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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인간 그리고 치료 - 서사치료의 기본 개념에 대한 이론적 성찰 document_id A220623180310

분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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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이 논문은 정운채 문학치료학의 이론체계의 토대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개념들을 보편적인 서사이론에 비추어 그 타당성을 점검한 후, ‘인간이 문학이며 문학을치료하면 인간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정운채의 선언이 담고 있는 서사결정론적 치료론의 주술적 한계에 대한 비판을 목표로 한다. 한국 구비문학에 바탕을 둔 정운채의문학치료학은 매우 독특한 개념들을 설정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문제적인 것은‘작품서사’라는 용어이다. 여기서의 서사는 통상적인 서사이론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에픽임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이야기, 줄거리, 원형, 서사 등 상이한개념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어 일관성이 결여된다는 근본적인 결함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서사치료의 경우 독자/내담자의 독립적 영역을 누락시킨 채 서사의 내용에따른 일방적인 효과가 독자에게 발생되리라는 단선적인 결정론의 관점을 취하고있다. 이러한 관점은 미메시스적인 언어관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문학치료의 대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넘어서는 지점의 기반이나 공통성”을 지닌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실제 인간을 치료하는 학문이 아닌 구비문학연구의 한 방법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정운채의 서사이론은 주술적인 세계 위에 구축된 형이상학이다. 그가 처음부터 그러한 형이상학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형이상학과 정반대로 문학치료라는 실용적 학문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치유나 상담의 현장에서 자신의 방법론으로 실제 내담자와 임상활동을 한 사례가 없다. 다만 자신의 이론을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뿐이다. 달리 말해서 서사가 내담자들의 반응을 자극하거나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실재를 체험한 적이 없다. 이러한 임상적 체험의 부재로 인해서 그는 언어가 지닌 주술적 힘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듯이 보인다. 주지하듯이 상담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예기치 못한 효과에 지극히 민감한 자이다. 자신의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발화의 결과에 당황하기도 하고, 자신이 의도한 내용과 내담자가 이해한 내용의 불일치에 바짝 긴장하기도 한다. 물론 언어는 영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힘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미리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 아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발화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를 자주 경험한다. 내가 의도했던 발화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정반대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정운채의 논문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필자는 그동안 그렇게 찾아 헤매던 자생적 학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관행이던 유럽 학문의 수입과 소비에서 벗어나 우리의 빈약한 학문적 전통에서 새로운 이론이 탄생하리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의 서사치료이론은 엄격한 의미에서 학문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그의 개인적 신념의 표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서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우리의 자생적 학문에 대한 강박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었다. 처음에 기대했던 만큼 정운채의 서사치료이론도 자생적이지 않았다. 서사나 스토리, 텍스트, 심층구조 등 그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들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에서 고전작품과 민담 등 우리의 전통은 실체라기보다는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그 재료를 이론으로 재생산하는 형식은 유럽 타자의 이론들이었다. 그러한 사례를 접하면서 필자는 자생적 학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생적인 학문과 유럽에서 수입된 학문이라는 경계가 무의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서사이론을 비롯해서 일단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라면, 그것이 문학작품이든 문학이론, 철학, 문화사이든 모두 우리의 것이다. 원재료를 우리의 언어로 재생산하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운채의 서사치료이론에 두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하나는, 이론적 자의식의 엄밀성을 강화함으로써 개념적 정합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의 의미가 다른 학자들의 용법과 일치하는지, 만약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차이의 성격과 이유를 분명히 짚어주어야 한다. 정운채가 말하는 문학치료의 서사는 서사이론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서사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때 연구자 자신이 나서서 선행연구와의 차이를 규명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논증해주어야만 한다. 또 하나는, 실제 임상의 현장에서 어떻게 내담자를 상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의 필요성이다. 반복하지만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집단임상도 아니다. 온전한 의미의 임상활동 사례들이 누적되면서 실제 현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다양한 치료 방법론이 마련되어야 한다. 만일 정운채의 문학치료이론에 의거하여 임상현장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들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설화연구, 즉 구비문학연구의 한 방법론에 불과할 뿐이다. 현재까지 이러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후속 연구자들의 작업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것은 정운채가 제시한 틀과 한계를 창발적으로 지양하는 결과물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상들은 정운채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먼저 이론적 작업의 경우 그 엄밀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왕의 틀을 옆으로 확장하는 방식, 예컨대 ‘형제’ 서사, ‘사회’ 서사 등과 같은 파생어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이는 여전히 내러티브와 에픽의 착종 상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외 기왕의 틀 안에서 인지도식, 스키마 등의 인지심리학적 개념들로 세부적인 논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으나 정운채 논리의 암묵적 전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부재로 인해 실제 임상과의 연관성은 더욱 멀어지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결국 문학‘치료’학이라는 이름에 실질적으로 부합하기 위해서는 치료적 활동에 기반한 연구들이 축적되어 귀납적으로 이론화되어야 한다. 자신의 심적 고통을 가지고 내담한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치료 과정을 성찰한 연구가 아닌 학점을 받기 위해 신청한 학생들에게 설화를 읽히고 그 감상과 다시 쓰기 활동을 임상 사례로 삼아 정리한 내용을 논문으로 제출하는 정운채식 문학치료학은 문학교육연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문학교육인 까닭은 교수자가 ‘건강한’ 서사, 즉 하나의 ‘정답’을 전제하고 학생들의 감상과 다시 쓰기 결과물을 평가하는 방식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특정 설화에 대한 건강한 반응 해석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설정해 놓고 그와 다른 반응은 건강하지 못하다 진단하는 정운채 논리의 기본 틀을 무반성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이런 한계는 문학치료 연구자들의 절대다수가 실제 상담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는 태생적 조건에서 반복 재생산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당연히 상담학 관련 분야의 선행 업적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체험하여 문학텍스트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점들을 다양하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문학치료학은 근본적으로 융복합 학문이다. 따라서 문학만의 독자적인 방법론으로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다는 태도는 ‘둥근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의 오류이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정운채의 문학치료학이 실제 인간을 치료하는 학문이 아닌 구비문학연구의 방법으로 회귀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정운채의 문학치료학이 가진 한계점 중, 학문적 성격이 구비문학연구로 회귀하게 되는 원인을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학치료의 대상 설정 방식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문학치료의 대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넘어서는 지점의 기반이나 공통성”을 지닌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대상 설정의 문제점이 결과적으로 어떤 현상을 초래하는지 연결한다.

    • 실제 인간을 치료하는 학문이 아닌 구비문학연구의 한 방법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치료 대상이 현실의 고통받는 개인이 아닌 추상적 존재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학문적 성격이 변질됨을 논리적으로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대상 설정의 오류가 구비문학연구로의 회귀를 야기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문학치료의 대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넘어서는 지점의 기반이나 공통성”을 지닌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실제 인간을 치료하는 학문이 아닌 구비문학연구의 한 방법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의 근거를 바탕으로 서술형 답변을 작성한다.

    • 문학치료의 대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넘어서는 지점의 기반이나 공통성”을 지닌 존재로 설정
최종 답변 (final_answer)
문학치료의 대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넘어서는 지점의 기반이나 공통성'을 지닌 존재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정운채의 문학치료학이 실제 인간을 치료하는 학문이 아닌 구비문학연구의 방법으로 회귀하는 것은 문학치료의 대상을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닌 추상적 존재로 설정했기 때문이다.