양상으로 파악되었다. 조선 초 삼공신 초상에는 단령 아래 흑화를 착용하였으나 단종대 이후 성종 초까지의 공신초상에서는 백화를 착용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흑화와 백화 중에는 솔기선 ‘휘’를 연금사 등으로 장식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화자는 3품 이상이 신는 협금화로 추정하였다. 현전하는 공신초상은 후대에 가칠되거나 이모되는 과정에서 채색의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인 경향은 같은 시기의 관련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함으로써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써의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복식사적 관점에서 관복 제1기에 해당하는 공신초상의 관복 표현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조선 초기 관복제도의 변화 과정을 공신초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음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조선 초 공신초상의 관복 표현 양상이 관련 문헌 기록과 비교했을 때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공신초상의 관복 표현 양상과 문헌 기록 간의 관계 및 그에 따른 연구의 가치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공신초상의 표현 양상이 문헌 기록과 일치하는지 여부와 그 의의를 추출한다.

    • 대략적인 경향은 같은 시기의 관련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함으로써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써의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문헌 기록과의 일치성 및 상호 보완적 가치에 대한 구절을 핵심 근거로 선정한다.

    • 대략적인 경향은 같은 시기의 관련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함으로써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써의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초상의 표현이 문헌과 일치하므로, 초상이 복식사 연구에서 문헌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공신초상의 관복 표현은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하며, 따라서 복식사 문헌 자료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님을 도출한다.

    •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써의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술형 답변을 작성한다.

    • 대략적인 경향은 같은 시기의 관련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함으로써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써의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공신초상의 관복 표현 양상은 대략적인 경향이 같은 시기의 관련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하며, 이를 통해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공신초상의 관복 표현 양상은 대략적인 경향이 같은 시기의 관련 문헌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하여 복식사 문헌 자료와 함께 상호 보완적 자료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